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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가, 수행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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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이야기 그림 이야기 - 김현정 2008년 03월 313호
조맹부조맹부(趙孟;1254~1322) <수석소림도秀石疏林圖> 봄이 오는가, 수행을 하는가 - 김현정

입춘立春을 거쳐 우수雨水가 지나고 나니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하늘과 땅이 살짝 위치만 바꿨을 뿐인데 만물은 그 기지개에 호들갑을 떨며 부산스럽기 짝이 없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새벽 기온이 어찌나 쨍하던지 올해는 봄이 아예 안 오려니 했다. 그런데 어제부터 봄인 것이, 오후 햇볕이 어찌나 좋던지 온 동네 고양이가 대청 마루 아래에 모여 앉아 일광욕을 하기에도 충분하였다.
들판에는 한겨울 얼었던 땅이 몸을 풀듯이 한참 몸살을 하겠다. 어려서부터 동쪽에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기상청보다 내 몸이 먼저 봄을 알았다. 참 몹쓸 습관이긴 하지만 그 봄바람에 기침과 몸살이 시작되면 그것으로 내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 얄궂은 연례행사를 마칠 때쯤이면 방 안에 들어오는 햇살의 깊이가 조금씩 짧아지고 강남부터 철 이른 꽃 소식이 입소문으로 오고갈 것이다. 그래서인지 감기기운으로 가슴이 싸늘해질 즈음이면 남쪽 들녘에 피어나 있는 파란 보리싹만큼이나 마음이 설레어 그 위로 피어오르는 아련한 아지랑이가 거짓이라 해도 기꺼이 봄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시간과 세월의 장단長短이 반드시 상대적인 것을 다시 말해 무엇하겠는가 싶다. 기다리면 더디지만 서두르면 짧은 것이 그 세월이다. 그러니 장차올 봄을 기다려야겠는가, 혹은 재촉해야 하는가하는 그 결정이 쉽지 않다. 무릇 풍화설월風花雪月은 본래 한가롭고, 또한 꽃들은 서로 그 피는 때를 다투지 아니하니 그것을 재촉한들 올 것이며 기다린들 오지 않을 일이던가. 스승께서 가르치시기를‘세상일에 악착스레(老攘)하지 않을 뿐이요, 다만 자연의 질서를 스승으로 삼을 일이다’하셨다. 창 아래 따뜻한 햇살을 등지고 앉아 아리송한 더하기 빼기를 하다 보니 오늘도 멍청한 짓을 하나 더 보탠 것이다.

조주趙州스님의 일화이다.
어느날 찾아온 마대부馬大夫가 스님께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수행을 하십니까?”
“제가 만약 수행을 한다면 큰일이 나지요.”
다시 마대부가 물었다.
“스님께서 수행하지 않으시면 누구더러 수행하라하십니까?”
“대부야말로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어찌 수행한다 하겠습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셨다.
“대부가 만약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인왕人王의 자리에 있을 수 있겠소? 굶주림에 허덕이며 꽁꽁 얼어 붙은 경지에서 풀려 나올 기약이 없을 것이오.”
대부는 이에 눈물을 흘리며 절하고 물러났다.

대부大夫의 수행과 선사禪師의 그것은 같은 것인가 혹은 다른 것인가. 한 사람은 진종일 노력하고 악착같이 힘들여도 목적지조차 알 수 없으며 한 사람은 하지 않아도 하는 것이니, 아무리 생이지지生而知之나 곤이지지困而知之가 모두 아는 것에 이르러서는 같다며 공자께서 이리 둘러 안심을 시킨다 하더라도 나 같은 범부에겐 이 일이 진정 쉬운 노릇은 아니다.
《채근담採根談》한 구절을 읽다보니‘사람이 줄 있는 거문고는 타지만 줄 없는 거문고 탈 줄은 모른다’고 하였고,‘ 글자 있는 책은 읽어도 글자 없는 책은 읽지 못한다’하였다. 그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다만 줄 없는 거문고(無絃琴)와 글 없는책(無字書)의 소용을 몰랐던 것 뿐이었으니 이 또한 답답할 노릇이다.

조맹부(趙孟;1254~1322)는 자신이 그린 대나무와 난초를 그린다 하지 않고 쓴다(寫)고 강조하였다. 이는 사군자화를 그린 많은 화가들이 사군자를 서예의 한 분야로 분류하여 넣고 글을 쓰는 기법으로 댓잎과 난꽃을 피워냈다고 하는 것과는 좀 다른 문제이다. 조맹부가 강조한 것은 대나무와 난초의 그 뜻을 베낀다는 의미가 강하다. 좀 과장해서 그는“그림에 뜻(意)이 충분하다면 그 모양이 같고 다름을 구하지 말라(意足不求顔色似)”라고 강조하였지만, 결국 그의 그림 속의 난과 대나무 또 바위를 표현한 붓질은 그 사물이 지닌 뜻과 질을 충분히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수석소림도秀石疏林圖>는 오래 된 고목과 작은 대나무, 곳곳에 피어난 난초가 바위와 어울린 광경을 묘사한 그림이다. 산수화를 감상하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어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 그림은 풍광이나 구도보다는 그 눈길을 천년전 조맹부의 붓 끝을 따라가며 그 필선 하나 하나를 감상해야 제대로이다. 그러니 이 그림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림 속의 주인공이 아닌 그림을 그린 작가와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붓질은 마르고 거칠지만 굵으면서도 끊어질 듯한 붓놀림은 바위에 부피를 주고 형태를 만들며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다. 다시 그의 붓질은 윤택하게 변하여 바위 사이사이 정갈하고 날렵하게 댓잎을 뽑아내고, 뭉툭하면서도 담담한 붓질로 고목의 단단한 나뭇가지 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 필선을 따르다보면 어느새 내 옆에는 천년 전조맹부가 종이 위에 송설체松雪體의 글씨를 또 옮기고 있는 것이다. 글씨를 의식하지 않았으나 그림 안에 붓질의 기본이라는 그 뜻을 담았으니 다시득의 작得意作이 되었다.
겉모습만 구하다보면 늘 패착이다. 책 속의 글자만 찾다보면 글자 없는 책은 읽지 못하고, 그림 속의 형태만 집착하다 보면 작가의 뜻을 놓친다. 봄을 채근하여 서두르다보면 봄이 오도록 알아채지 못하고, 도를 마음에 두고 그 길에만 집착하면 진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그 길은 보이지 않고, 아프거나 말거나 난 오늘도 여전히 봄을 채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