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밝은 이해안선을 따라가는 길. 드물게 들어선 주택가마저 지나고 나니 얼마 가지 않아 길이 끊기고 만다. Siboney는 작은 어촌이었다. 길 끝에서 발을 돌려나가려는 순간, 허름한 주택 몇 채가 눈에 든다. 불규칙한 돌을 쌓아 만든 벽에 양철 지붕을 얹은 작은 집은 정말 엉성하기 짝이 없다. 빨랫줄이 늘어져 있는 집 안에서 남자 한 명이 나왔다. 웃통을 벗은 채 나온 그의 표정은 약간의 경계심과 호기심을 안고 있었다. 나는 먼저 힘을 풀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도 웃으며 악수를 받아준다.
“저기 물 한 잔 주시겠어요?”
물을 따라 내오는 어부의 아내는 매우 친절하다. 그렇지만 그녀의 손과 컵, 물은 깨끗하지 못하다. 이들도 먹는 것이고, 이렇게 공손하게 대접을 하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시원하게 물을 한 잔 들이켜고 나서, 한 잔을 더 얻어 마셨다. 천사를 만나본 일은 없지만, 내 앞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검은 피부의 여인네와 아이들의 미소가 이들이 천사임을 말해준다. 이방인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천사들에게 가방에 든 빵을 꺼내 건넸다. 천사는 어른들의 눈을 바라보았고, 눈을 통해 허락을 받은 후에야 빵을 손에 쥐었다. 역시 어린아이에게 부모란 신과 같은 존재인가 보다. 그러니 천사들에게 허락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닌가!
힘 좋게 생긴 주인 남자는 자신이 어부라고 말한다. 배를 타보지 않겠냐고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그리고 방 안 어디에서 술 한 병을 꺼내와 잔을 건넨다. 우린 건배를 했고, 서로에게 한 잔씩 따라 주었다. 태양이 시들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술기운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문에 기대 서 있는 아이들,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보다 더 밝은 빛을 뿜어 내는 천사들의 수줍음을 기억하며 나온다.
‘ 감사하오! 과연 내가 당신처럼 이방인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겠소!’
나는 고마움을 표하며 어부의 집을 나선다. 세 바퀴의 자전거 택시에 올라 숙소로 향한다. 택시를 굴리는 이이는 남자의 삶으로, 남편의 삶으로, 아버지의 삶으로 바퀴를 굴린다. 남자는 목적지를 정확히 모른 채 나를 태운 것 같다. 도로 옆에 붙은 농가에 들러 길을 묻는 일이 잦다. 어색한 미소와 눈빛도 이이의 알리바이를 만들지는 못했다. 불안한 항해를 하고 있다. 어느새 해가
넘어가려 한다.
돌고! 돌고! 돌고!
하지만 나는‘아버지의 자전거’를 멈추게 할 자신이 없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그의 페달이 멈췄다. 하지만 이곳은 나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씁쓸한 한숨으로 힘이 빠진 아버지의
어깨가 노을처럼 지쳐간다. 그리곤 이내 다시 페달을 밟아 나간다. 노을을 먹은 붉은 땀이 송골송골 샘 솟는다. 뒷목과 어깨, 그리고 등에 흐르던 땀은 이제 소금으로 변했다. 이 하얀 알갱이가‘아버지의 눈물’이며, ‘자식들의 밥’이다.
아버지의 몸도 지쳤고, 보는 나도 지쳤다. 오르막을 핑계 삼아 뛰어 내렸다. 어느새 달이 떠버린 하늘, 어두운 아스팔트 위에 빈약한 랜턴이 빛을 토해낸다. 오르막의 마루에 오르자 아버지의 어깨엔 달맞이 꽃처럼 빛 나는 땀이 다시 피어난다. ‘돈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무엇일까?’그것은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노리갯거리로 삼는 일, 돈이 필요한 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다.
자전거 바퀴가 구르는 동안 돈은 밥이 되고 가족들의 웃음이 되어간다. 5달러를 말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10달러를 건넨다. 나는 아버지의 웃음을 보고 싶었다.
‘당신은 나와 다르지 않고, 당신의 가족은 나의 가족과 다르지 않소! 하지만 이 정도가 지금 나의 최선이오!’‘나도 자전거 페달을 굴리고 있는 중이라오!’
천사는 커서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 천사들을 보살핀다. 우리는 한때 천사였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를 망각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린 지금도 여전히 천사라는 사실이다. 과거를 돌아볼 필요는 없다.
밝은 본성을 따라갈 때 스스로가 천사이고 부처임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