문경 대승사 주지 철산 스님문경에 들어서 여여하게 흘러가는 강을 따르는 아침, 물에서는 백로가 놀고 산에서는 산벚꽃이 논다. 그러니 나도 주유천하周遊天下하듯 하늘과 물과 새와 꽃과 노니는데, 이내 돌부리에 걸려 흙길에 나뒹구니 번뇌가 많은 몸은 시한수 읊지 못한채 울상이다. 그래도 심신은 금세 고요해진다, 만산滿山이 법문과 같으니. 사불산四佛山을 오른다. 붉은 천에 싸인 바위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그 네 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니, 이 산이 모두 도량이 되는 셈이다. 그런 사불산 안에 포근히 들어앉아 있는 대승사에 들어섰다. 텅 빈 도량, 들어서자마자 스님을 불러보지만 스님은 온데간데없다. 백구 한 마리만 섬돌 아래 누워 눈을 껌뻑이고 그위엔 늦은 개나리꽃만 가득하다. 도량에는 백여 개가 넘지 싶은 큼직한 장독들이 봄 햇살을 받느라 이마가 뜨끈하게달아오르는데 스님은 어디로 출타중이신가.
공양부터 하라는 한 스님의 말씀에 공양간부터 찾아드니 거기도 봄이 한상 가득이다. 민들레 무침, 머위 무침, 쑥 부침에 달큼한 고추장까지. 그러고 보니 대승사 주변 곳곳이 나물 천지다. 초봄에 오르는 풀은 아무리 독풀이어도 채 독기가 돌지 않아 뭐든 먹어도 약이 된다더니, 오가는 이들이 곳곳에 주저앉아 나물을 뜯는다.
나고 죽는 것도, 오고 가는 것도 없다 했는데 나는 취나물을 뜯으며‘봄은 왔다’하고‘스님은 안 온다’하니 아직 땅속 저 깊은 어둠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쑥부쟁이가 나인가 싶어 나물 뜯는것도 그만둬버린다.
스님은 언제 오시는가. 대승선원엔 출입금지 푯말만 선명하고 대웅전엔 신도들만 몇몇 조용조용 오가는 나른한 오후, 백구를 들여다보다가 툇마루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문득 스님이 나긋나긋 걸어드셨다.
“차 한 잔 하시렵니까?”
스님은 선차禪茶의 명인이라더니 차를 내주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내가 스님에 대해 아는 것은 법명은 탄공이고 법호는 철산이라는 것뿐.
“철로 된 산은 못 봤지요? 부처님의 골수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스님이 내어주시는 차茶맛이 구수하다, 그리고 달다. 단 침이 입 안에 고인다. 차 몇 잔을 마시는 동안 스님은 별반 말씀도 없다. 차선일여茶禪一如, 선차일미禪茶一味라더니 스님과 마주 앉아 조용조용 차를 마시는 것이 마치 선방에 앉은 듯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님을 찾는 이들도 많고 스님 앞에 찾아와 앉는 이들도 많다. 잠시 누군가를 만나는가 싶더니, 성지순례 온 이들을 위해 대웅전 법당에서 법문을 하는가 싶더니, 또 손님과 차 한 잔을 나누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종일 도량에 쭈그리고 앉아 스님의 그림자를 쫓는다. 이리도 바쁜데 대체 차는 언제 덖고 다기는 언제 빚고 죽염은 언제 만들고 장은 언제 담그고 선방엔 언제 앉는다는 말씀이신가. 스님의 그림자도 잃어버린채 내 그림자만 멍하니 보고 있는 동안 입안엔 단침만 고인다.
스님은 절 주변의 차밭에서 직접 차를 재배하고 덖고 말린다고 한다.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드는 일일텐데, 스님은 녹차도 만들고 발효차도 만들고 산뽕잎차도 만들고 민들레차도 만든다. 게다가 절 근처에는 황토 가마와 작업장을 마련해두고 있어서 그곳에선 다구와 옹기를 빚고 굽는다. 함께하는 이들이 대여섯 명 되지만 스님은 손수 다구를 만든다. 게다가 전통방식 그대로 된장 고추장도 담근다. 그러니 마당에 있는 독들은 손수 구운 것이고 그 안의 장 또한 손수 담근 것이다. 시간도 없을 텐데 참 많은 일을 한다 싶고 힘들겠다 싶지만, 그 또한 차 마시는 일이나 선방에 앉는 일과 같겠지, 그것이 행선行禪이지 생각하고 있자니, 다시 돌아와 앉은 스님이 말씀하신다.
“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뭐!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다 본인이 하고 싶어서 와서 선방에 앉는 건데, 뭐가 힘드나.”
대승선원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는데, 이도 저도 변명이나 군말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스님은 일언지하에 답을 주신다. 그래도 주지 소임 보랴, 선방에 앉으랴 힘드시지 않나 여쭌다.
“힘 안 드는게 어딨나?”
그러고 보니 사는 데 힘 안 드는 일이 없다. 먹고 싸고 자는 일에도 힘이 쑥쑥 들어간다. 그러니 힘들여 농사 짓고 힘들여 글을 읽고 힘들여 정진한다. 결제철이면 대승선원에는 30여 명의 스님들이 찾아와 매일 14시간에서 20시간 정도 정진한다고 한다. 특별한 것은, 대승선원에는 해제철에도 도량을 떠나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이 많다는 것. 심지어 재가 불자들도 이곳 선방에서 스님들과 함께 앉아 20시간씩 정진한다.
