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김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수자타 - 박재은 2007년 12월 310호
김치 연애시절, 지금의 남편과 나는 다른 점이 많았다. A형 남자와 AB형 여자의 만남이라 일단 성격이 달랐다. 치밀하고 꼼꼼한 그, 제 멋대로인 나. 물냉면을 먹는 그, 비빔냉면 만 먹는 나. 참치 볶음밥을 좋아하는 그, 볶음밥을 싫어하는 나.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다니던 그, 절집에 다니는 나. 그런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었다면 그 중 하나는 김치를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우리가 처음 만난 날도 함께 한 이십여명의 젓가락이 상 위의 젓갈김치로만 향할 때 우린 맨 밥만 깨작거리며 서로 웃었었다. 그런데 한 달만 지나면 그와 내가 결혼한 지 4년째 되는 이 시점에 우리의 냉장고 안에는 이북식으로 담근(내가 아니고 친정 엄마가) 시원한 배추김치, 뜨끈한 국이랑 잘 어울리는 깍두기가 고이 모셔져 있다.
우린 결혼 1000일 만에 어른이 된 것일까?

김치의 추억

김치… 김치를 떠올리면 당장 세 사람이 생각난다.

하나. 우리 할아버지. 고향이 이북이셨던 나의 할아버지는 줄기가 허연 보쌈김치를 술안주로 드셨었다. 반주를 즐기셨던 할아버지는(반주 버릇은 고스란히 손녀딸에게 물려주셨다) 주말이면 얼음을 잔뜩 담은 글라스에 약주 한 잔을 준비하시고 김치를 안주 삼아, 아주 간간히 밥 한술을 떠 넣어 가시며 두어 시간은 너끈히 식사를 즐기셨다. 어린 나는‘그깟’김치를 드실 때마다 눈까지 지그시 감으시는 할아버지를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둘. 울 엄마.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던 김치의 주인공이다. 할아버지 생전에 입맛으로 효도를 드린다는 사명감으로 엄마의 젊은 날이 김치에 바쳐졌다. 자고 일어나면 엄마는 김치를 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쌈김치와 아삭한 배추김치는 기본, 맛이 깊은 총각무김치, 부추김치와 파김치, 하얗게 담그는 장김치와 국물 있는 백김치, 아작아작한 맛이 일품인 깍두기를 포함, 집에는 늘 일곱여 가지의 김치가 있었다. 여름에는 열무김치와 오이김치가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집의 김치들은 가장 맛있게 익기 하루 전날 할머니 댁으로 배달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살아 생전 며느리를 잘 만나 그렇게 입 호강을 하다 가셨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배추김치나 빈대떡, 김치말이와 같은 이북 음식들을 여전히 만들어 주시지만, 그 맛은 미세하게 달라졌다. ‘할아버지 입’이라는 엄격한 골잡이가 우리 엄마와 같은 대한민국 최고의 김치 메이커를 만들어냈나 생각이 든다.

셋. 내 남동생. 일가 중에 가장 할아버지를 빼다 닮은 남동생은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데도 김치 구력은 삼십여 년이 다 되어간다. 꼬마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평양 면옥이나 필동 면옥, 우래옥과 같은‘면옥’을 다닐 수 있었는데, 냉면 가닥만 깨작대던 나와는 달리 동생은 제법 어른처럼 김치를 먹었다. 할아버지 하는 대로 김치 한 잎을 면 위에 척 얹고 마치 쌈을 싸듯이 면이랑 김치를 한 젓갈에 잡아 입에 넣던 동생은 그래봤자 고작 대여섯 살이었다. 서른이 넘어 가정까지 이룬 동생은 아직도 김치를 잘 먹는다.
듬직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참을성 많은 순둥이 내 동생은 지금도 입맛이 없으면 할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울 엄마 김치에 밥만 갖다 먹는다.

우리

사진을 찍는 기자 출신의 남편과 음식 글을 쓰는 나는‘맛 취재’를 겸해 자주 길을 떠나는 편이다. 안동에서 먹은 부추김치, 여수에서 먹은 갓김치, 제주도에서 먹은 묵은 김치, 상해에서 먹은 옥류관 이북 김치가 결혼 삼년 간 차곡차곡 혀에 쌓였다.
김치를 단순히‘찬’으로 취급하기에는 들어가는 정성이 너무 크다는 사실도 우린 알게 되었고, 김치가 항암과 항 비만에도 도움을 주는 건강식이며 무엇보다 세상 최고의 오묘한 맛을 내는 입 안의 호사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참치 볶음밥에도, 햅쌀밥에도, 데친 두부 한 모에도 자연히 김치를 곁들일 수밖에. 오물오물, 아삭아삭 너무 맛있다. 요즘 같은 그믐달 밤에는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