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밥 한술 - 박재은와인 강사이기도 한 나는 일반인들이 와인을 단순히‘먹고 마시는 거리’로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몸의 항산화를 막는‘포도’로 만든‘즙’을 발효시킨 원액이 와인이라는 이야기로부터 강의는 시작된다. 현대인의 건강을 망치는 주범이 바로‘산화’이니까. 각종 화학 첨가물이나 성의 없는 음식, 과식 등으로 몸이 산화되고, 스트레스나 지저분한 단어들, 인터넷이나 메말라가는 정서로 인해 마음이 산화된다. 건강한 몸도 마음이 산화되면 금방 녹슬기 시작한다. 마음이, 정신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 가운데‘수행’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오아시스 같은 일이다. 내 마음이 지금 평안한지, 흔들림이 있다면 무엇 때문인지, 자신의 마음과 대화를 하고 들여다보는 정성이야말로 오염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생활이 바빠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인데 웬 수행이냐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수행’이 가부좌를 틀고 열 몇 시간을 앉아 있어야 한다고, 그 방법만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자기 마음을 다잡고 있을 수 있다면, 그 끈을 야무지게 쥐고 있으려 노력한다면 그것이 곧 수행이라 믿는다. 마음을 잡고 길을 걷고, 마음의 흐름을 느끼며 운동을 하고,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책을 읽고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모두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는가. 무위하면서 방 안에 앉아 선을 이루기에 우리의 생활은 너무 바쁘게 돌아가니 말이다.
며칠 전, 수덕사에 다녀왔다. 원담스님의 영결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선농일치’를 강조하셨던원담 스님. 몸을 움직여 밭을 일구고, 일군 밭에서 내가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마음에 약이 된다고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대목이다. 노동도 수행으로 여기셨던 그 정신이 나는 좋았다. 거슬러 올라가면‘노동’의 중요성을 얼핏 알게 된 것은 아주 어릴적이었다.
평안도 출신으로, 전쟁 때 가족을 이끌고 내려온 내 할아버지는 생전에 늘 이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 내가 움직인 만큼 먹어야 한다. 밥을‘공으로(공짜로)’먹는 사람이 되지 마라.”할아버지는 종교를 갖지 않고 돌아가셨지만, 늘 하시던 말씀이나 행동들은 이미 불자였던 것 같다. 당
시 내가 좀더 어른이었으면 할아버지를 모시고 절에 다녔을 텐데, 아쉬움만 남는다. 어쨌든 할아버지께 귀에‘못이 박히도록’일한 만큼만 먹고, 자기가 먹을 것은 꼭 자기 노동을 통해서 챙기라고 들어서인지 나와 남동생은 어릴 적부터 제 손으로 먹고 살 궁리를 시작했던 것 같다.
각설,‘ 선농일치’를 실천하시는 스님들처럼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농산물을 받는 마음가짐이나 자세를 나부터 바로 하려 노력하고 있다. 내가 글로 입으로 손으로 음식을 전하는 사람이니, 농사를 짓는 노동의 신성함이나 그 땀의 결과인 농산물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고 있다면 내 주변으로부터 그 뜻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쌀과 밭 채소
며칠전 강원도 양구산 쌀을 샀다. 청정지역의 물과 공기와 흙을 담고 자란 쌀이 내게 오기까지의 노고가 새삼 감동으로 다가왔다. 담백해 보이는 쌀. 쌀은 우리가 생명을 부지해 나갈 수 있게 하는 주 에너지원이다. 양구 쌀을 살살 씻어 다시마 한 조각을 넣고 물을 잡아 밥을 지었다. 작은 압력솥에서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쌀. 뚜껑을 열었을 때, 그 촉촉하고 단 향이 코를 확 자극했다. 맛은 말할 것도 없고. 쌀이 우리삶에 중요한 이유는 대지의 온 기운을 인간에게 전달해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먼 옛날, 쌀이 먹을거리 이상의 가치를 지녔을 적에는 햅쌀
을 수확한 뒤 단지에 한 줌씩 모셔서 방 안에 두었다. 이것이 바로‘신주단지’. 그만큼 쌀을 귀하게 여겨왔다.
수입쌀까지 들어와 쌀이 남아돈다는 요즈음은 어떤가. 우리는 과연 쌀의 고마움이나 알고 밥을 먹는가. 현대인들은 뭐든지 당연하고, 내 손에 당장 없는 것부터 구하기 급급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모자란다. 내몸이 건강하게 살아 있어 끼니가 되면 배고픈 기별이 오는 것도 감사, 그때 밥 한 술로써 다시 에너지를 돌릴 수 있다면 감사, 보충한 에너지로 하루에 맞는 양의 노동을 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젊은 여자들끼리의 모임에 가면, 밥 반 공기는 예사로 남겨버린다. 다이어트다 뭐다 이유도 각각. 물질적으로 풍족해진 시대에 노동의 가치와 그 부산물의 소
중함이 잊혀져가니 안타깝다. 이 봄, 소중한 밥 한술과 싱싱한 쌈 채소 한장을 입 안에 꽉 채워 넣고 천천히 씹으며 내게 진정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헤아려 보자.□
박재은님은 프랑스 꼬르동 블루요리 제과부분 전 과정을 수료하고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현재 요리사와 파티 플래너로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