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구 이야기 \" 향로香爐\"불보살에 대한 공양은 향香·화花·등燈의 세 가지가 기본을 이룬다. 향공양香供養은 원래 귀인을 맞이할 때 향을 몸에 뿌려 향기를 내게 하고 악취를 제거하며 해충을 쫓기 위해 사용하던 관습이 불보살 공양의 한 요소로 화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 부정을 제거하고 마음의 때까지 씻어준다는 의미를 가지면서 불전에 향로를 안치하고 향을 공양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향공양을 위해 필요한 불구가 향로다. 형태에 따라 손잡이가 없는 거향로居香爐, 손잡이가 있는 병향로甁香爐, 걸어두는 현향로懸香爐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재료에 따라서는 금, 은, 금동, 백동 향로 등으로 구분되며 토기, 청자, 목기에 의한 향로도 있다. 그리고 공예기법으로는 동에 상감한 은입사, 금입사의 향로가 있다.
우리나라는《삼국유사三國遺事》에 중국 양梁으로부터 향이 전래된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에 이미 향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경주 신선사 상인암의 두 인물상 중 앞서가는 인물이 노신에 긴 손잡이가 달린 형태의 향로를 들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에도 사용하였다는 것을 경주 석굴암 주실 주벽의 나한상 중2상이 든 향로를 통해 알 수 있으며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의 비천상, 경주 남산 탑곡 조상군 중 동서 승상僧像등도 이러한 향로를 들고 있다. 현재까지는 국내에 한두 점이 전하고 있을 뿐이나 일본 정창원正倉院에는 5점이 수장되어 있다고 한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향로로 낙랑지역에서 박산로博山爐가 출토된 적이 있고, 고구려 고분벽화인 쌍영총의 부인행렬도와 백제의 용봉향로龍鳳香爐, 신라의 단석산斷石山신선사마애불神仙寺磨崖佛공양상供養像등을 통해 향로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례가 활발히 행해졌고 이 시기의 향로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청동제에 은입사 기법을 사용한 향로가 크게 유행하였는데 그릇 모양의 몸체에 나팔처럼 생긴 높은 받침대가 있는 특이한 형태 때문에 향완香이 라고 불린다. 조선시대에도 향로는 각종 제사에서 사용되었는데 대체로 이 시대에는 고려의 전통을 잇는 향완형 향로와 동물형 다리를 지닌 세발 솥鼎의 형태로 된 향로가 많이 제작되었다.
해인사 박물관에도 이런 세발 솥 형태의 향로들이 있는데, 이 중 조선시대의 청동은입사정형향로靑銅銀入絲鼎形香爐는 정의 형태로 전면에 은입사 된 연화문蓮花紋과 당초문唐草紋, 범자문梵字紋이 잘 조화된 유물이다.《 가야산해인사중수전말기伽倻山海印寺重修顚末記》에 의하면 인수仁粹, 인혜대비仁惠大妃가 1490년에 동철일천오백근銅鐵一千五百斤과 납철삼백근 鐵三百斤등을 모아 불기佛器, 법물法物등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당시에 주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특이한 형태의 향로가 있는데 코끼리가 탑을 이고 있는 재미있는 모양으로 코끼리탑형향로라 한다. 이는 개산開山당시의 유물로서 금, 은, 동 세 가지를 합하여 만든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인도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향냄새는 절의 고즈넉하고 경건한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오늘날은 향과 사찰을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절에서 공양되는 여러 불구들 중 향로는 불전에 분향하는 중요한 공양구로 세심함을 깃들인 아름다운 공예품으로서의 가치 역시 높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