“다 원력이 있어서 하는 거지.”
스님은 엊그제 용맹정진을 마쳤단다. 차를 내어 주시는 스님의 눈썹이 유난히 짙다. 마치 새벽녘에 도량에서 마주 친목어의 부릅뜬 눈처럼 짙고 성성하다. 수행자의 감은 눈위에 진면목이 보인다. 스님의 고향은 경남 양산.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절에 가서 부처님 전에 놓인 과일이나 과자를 내려서 먹기도 하고 부처님 뒤에 숨어서 놀기도 했다.
“전생에 절에 살았으니 그리하지 않았겠나.”
중학교때는 친구들과 함께 법주사로 도망갔다가 잡혀 오곤했다. 그러다가 그대로 절에 남은 친구들도 있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절로 간 친구들도 있으니 스님이 된 친구들이 참 많다. 마을에 원체 스님이 많이 살아서 마을에서 스님이 많이 나온 것이 되레 이상치 않다. 스님 또한 그렇게 절을 드나들다가 고등학교를 다니며 법주사에 살기 시작했다.
“행자때, 잘못하면 집에 가라고 할까봐 열심히 했어. 잠도 거의 안자고 절도 만배씩 했지.”
그렇게 행자시절을 보내고 스님으로 살아온지 삼십여년이 됐다.
“중이 된 게 잘못됐다는 생각도 안 해봤고, 그렇다고 좋다는 생각도 안 해봤어. 그냥 했으니까.”
출가 이후, 승가대학도 안 가고 참선도량으로만 다녔다. 결제 때도 해제 때도 선방에 앉았다. 스님은 선방에 앉아서도 산문 밖을 돌아다니면서도‘이 뭐꼬’화두를 들었다. 그러다가 12년 전에 대승사 주지로 4년을 살다가 또 다시 다른 선방을 다니다가 각화사에서 15개월 용맹정진을 하고 나서 다시 대승사 주지로 온 지 5년째다.
“공부 아닌게 어딨나. 책보는것도 공부, 앉아서하는 것도 공부, 걸어다니면서 하는 것도 다 공부지.”
그렇게 모든게 다 공부인데 스님은 왜 유독 참선을 하시는가 여쭙는다.
“다른 거 할 줄도 모르니까. 다른 재주도 없고 그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금생에선 그렇게 살아야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
하지만 스님은 선방에 앉아 있는 것만이 아니다. 부처가 되어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려는 것처럼, 지금도 많은 이들을 위해 금생에서 바쁘게 바쁘게 자신의 몸을 쓴다. 대승사의 템플스테이 또한 그런 일념의 한 부분이다.
“재가불자들이 대승사에서 기도하고 참선하는 걸 수락하지 않았었는데, 우리만 이 도량에서 공부할 것이 아니라 누구든 와서 공부해야 되지 않겠나 싶어서 시작했어. 그래야 우리도 복을 짓지. 우리만 하는 건 복을 감하는 거지.”
재가 불자들이 선방에서 스님들과 함께 용맹정진할 수 있게 한 것도, 참선도량에서의 템플스테이도, 모두 자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대승사 템플스테이의 특별한 점은, 차를 덖는 시기나 장을 담그는 시기에 오게 되면 그것들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자기를 빚고 굽는 것도 해 볼 수 있으니 어디서든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현대인들이 도자기를 접하게 되면 정서적 불안이 해소가 돼. 차를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체험하게 하는 거지. 자신들이 구운 다기를 집에 가지고 가면 차를 마시게 될 거야. 내가 하려는 게‘일가구一家口일다기一茶器’운동이야. 다기에 차를 마시다보면 담소를 나누게 되잖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의식이 개혁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스님은 절을 찾는 이들에게 손수 만든 다기를 선물한다. 다기 한 점이 집에 있으면 언젠가는 차를 마실 거라는 생각에서다. 흙의 성질과 차의 성질이 인간의 성질을 온화하고 일안一安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사실, 스님이 이토록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사찰의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도들의 시주로만 살아가는 절이 아니다. 그래서 차도, 다기도, 죽염도, 장도 만든다. 그리고 이젠 영농법인을 만들어 산나물도 재배 할 계획이다. 그렇다고해서 그것들을 모두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차는 판매해서 장학금으로 쓰고 도자기, 죽염, 장은 판매하지 않고 사찰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선물한다. 그래서 스님은 이 모든 게 복 짓는 일이라고 말한다.
스님은 금세 또 나가 성지순례 온 이들이게 다기를 나눠주고 있다. 그러더니 금세 또 작업장에서 다기를 만들고 있다. 축지법이라도 쓰시는 걸까, 종일 스님 걸음을 쫓다가 나는 섬돌 아래 백구 곁에 풀썩 주저 앉는다.
도량에 벌써 저녁 빛이 돈다. 그때, 앳된 스님 하나 걸망을 지고 나긋나긋 산문 안으로 들어와 선원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삼십여년전, 철산스님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