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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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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서도東話西道 - 이겸 2008년 05월 315호
평화 평화


유리 없는 창문엔 성긴 나무 막대들이 끼워져 있다. 이방인을 향한 호기심들이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온다. 창틀 사이 검은 눈동자들이 윤기를 내며 나를 주시하고 있다.

녀석들을 만나러 나가니 닭장 같아 보이는 곳 안에 두 아이가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세상에! 닭장에 있어야 할 닭은 없고, 비둘기들로 가득한 게 아닌가? 닭이 아니라 비둘기를 사육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어부의 자녀들로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것은 아버지의 몫이고, 뭍에 남아 짐승 농사를 짓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큰 새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비둘기들이 사방에서 날아들어 정신을 쏙 빼놓는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키운 비둘기를 잡아 자랑하려 애를 쓴다. 그 바람에 새 장 안이 더욱 소란해졌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깃털과 모래 먼지, 비둘기들의 비명이 있은 후, 소년의 손 안엔 비둘기가 들려 있었다. 영웅심으로 가득 찬 표정처럼 아이들은 조금 으쓱댄다. 소년이 내민 것은 평화의 새가 아니라, 그냥‘먹을 거리’였다. 평화의 상징이니 뭐니 하는 그런 의미는 없어 보였다. 이곳에서 닭과 비둘기의 구분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먹어서 배부르고 평화로우면 되는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어부 가족들에게도 비둘기는‘평화의 상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이미 여러 나라에서‘Pigeon meat’라는 이름으로 비둘기 요리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어느새 해가 떨어져 거리엔 어둠이 깔렸다. 숙소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약 1시간가량 소요되는 길. 달이 고개를 내밀었다. 밤하늘을 가르는 전깃줄들의 실루엣이 밤하늘을 푸른 오선지로 만들어놓았다. 한밤중도 아닌데 모두들 벌써 낮은 양철 지붕을 덮고 누웠는지, 오가는 이들이 드물다. 도심에서 벗어난 외곽의 골목엔 가로등도 드물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더 깊어만 지는 골목의 그늘엔 쭈그려 앉은 남자들의 흰 눈동자만이 이따금씩 반짝인다.
‘ 앙리 루소 Henri Rousseau’의‘The Dream’에 등장하는 숲속 사자의 눈처럼 구석에 박혀 나를 지켜본다. 한참을 걸어 큰길과 붙어 있는‘AGUILERA 거리’에 도착했지만, 가로등 불빛은 여전히 귀하다. 어린 시절에도 가끔 이런 풍경이 연출되곤 했었다. 정전이 되면 생경한 풍경으로 바뀐 동네를 나와 친구들은 환호를 지르며 돌아다니곤 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어둠 속에 앉아 있었던 누군가는 나와 눈이 마주 치곤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걷는 길도 나쁘진 않다. 어둠은 시원한 느낌을 주기에 속보로 걷기에도 적당하다.

쿠바에 오기 전 나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쿠바는 상당히 위험하다는데요? 괜찮겠어요?”나는 그가 말한 위험한 쿠바에 도착했고, 지금은 밤길을 걷고 있다. 지금 나는 쿠바 사람들이 친절하고 호의적이라는 것도 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낮에 만났던 이들이 모두 밤마다 돌변하지 않는 이상 해가 있으나 없으나 별차이는 없다. 이곳 상황보단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주는 잠재된 위협이 더 클 것이고, 밤거리의 범죄도 더 많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문앞에 나와 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는 쿠바인들의 모습이 정겹다. 창으로 새어나오는 TV 불빛과 졸고있는 할머니의 모습 또한 그렇다.

쿠바 사람들은 잘 흥분하지 않는다. 권투, 배구, 야구 경기를 볼 때도 우리만큼 흥분하지 않는다.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몇만명이 한 곳에 모일 만큼 다혈질도 아니다.
더구나 통재된 국가일수록 일반인들의 범죄율은 낮다. 아마도 내가 쿠바의 밤거리를 걷는 것보다, 쿠바 사람이 우리나라의 밤거리를 걷는 것이 더 위험할 것이다. 내가 만난 새장 속의 소년과 어둠 속의 흰 눈동자들은 한결같이 낙천적이고 친절했으며, 머리보단 마음으로 나를 대해주었다. 평화는 대낮의 새장 속에도 어둔 밤길에도 똑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