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많이 부는 날 들판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북인도에서였습니다. 황혼녘이었고, 인적 드문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흰 소를 만났습니다. 오해는 마세요. 십우도 같은 구도이야기에 등장하는 흰 소는 상징적인 흰 소입니다만, 인도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흰 소는 흔하게 보는 실재입니다. 상징은 뼈대만으로도 존재하지만 실재는 뼈대만으로는 존재하지 않지요. 피와 살과 살가죽이 모두 필요한 구체여서 실재는 때로 상징보다 남루해 보이지만 훨씬 역동적입니다.
바람 부는 벌판에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흰 소는 상징과 실재의 두 면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흰 소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날렵하고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두 개의 뿔이 천천히 상하로 움직였습니다. 그 실루엣의 역동성. 나는 순간 당간을 떠올렸습니다. 돌이나 철로 된 당간에 소뿔로 된 당간이 추가되는 순간이었지요. 예전에 저는 당간과 당간지주를 혼동하곤 했는데, 당간은 당을 달기 위한 기둥이지요. 부처님 말씀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괘불을 걸어놓는 당간은 그러니까 깃대쯤 될까요. 우리가 흔히 보는 커다란 철제나 석제 기둥은 당간을 지탱하기 위한 지주, 그러니까 깃대인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기둥인 당간지주입니다. 아무튼, 우아한 곡선을 가진 당간을 자기 머리에 이고 나타난 흰 소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어요. 인도의 소들은 사람을 개의치 않으니 자기 친구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내게 다가온 흰 소의 머리와 잔등엔 노란 가루분이 잔뜩 발라져 있었고 뿔엔 빨간색실이 감겨 있었어요. 축제 때의 장식을 아직 몸에 지닌 채 바람 속에서 나타난 흰 소는 입속에 무언가 우물거리고 있었는데, 맑고 커다란 눈을 껌뻑거리며 곤혹스러운 듯 질기게 씹고 있는 그것은 반투명한 비닐이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인간이 어디서나 흔하게 사용하고 아무렇게나 버리는 비닐봉지의 정체를 알 길 없는 소들이 비닐을 풀처럼 씹고 있는 풍경을 그 뒤로도 인도의 여러 곳에서 보곤 했습니다. 비닐을 빼내주려고 다가갔다가 투레질에 놀라 피한 적도 있지요. 먹지 마라. 그건 소화가 안 돼. 중얼거리며 다가갔다가 결국, 미안하다. 미안하다…. 속말을 하며 물러서야 했습니다.
아름다운 곡선의 견고한 당간을 자기 몸으로 받들어 올린 채, 해 저무는 벌판을 건너가던 흰 소를 생각합니다. 자기 몸 전체로 하나의 당간지주를 이루던 그림자를 향해 나는 가만히 합장했습니다. 흰 소가 우물거리며 씹고 있던 비닐. 그것은 사람살이의 한 모습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을 내게 주었으나 흰 소는 내가 가진 일말의 미안함마저도 들풀 씹듯 씹어 삼켜주었습니다. 그때 내가 본 흰 소의 눈빛은 곤혹스러운 의문을 가진 것이었으나 한편에선 무심에 가까운 맑고 투명한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고뇌와 질문과 평상심. 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고요하게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봄이 오는 중입니까? 비닐을 씹던 흰 소의 몸에 따끈한 볕이 들고 여윈 살집에 물이 오르는 상상을 합니다. 소뿔에서 곱게 꽃망울이 잡히고 희고 붉은 꽃이 벙그러지는 상상을 합니다. 당간 끝에 핀 꽃숭어리! 너의 슬픔은 누구도 대신 아파줄 수 없는 너의 슬픔이지만, 너의 슬픔은 이별에서 목숨을 입은 나의, 우리의 슬픔이기도 합니다. 기쁨이 그러하듯이.
당간지주 밑자리가 따뜻해집니다. 봄바람 붑니다. 당간에 매달려 나부끼는 저것은 우리 마음의 어디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