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같은 시간이었다. 해인사에서 지냈던 일주일.
우람차게 뻗은 소나무,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 맑고 청명한 하늘에 싸한 공기, 쏟아질 듯한 별… 모든 것이 아련하다. 그러나 확연히 달라진 내 마음만큼은 또렷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를 훌쩍 키워낸 곳, 나는 해인사를 영원한 내 마음의 안식처로 삼을거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혼자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다. 명상의 시간도 갖고 인생에 대한 고민도 해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니며 꾸준히 유학준비를 해온 나, 막상 합격발표를 앞두고 흔들리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결국 어머니를 설득시킨 끝에 당도한 곳이 해인사다. 사실 이렇게 큰 사찰은 처음봤다. 무슨 마을이나 되는 듯하다.
오전 11시나 되어야 눈곱을 떼고, 저녁 일곱 시가 돼서야 친구들을 만나 놀던 나에게 해인사의 생활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새벽 6시에 아침 공양을 하고, 오후 5시 50분에 저녁 공양을 마친다. 저녁 일곱 시면 마치 밤 12시라도 된 듯 정적에 휘감기고 별들이 초롱초롱하다. 파란 물이 흐르는 계곡은 신기한 놀이터다. 위엄 있는 바위들을 타고 놀며 자연과 한껏 친분을 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삼천배’의 경험이다. 돌이켜보면‘내가 어떻게 해냈을까’의문이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한 삼천배는 저녁 8시에야 끝마쳤다. 후들거리는 다리에는 용케 몸뚱이가 얹혀 있었고, 처음으로 숨쉬는 행복을 맛봤다.
그리고 더할 수 없는 성취감은 감춰 두고 싶다.
누구도 삼천배를 강요한 사람이 없는데, 어디선가‘삼천배’라는 말을 듣고 스스로 시작을 했다. 그러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그만 둘까?’수없이 스쳐간 꼬임이다. 그러나 일배 일배를 더할수록 넘쳐나는 부처님의 환희로운 미소가 나를 지켜주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무릎의 통증과 저린 손목을 움켜잡으며 수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대학 진학을 앞둔 나로서는 인생역전의 기로에 서 있는 것과 다름없는데, 인내속에 작은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 그리고 새로운 체험(?)도 했다. 몸이 붕 떠 있는 마비의 고행을 경험한 나는 다음날 으스러지는 다리의 아픔에서 잠이 깼다.
‘아, 나는 영락없이 불구자가되었구나!’생각했다.
집에 돌아가기 전날, 나의 도전은 다시 시작됐다. 가야산 정상에 다녀온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물통 하나 달랑 허리에 차고 아무 채비도 없었다. 마음 하나면 족하지 싶었다.
뜻 깊고 장대한 해인사의 마지막 날을 만들러 떠났다. 그러나 장대한 날은 역시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바른 안목을 가진 어머니의 산’으로 불린다는 가야산, 정상은 어머니의 품을 구현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크고 장대한 바위들이 서로 솟구쳐 있었는데, 얼음과 엉겨 있어 매우 미끄러웠다. 어쩔 수 없이 곰이 되었다. 맨손과 두 발로 엉금엉금 기어 어머니 산에 안겼다. 계곡처럼 비껴 지르는 험한 바위를 인공적으로 극복해 놓은 철계단도‘헉헉’거리며 올랐다. 그리고 탁 트인 세상과 마주했다. 뻥 뚫린 마음에 세상이 들어왔고, 이제 그 세상에 나갈 채비를 마친 느낌이었다. 앞으로 세세한 세상과 만나게 될 것이다. 어려움도 물론 많을 거다. 그러나 일배 일배의 정성과 진실한 한걸음으로 나아가리라 마음먹었다.
해인사를 다녀온 후 새로운 습관들이 생겼다. 육류 식단을 주로 찾던 내가 어느덧 나물을 찾고 있다. 밤 하늘 별 세는 것은 또 다른 낙이 됐다. 모르는 사람과 길거리에서 눈이 마주치면 살짝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