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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발신發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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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 - 박재은 2008년 03월 313호
유채꿀차 향기로운발신發信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말만 던질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어느 오후, 아무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가 기氣를 연구하신다는 분의 강의를 잠깐 보았다.
21세기의 상식으로는 언뜻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더러 있었지만, 선생의 어느 한 마디가 나를 사로잡았는데. 내용인즉, 사람의 얼굴에는 수신 기관과 발신 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두 눈, 두 귀, 두 콧구멍으로 시각적인 정보를 수신하고, 청각적인 정보를 수신하고, 후각적인 정보를 수신한다는 말. 물론, 입도 수신하는 기관이다. 먹으니까.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 있으려면 먹어야 하니까, 입도 수신 기관이다. 하지만 동시에 입은 발신 기관이다. 표현하기 때문이다. 말을 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입을 통해 나오는 한 마디 말은 그래서 중요하다.
얼굴 위에 있는 여섯 구멍의 수신 기관으로 받아들인 정보와 감정을 뭉뚱그려‘와, 멋지다’‘에이, 시시해’‘그걸 말이라고 하냐’‘다시 보고 싶다’등의 표현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발신 기관이다. 그래서 입은 두 눈과 두 귓구멍과 두 콧구멍을 합친 것만 한 크기다.

입만 잘 간수해도 괜찮게 살 수 있다. 입으로 받아들이는 것, 즉 먹는것부터 살펴보자. 우리의 입 안에는 맛을 느낄 수 있는 세포가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내 입 안의 감각만 집중해봐도 지금 먹는 음식의 맛이 내게 맞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장금이’의 절대 미감이나 영화속 소믈리에(와인 전문가)의 칼같이 정확한 혀는 사실 우리 모두가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다.
하지만,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허둥지둥 먹는 식사, 티브이를 보면서 대충 입으로 구겨 넣는 식사, 휴대폰 통화하면서 꿀떡 꿀떡 넘겨버리는 식사는 그 맛이 채 감지되기도 전에 위장으로 떨어진다. 맛을 느끼는 입을 타고 났는데도 안 쓰고 평생 산다니 얼마나 손해인가. 내가 먹는 음식에 집중하고, 그 맛을 감별하고 내게 맞는 식단을 선택하며 한끼 한끼를 먹다 보면 입이 귀해진다. 귀해진 입으로는 귀한 발신이 나간다. 좋은 말, 성급하지 않은 말, 많이 생각한 말, 배려하는 말, 향기로운 말이 나간다. 뜬금 없는 소리로 들린다면 한 번 생각해보시라.
말씀 향기롭게 하시는 스님이나 시인들은 식사도 향기롭게 하신다. 천천히 씹고, 수저의 놀림도 급하지 않아 귀태가 난다. 아이들에게 밥상머리 예절만 잘 가르쳐도 나라의 수준이 올라갈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가 예 있다.

그렇다면 향기로운 발신을 하는 입을 만드는 음식은 무엇이 있을까?
정직한 식재료를 많이 가공하지 않고 만든 메뉴라면 다 입에 좋을 것이지만, 나는 특히 향그러운 음료를 권하고 싶다. 한방차나 과실차, 녹차와 같은 차 종류도 좋고, 과실주나 과실 원액을 물에 희석한 음료도 좋겠다.
적당한 온도의 깨끗한 물 한 모금도 훌륭하고, 쌉싸래한 녹즙도 괜찮다.
지난 출장 때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식후에‘유채꿀차’를 차갑게 마실 수 있었다. 아카시아 꿀만큼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꽃 향이 가득했던 음료. 잔잔하게 퍼지는 향기가 입 안에 가득 차면서 식사의 잔 맛이 싹 가셔지는 느낌이었다. 원래 꿀물은 ‘엄청 달다’라는 생각만 해왔고, 몸이 안 좋을 때 뜨겁게 끓인 물에 아무 꿀이나 넣고 풀어 마시던 게 고작이었다. 제주도에서 얻어 마신 꿀차이후로‘꿀’에 관심이 생긴 나는 입맛이 둔해지고 피로가 쌓이면 유채 꿀차를 마신다. 꿀차에 물리면 맑은 녹차를 마신다. 녹차가 혀에 남은 기름기를 다 앗아가면, 매실 발효액에 물을 부어 마신다. 입 안이 향기로워지면서 머리에 아름다운 생각이 잠시나마 가득 찬다. 그 머리와 입과 마음으로는 험한 말이나 성급한 의견이 불쑥 튀어나오기 어렵다.
늘 빡빡한 스케줄에 치여 일하는 나의‘점점 조급해지는’성격을 고치는 데 특효다. 차나 물을 잘 챙겨 마시면 몸이 허기지지 않아 끼니마다 과식도 덜 하게 된다. 특히 군것질이 당길때, 오히려 단맛의 차를 한 잔 천천히 마시면 과자 봉지를 뜯던 손을 슬그머니 멈추게 된다.

몸에도 좋고 언행에도 이로운 음료 한 잔을 잘 찾아 마시며,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말만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