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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과 함께하는 자비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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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해인 편집실 2008년 04월 314호
스님들과 함께하는 자비행선 해인사는 지난 3월 9일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스님들과 함께하는 자비행선慈悲行禪을 시작했다.
봄을 맞아 새로이 시작하는 포교프로그램이다. 주지스님이 직접 동행하며 안내하겠노라는 말씀가지 있었다. 그리고 시작 당일 70여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이들은 봄 햇살을 헤치며 해인사의 공기 속에 녹아들었다.
자비행선을 시작하기 전 주지스님의 짧은 법문은 참가자들에게 먹먹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2시간 남짓 행선은 삶의 큰 쉼이며, 전환이었고 또 다른 시작이었다. 보경당 앞 마당의 해인도를 돌며 시작한 3월 9일 자비행선은 지족암을 향하는 오솔길을 거쳐 국일암 오솔길, 산선암, 금선암 계곡길을 지나 원당암, 홍제암을 두르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다시 해안도를 돌며 끝이 났다.
이날 자비행선에는 주지스님을 비롯해 재경스님, 포교국장 정현 스님, 호법국장 일형스님, 선원의 본학 스님, 회계 보운 스님 등이 동행했다.
3월 16일 자비행선은 가야산 중턱의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이었고, 또 다른 감흥을 주었다.

스님들과 함께하는 자비행선 첫날, 주지 현응 스님의 법문을 모았다.


선禪이란 무엇인가?

인도말(범어)로 dhyana(디야나)라고 합니다. 선나禪那, 타연나馱衍那등으로 음역하지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전주專注해서 자세히 사유思惟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마음으로 고요히 잘 살펴 생각한다, 성찰한다’는 뜻으로 일본에서‘첸(zen)’이라고 합니다.


행선行禪은 무엇인가?

움직이며 하는 선을 말합니다. 앉아서 하면 좌선坐禪, 누워서 하면 와선臥禪인 것입니다.
행선이라면 일상생활 가운데서 하는 선을 말합니다.

왜 자비행선慈悲行禪인가?

불교의 가르침은 자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함으로서 자비심이 우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행선을 통해 나를 살피고 모든 세상과 나와의 상관관계를 잘 헤아리면 모두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데, 그 속에서 상대에 대한 애틋한 연민의 마음이 올라오게 됩니다.
바로‘자비慈悲’입니다. 그래서 ‘자비행선’이라하는 것입니다.


무아無我

모든 존재는 다른 것과의 관계(인연)에서 생성되고 유지됩니다. 주변과의 연관된 관계 없이 어떤 것도 독단으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밀접한 상관 관계와 인연에 따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아無我라 합니다.


무상無常

무상은 무엇일까요? 모든것이 다 변한다는 것입니다.
봄을 생각해봅시다. 언제부터 봄이 왔습니까? 또 어느 시점에 봄이 간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무생(無生:태어남이 없다)이라 합니다.
보통 불생불멸(不生不滅:영원히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을 말하는데 불생이 무생입니다. 그런데 그 뜻이 태어나지 않는다가 아니라 변화한다는 뜻입니다.
콩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시점에서 콩이 태어났다고 하겠습니까? 콩의 씨앗이 발아해 줄기가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데, 어느 일생에서 태어났다고 정할 수 있겠습니까?‘ 무생’이
라 함은 바로 이것입니다. 봄을 어느 시점에서 왔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空

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고, 모든 존재는 연관관계에 있으며, 변화과 정에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일러 공空이라 합니다.


자비행선 첫날 주지스님이 던져준 주제는 \'봄\'이다.
자비행선을 통해 봄을 찾아보라는 스님의 말씀이다.
\'봄은 무엇인가, 언제 왔는가, 어디까지 왔는가? 를 살펴보고, 살펴보는 마음도 보라신다.
그리고 나는 어떤 관계속에 있는가, 두고 온 나의 일들도 살펴볼것을 권했다.
무아, 무상, 봄을 생각하며 산책하듯 자비행선이 시작됐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모든 세상사를 규정짓고, 분별한다. 그 분별의 실체를 지대로 살펴본적이 있었던가?
그저 누군가 \'봄\'을 말하니 \'봄\'이라 생각할 뿐이다. 실체를 제대로 볼 줄 모르니 내 것만 고집했다.
스님은 지족암에 이르러 다시 지족을 말했다.


지족知足

‘지족知足’은‘만족할 줄 안다’는 뜻입니다. 미륵부처님이 계신 도솔과 같은 뜻입니다. 도솔은 인도말(tusita)의 음 표기지요. 지족암의 본 이름이 도솔암입니다.
신라 말 고려 초의 고승 희랑 대사의 기도처였는데 오래도록 터만 남아 있다가 조선 후엽(1856) 추담 대사가 창건하고 후에 환운 스님이 건물을 중건하면서 지족암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지족이란 말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바로 욕심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들은 하고자 하는 바를 할 때, 어느 선에서 만족하십니까? 그 선을 조정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선은 수행, 법률, 관습에 의해 조정이 됩니다. 앞서 모든 존재는 상관관계에 의해 이뤄졌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만족의 선도 역시 이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만족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만족, 사회적 국가적인 만족 역시 만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만족을 위해 타인의 만족을 침해해서는 안됩니다. 사회적, 정치적, 개인적인 고도의 극기 훈련이 있어야 타인의 만족을 침해하지 않을 있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선을 찾는 것은 세세히 관계를 살필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자유, 평등, 평화가 모두 지족의 문제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