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피는 곳에 내~마음도피어…”
김동환 작사, 김동진 작곡의‘봄이 오면’이란 노래로‘가고파’의 작곡자로도 유명한 김동진 선생님의 곡이다. 봄 노래로 꼽으려 치면 나는 항상 이 노래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물론 봄을 노래한 유명한 음악으로는 비발디의‘4계’중‘봄’이 있고, 해마다 새해 첫날이면 어김없이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비엔나 심포니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의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인 요한슈트라우스의 왈츠‘voice of spring’등 도 있다. 이렇게 봄을 노래한 수많은 음악들이 있지만 유달리 김동진의‘봄이 오면’이 제일 먼저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아마 이 곡과 관련된 나만의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시절 나는 조그마한 소읍의 인문계 고등학교 음악교사를 거쳐 모교인 대구 심인중학교에서 근무하게 됐는데, 모교에 부임하여 맞이하는 첫 수업시간에‘봄이 오면’을 가르쳤다. 그리고 불교재단의 종립학교인 모교에서 불교음악과의 인연을 맺게 됐으니 그 감회는 지금도 잊을수없다.
춥고 음울하던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꽃 피는 새 봄이 오면 각급 학교에서는 새내기들을 맞이하는데, 모교에서도 역시 아직 어린아이 티를 채 벗지 못한 신입생을 중학생으로 맞이한다. 난생 처음으로 깎은 파르스름한 까까머리에 잘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교복, 그리고 조금 상기된 듯 약간은 겁먹은 표정 속에 어린 또랑또랑한 눈망울들… 이 아이들이 어느덧 자라 키 불쑥 커지고 여드름 툭툭 불거지는 3학년이 되면 첫 음악시간에‘봄이 오면’을 배우게 된다. 나는 이 노래를 통해 불교종립학교 음악교사로 섰고, 1984년 불교합창단의 지휘도 처음 맡게 됐다. 그때만 해도‘찬불가’라는 용어조차 낯설었다. 부를 만한 찬불가는 몇 곡이 되지 않았고, 일본음계의 찬불가나 심지어 찬송가에 가사만 바뀐 찬불가까지 있었다. 결국 작곡을 전공한 나는 자연스럽게 찬불가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바쁘고 변화 무쌍한 시절이었다. 불교음악을 만들어 보겠다고 혼자서 동분서주했고, 대표적 찬불가인‘우리도 부처님 같이’를 작곡할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도 가졌다. 또, 불교음악인들의 모임도 만들고 참된 찬불가를 만들기 위한 워크숍을 갖기도 했다. 불교음악 발전에 전념하겠다는 생각으로 남들이 소위 말하는‘철밥통’이란 교직마저 버리고 나온 후 맞이 한 IMF 시절엔 경제적 어려움도 겪었다. 가끔은 연금 많이 받는 친구들을 만나면 부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편안한 노후가 보장된 퇴직교사로 살지 않고 이름 없는 불교음악가로 살기를 작정한 그때의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다. 소리 없는 아우성, 허공 속 몸부림을 쳐댔던 시간들이었지만 뭇 도반들을 만나 든든했고,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살았으니 감사했다.
아무리 어수선한 상황이더라도 찬불가가 울려 퍼지면 분위기는 가라앉고 불자들은 어느새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는다. 찬불가를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낀다. 바로 찬불가가 갖는 힘이며 매력이다.
이제 주위엔 불교합창단도 많이 늘었고, 찬불가도 많이 알려졌다.
지난해엔 대구에 불교음악예술원도 만들었다. 개신교의 YWCA를 보며 불교계의 문화공간을 오래 전부터 꿈꿨었다. 음악을 전공하는 어린이 불자를 육성하고, 불교오케스트라를 구성하기 위한 초석이 되었으면 싶었다. 또, 불교음악인들의 정보교류의 공간으로 일반불자들에게는 찬불가를 보급하고 불교문화를 알리는 공간으로 널리 활용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덜컥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정신없이 내달렸다. 다행히 지역 스님들과 불자님들의 신심과 원력으로 불교음악예술원은 잘 굴러가고 있다. 역시 부처님의 일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 이루어짐을 새삼 느낀다.
불교음악과 인연 맺은 지 20여년, 다시 그 봄이 찾아왔다.
지난 세월 바쁘게 보냈지만 돌이켜보면 흔적이 없다. 다만 이런저런 중요하지 않은 잡다한 일들을 핑계로 정작 중요한 찬불가 작곡은 소홀히 하지 않았나 싶다. 올 봄에도 어김없이 산에 들에 진달래가 필 것이다. 이 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