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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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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성우 2008년 04월 314호
활안 스님은 수행자가 깨달음이 무엇이며, 어떻게 닦아야 합니까?’이런 질문을 해올 때면“네 설거지나 잘 하고 살아라”하며 퉁명스레 답하시곤 했다. 깨달음을 찾고 구하면서 요리조리 따지고 망상하고 분별하고 집착하는 너의 전도된 생각부터 비워서 설거지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설거지 삼매


“여보, 빨리 일어나 설거지 안 하고 뭐해!”
“아~, 알았다니께!”

아침마다 아내(집에서는‘마님’이라 부른다)는 방문을 열자말자 고함을 지른다. 그러면 화들짝 놀란 나는 이불 위에서 버티다가, 계속되는 속사포 잔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주방으로 향한다. 눈곱만 떼어낸 채 고무장갑을 낀 후 그릇을 하나씩 닦고 물로 헹궈내는 가사노동으로 나의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이런 풍경이 벌어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2년 전, 12년 동안 다니던 현대불교신문사를 나와 전업작가로 홀로서기를 하면서부터 하루 한 번 정도 거들던 설거지가 올해부터는 어느덧 전적으로 내 몫이 되고 말았다. 꼬박꼬박 나오던 월급 대신 부정기적인, 그것도 그리 넉넉지 못한 생활비를 주다 보니 집안에서 발언권이 약해진 것은 뻔한 일. 아내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어 유일하게나마 가사노동을 돕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약 30분 정도 소요되던 설거지 시간이 이제는 20분 정도로 단축될 만큼 나날이 설거지 실력이 향상되는 것 같다. 또, 마지못해서 하던 설거지도 어느새 공양을 마치고 발우를 닦는 선객의 심정이 되어 자연스러운‘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점검하는 공부가 되고 있다. 이게 뭔 말이냐 하면, 설거지하면서 얼마나 분별심과 망상을 일으키지 않고 설거지에만 몰두하고 있는가를 돌아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직‘설거지 수행’은 달인達人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에 분명하다. 아직도 내게 설거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번거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설거지보다는 그 시간에 일을 하거나, 염불ㆍ주력을 하거나 좌선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설거지는 아내가 하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내 역시학원 강사를 하며 이중의 일부담을 떠 안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설거지는 내게 많은 깨우침을 주고 있는 불사佛事임에 틀림없다. 설거지를 하다보면‘아내가 참 힘든 일을, 하루 세번씩 반복하는구나’,‘ 세상의 많은 보살님들 덕분에 모든 가정과 사회가 저절로 굴러가는구나’하고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음식의 찌꺼기를 치울 때면, 맛있고 향기롭게 느끼던 음식을 어느새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로 인식하고 있는 간사한 분별심을 확인할 수도 있다. 수행하는 시간, 설거지하는 시간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망상 역시 확연히 자각된다. 일상삼매一相三昧, 일행삼매一行三昧를 말하면서도 완전히 훈습이 되지않았다는 뜻이다. 즉, 일체를 하나(일심, 무량광불)로 보는 일상삼매가 되지 못하고, 그것이 쭈욱 이어지지도 못하니 일행삼매 역시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육조혜능 스님이 강조한 일상ㆍ일행삼매가 한결같다면 수행은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이제 몇 년 설거지를 하고서 그것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리라.‘ 번뇌 즉 보리’,‘ 생사 즉 열반’의 도리를 아무리 말로 한들 그것을 체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달마 선사가 선禪의 이치를 깨달아‘이입理入’이 된 후에는 부처행을 실천하라는‘행입行入’을 강조한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하나라도 깨친 만큼 실천하여 완전히 체득하는 삶이‘평상심이도인 삶’일것이다.
《무문관》제7칙에는유명한조주세발(趙州洗鉢: 조주스님의발우씻기) 공안이 나온다.

조주종심 선사에게 한 선승이 물었다.

“제가 선방에 처음 왔습니다. 잘 지도해 주십시오.”

조주선사가말하였다.

“죽은 먹었느냐, 아직 안 먹었느냐?”
“죽을 먹었습니다.”
“발우는 씻었겠구나.”

그말에 선승이 깨우친 바가 있었다.

이 공안에서 보듯이 선방에서의 아침은 죽을 먹는것으로 정해져 있다. 또한 자신의 발우를 직접 씻는 것은 일상적인 출가생활이다. 이렇듯 진리나 깨달음이라는 것은 우리들 일상생활 가운데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무문 선사는 이 공안에 대해,“ 너무도 분명하여 깨닫기 되려 어렵네. 등燈이 곧 불임을 알았더라면 밥이 뜸이 든지 오래일 텐데”라고 노래했다. 너무나도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깨닫기 어려운 것이 진리라는 표현이다. 마치 물 속에서 물을 찾고, 소를 탄 채 소를 찾고, 종로에서 서울 찾는 구도자처럼‘도道가 눈앞에 있고’(목격도존目擊道存),‘ 도아닌게없건만’(도무소부재道無所不在) 알아보지 못하는 셈이다.

나는 조주스님의 화두를 들고서 오늘 아침에도 무사히 설거지를 마치고 일터로 나왔다. 지금 다시 설거지에 대한 글을 쓰면서, 과거를 뒤돌아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떠 오른다.

2년전, 활안 스님(송광사 천자암 조실)의 법문을 엮은 책 <여보게, 설거지는 했는가>란 제목도 설거지 하기 전, 문득 떠오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활안 스님은 수행자가‘깨달음이 무엇이며, 어떻게 닦아야 합니까?’이런 질문을 해올 때면“네 설거지나 잘 하고 살아라”하며 퉁명스레 답하시곤 했다. 깨달음을 찾고 구하면서 요리조리 따지고 망상하고 분별하고 집착하는 너의 전도된 생각부터 비워서 설거지하라는 가르침이었다.

활안 스님 외에도 설거지를 할 때면 자주 떠오르는 분이 틱낫한 스님이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는 설거지만 해야 한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자신이 설거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하게 깨닫고 있어야 한다”는 스님의 법문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고무장갑을 끼고‘설거지 삼매’를 닦으려 한다. 그리고 염불하고 좌선하는 시간이 설거지할 때와 같은지 다른지를 점검해 볼 것이다. 한결같은 일상ㆍ일행삼매가 되는날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