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부전 소임살이 - 징암 / 해인승가대학 1학년
진주 의곡사, 진주 상봉동동 415번지에 위치한 의곡사는 신라시대인 665년(문무왕 5) 혜통惠通조사가 창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이 절에서 승병들을 양성하여 왜적과 싸웠으며, 진주성이 함락된 뒤에도 계속 승병들이 모여들어 이 절을 중심으로 항전했다. 1618년(광해군10) 성간性侃스님이 관청의 도움으로 중창했다. 조선시대 후기에도 몇 차례 중건과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고종 광무光武2년(1898) 석종石宗선사가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의곡사는 진주 시가지 중앙에 있는 중앙시장을 지나 진주중학교 근처에 위치해 있어 진주불자들은 물론 외지인들도 쉽게 참배할 수 있다. 또, 산사음악회를 치를 정도로 주차장이 넓어서 한번에 많은 수의 차량이 몰려도 주차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천년의 고찰 의곡사를 은사스님과 함께 처음 방문했을 때는 정말 이렇게 오랫동안 부전 소임을 볼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동안 소임을 보시던 스님이 서울로 가시는 바람에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급하게 오게 된 것일 뿐. 2007년 9월에 갓 계를 받고서 잘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곡사에 온 첫 날, 천도재가 있었다. 행자교육원에서도 관음시식은 배우지 않았었다. 즉 난생 처음 해보는 것이다.
주지스님께서“징암이는 목탁만 치면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수십명의 신도와 재주들이 앉아 계시는 법당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앞이 깜깜했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진짜~, 한 번만 틀려도 쫓겨나는 거 아닌가?”행자 때 그리고 교육원 시절에 열심히 예식을 외우고 목탁도 쳐보고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고, 두렵고, 정신이 혼미했다. 그러나 이미 닥친 일, 떨리는 마음에 목소리만 크게 내질렀다. 그런데, 신도님들도 주지스님께서도 목소리가 크고 염불을 잘 한다고 칭찬해주셨다. 주지스님은 물론 신도님들까지도 나의 처지를 알고 있어서인지 모두 감싸주는 듯 했다. 그 너그러움에 한없이 감사할 뿐이었다. 그리고, 보답하는 뜻으로, 더 잘 할 수 있도록 매일 연습을 했다. 사실 모든 예식이 다 처음으로 하는 것이었다. 행자 때는 주어진 소임 때문에 법당에 사시마지 한번 올려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모든 일은 서툴렀고 잔 실수는 연방 터졌다. 단지 이 모든 실수를 만회할 수 있었던 것은 목이 쉬어라고 크게 내지른 목소리뿐 일것이다. 그리고 신심일 것이다.
저녁 이맘때면
어김없이 방 앞에 와 우는 새 있어
예불하러 가는 이 목을 쓸어내린다.
내 소리는 부처님 불러 간절하건만
너의 울음은 어이 그리 구슬푸느뇨
그 소리 듣고 빛나는 님 날아들듯이
이 기도 듣고 자비로운 미소로
관세음보살님 강림하소서
저녁예불을 하러 갈 때면 방 앞에 항상 와서 우는 새가 있었다. 하루 이틀 매일 같이 찾아오는 새가 고마워서 문득 지어본 시다. 소리는 그 사람의 심성을 대변한다 했던가? 새의 소리는 님을 찾는 애달픈 마음이 묻어, 듣는 내 마음까지 끌리게 하였다. 그것은 바로 매력이었다. 부처님을 부르는 이 초발심자의 소리에는 분명 신심이 있는 자가 들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말머리를 조금 돌려보겠다. 이곳 진주는 신심이 남다른 것 같다. 한 집 건너 승복점이 있고, 불교용품점이 있고, 또 불교서점이 있다. 승복차림으로 길거리를 다닐 때, 서울, 부산, 대구 그 어느 도시에서보다 편안함을 느낀다. 불교신자가 그 만큼 많고, 신심도 깊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신심 깊은 도시에 위치한 의곡사의 신도님들은 더 없이 깊은 신심을 가지신것 같다.
해인사에서 행자생활을 할 때는 신도님들이 청소하고, 음식 만들고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의곡사에서는 모든 힘든 일들을 신도님들이 신심으로 하고 계셔서 아주 놀라웠고, 감사한 마음이들었다.
도량 청소며, 종무소 일이며, 후원일까지… 몇 번이나‘대단한 신도님들이시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김장철에는 김장을 담그시고, 동지에는 팥죽을 끓이시며, 만두도 자주 모여서 만드신다. 그리고 초하루와 보름 전날에는 싸리비와 걸레를 들고서 도량 청소를 하신다. 종무소의 보살님들은 종무 소임을 매일 보신다. 기도접수도 받으시고, 신도관리도 하신다. 모두 무주상보시행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보살행인가. 나의 눈에도 이렇게 이쁘고 아름다운데 불보살님들이 어찌 어여삐 여기지 않을 것이며, 가피를 주지않겠는가!
신도님들은 그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도 항상 얼굴에는 미소를 띠시고, 밝게 웃으시면서 서로 정겹게 잘 지내신다. 신심에서 신심으로 느끼는 것이다.
나는 신심이 깊은 자를 보면 한없이 반가운 마음이 생긴다. 지금 생각하면 이 보살님들이 오히려 불법을 수호하는 선녀들 같다. 그만큼 진리를 향한 신심은 반갑고, 아름답기 그지 없는 것이다.
이제 갓 계를 받고 벌였던 좌충우돌(?) 부전 소임을 내려두고 해인사승가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다. 해인사승가대학을 가면 또한 깊은 신심과 구도의 의지를 가진 도반을 만날 것이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을 지닌 젊은 구도자를 만난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어느 생에 어느 도량에서 같이 수행을 하였을꼬…?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만나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도와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의곡사에서 주지스님과 여러 신도님들의 도움으로 생활을 잘 하고,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무난하게 기도를 잘 할 수 있었다. 그 기도의 공덕으로 승가대학을 무사히 졸업하여 비구계를 받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글을 마치면서 다시금 주지스님과 신도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