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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俗이 성聖을 걱정한 부끄러운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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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7년 12월 310호
지난해 연말 각 종교계의 대표들은 신년사를 발표했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곳곳에는 도道를 깨닫는 길이 있고 눈 앞에는 향상向上의 관문이 열려있습니다. 법에 얽매이면 자유롭지 못하고 이념에 집착하면 편견이 사람을 해칩니다”라며 집착에서 벗어나길 당부했다. 정진석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은“하느님께서는 하루하루의 새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생명의 신비 안에서 한껏 하느님께서 마련한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 민
족이 하루빨리 하나 되기를 기원합니다”,박경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은 “한국교회는 더 겸손하게 이 땅의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우리 민족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하느님의 손 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서서 새삼 종교지도자들의 신년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한국불교와 종교가 진리를 향해 더욱 정진했으며, 중생의 행복을 위해 더욱 낮은 자세로 나아갔는가, 이런 질문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새해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생각하기에 앞서 자기 반성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 한 해도 종교계는 그 사명을 다 하고자 노력했다. 우리 불교계만 본다 해도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돕는 데 힘썼다. 학교를 지어 문맹의 어두움을 물리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병원도 짓고 있다. 대통령선거와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바른 선거를 당부하는 종교지도자들의 메시지도 발표함으로써 차분한 정책선거가 되도록 이끌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일로 매진했다.

그러나‘속俗이 성聖을 걱정하는’부끄러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올해도 종교 내부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해 속세가 오히려 종교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프가니스탄 의료봉사를 나갔던 개신교인들이 납치됐는데, 그 나라에서 금지된 선교활동이 납치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두 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가족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 개신교 내의 경쟁적인 선교행태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일로 한국 개신교는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렇지만 개신교는 선교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11월 23일 연합뉴스는 안티기독교 관련 토론회 내용을 전하면서‘기독교는 한국에서 없어져야 할 종교인가’라고 제목을 붙였다. 기사에 따르면,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 2003년 출범했으며, 이들은 창립선언문에서“이 사회에서 기독교가 더 이상 패악질을 일삼지 못하도록 기독교를 박멸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라는 단체가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그들이 내건 목표가‘기독교박멸’이라니 더욱 놀랍다.
이 토론회에서 개신교는 교회의 정치권력화, 대형화, 세속화 등에 대한 자기 반성과 함께 대안 모색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학 교수는 “2002년 월드컵 대회 때 개신교계가 붉은 악마 반대 캠페인 등 사회적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태도로 인해 안티 기독교 형성의 빌미를 줬다”면서“안티 기독교 운동은 인터넷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익명성에 가려진 폭력성 등 위험요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안티 기독교 측은 기독교가 반사회
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국제기아대책기구 등 활발한 구호활동을 펼치는 단체들은 대부분 개신교에 뿌리를 두고 있고, 주요 종교 사회복지법인과 시설 가운데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율이 60~80%에 이른다”면서“한국교회가 그동안 저질러온 잘못을 반성해야 하지만 안티 기독교 세력도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강길 세계와기독교변혁연대 실장은“안티 기독교의 성장은 기존 기독교의 폐해와 오류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기독교인이라면 이 문제를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면서“안티 진영의 기독교 박멸주의는 기존 기독교의 배타성과 폭력성을 똑같이 보여준다는 한계가 있지만 한국교회는 이를 계기로 새롭고 건강한 대안 기독교 운동을 펼쳐야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불교도 동국대 신정아씨 학력위조로 큰 홍역을 치렀다. 종립학교에서의 교수임용과 관련돼 잡음이 났다는 것도 문제지만, 뿌리 깊은 계파간 갈등이 문제를 더욱 확대시켰다. 주지직을 사고 파는 파렴치한 행위가 있었음도 드러났다. 국고 보조금을 횡령해 교구 본사 주지가 구속되거나 벌금을 낸 일도 있었다. 제주도 관음사 사태를 처리하면서는 여전히 폭력에 둔감한 조계종의 모습을 드러냈다. 불교의 가르침과 멀어도 한참 먼 행태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불자들은 물론 많은 국민들을 실망케 했다.

조계종은 지난 10월 19일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기념하는 대법회를 봉행하고 참회도 했다. 그러나 법회 이후 참회에 따른 후속 조치들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계파간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주지직 매관매직을 근절키 위한 바람직한 주지인사제도는 무엇인지, 갈등 해소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대안을 내놔야 하는데, 그런 고민을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종교연구가인 우에다 노리유키는 종교를 창조의 장이 되어야 한다면서 종교의 자기변혁을 촉구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역동적으로 일상세계와 접점을 가지면서, 동시에 일상세계의 시스템을 일단 정지시켜 자기반성과 자기 재 창조의 프로세스를 확보하는 장이 될 수 있는 종교이다. 종교를 그러한 창조의 장으로서 파악할 때, 우리는 사회의 변혁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의 변혁도 절실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현재의 종교가 가진 구조 그대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없을 것이다.”(종교의 위기, 푸른숲) 우에다는 21세기 종교에 요청된 변혁
을 ▷신자의 울타리로 존재하는 종교에서 보다 열린 종교로의 전환, ▷세계를 적으로 보거나 영적 세계에 차이화를 끌어들이는 등의 시스템화로부터의 탈피, ▷하나의 해답을 주는 종교에서 인간 존재의 깊이와 다양성을 탐구하는 장이 되는 종교로의 전환, 이 세 가지를 제시했다. 우에다의 견해에 동의하건, 그렇지않건 불교를 비롯한 종교는 자기 변혁을 요청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시 새해를 맞는다. 불교와 한국사회의 종교지도자들은 어떤 메시지를 국민들 앞에 내놓을까. 자기변혁에 바탕한 중생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