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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길에서 낯설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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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이야기 그림 이야기 - 김현정 2007년 12월 310호
육조혜능도六祖慧能圖 존자께서 바람결에 풍경이 울리는 것을 보고 동자에게 물었다.
“방울이 울리는가? 바람이 울리는가?”
이에 동자는“바람도 방울도 울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울립니다”하였다.
조사가 다시“바람도 방울도 울리는 것이 아니면 어느 것이 마음인가?”하고 물으셨다.


눈 덮인 길에서 낯설게 보기 - 김현정

“낯선자로 와서 낯선자로 다시 떠나네.
오월은 수 많은 꽃다발로 나를 맞아 주었지
…지금 세상은 음울하기 그지 없고
길은 눈으로 덮여 있네.
안녕히…”

계절이 한 매듭을 짓는 시기가 되면 때론 음악이나 시가詩歌 같은 것이 마음에 와 맺힌다.
간밤에 잠시 틀어놓았던 <겨울나그네>의 곡조는 잠자리에서도“안녕히…”라는 여운을 남겼다. 그 음악 때문이었을까, 남쪽으로 난 창 오른편가에 겨우 걸린 하얀 달빛에도잠을 깨기도 하고, 아직도칠흑 같은 어둠속 아침예불 종소리에 눈을 떠서 종소리 긴 호흡에 숨결을 조용히 맞추게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미 첫눈이 내린지 오래고, 긴 밤 하염없이 내리던 눈이 그저 낯설기만 하였으며 길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올 겨울은 그렇게 눈으로 덮인 길을 바라보면서 시작하였다. 때 아니게 흐트러진 정서情緖에 당황하여 나는 곧 그 심정心情이 더 흐트러지기 전, 때 이른 첫눈 밑에 꽁꽁 다져놓았다. 내년 봄 잔설을 털고 얼었던 땅이 녹은 후 그때서야 다시 꽃잎 흐드러진 길 위에 꺼내 놓으리라 마음 먹었다. 한 해는 그렇게 마무리하고 오는 봄을 또 그렇게 맞이하리라.
혜능 선사께서 하루는 법을 펼 때였다. 드디어 피난살이에서 벗어나 광주 법성사法性寺에 이르니 거기는 인종印宗법사가 있어 열반경을 강하는 중이었다.
그때 마침 바람이 불어와서 깃폭이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한 스님은“바람이 움직인다”하고, 한 스님은“깃폭이 움직인다”하며 서로 다투고 있었다.
스님께서 그것을 듣다가,“ 그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폭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당신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하니 온 대중이 놀랐고, 인종 법사는 혜능 스님을 윗자리로 청하여 여러 가지로 깊은 뜻을 물어 보았다.

이것이 유명한 육조혜능 스님의 풍번風幡법문이다. 바람과 깃발이라 하여 풍번이라 한다. 이 이야기는 선가에서 유명한 화두이기는 하나《돈황본 단경》에는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空과 유有에 대한 육조혜능 선사의 안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며, 이후 많은 선종의 선사들이 이와 비슷한 설법을 남기기도 하였다. 바람과 깃발이 만났으니 깃발이 흔들렸을 것이고, 또 그것이 내 마음에 들어 있으므로 입을 열었을 것이다. 달빛에 잠을 깬 내 마음도 또한 그곳에 있었던가. 서천의 17조인 승가난제僧伽難提존자에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존자께서 바람결에 풍경이 울리는 것을 보고 동자에게 물었다.
“방울이 울리는가? 바람이 울리는가?”
이에 동자는“바람도 방울도 울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울립니다”하였다.
조사가 다시“바람도 방울도 울리는 것이 아니면 어느것이 마음인가?”하고 물으셨다.
육조혜능선사의 숨결은 바람과 같이 크고도 길었다.
지금까지도 혜능 선사의 선법禪法이 천년 이상의 시간을 오르고 내리며 눈 푸른 납자들의 공부에 길을 비추고 있다. 하지만 선화에서 전하는 혜능선사의 모습은 오히려 담담하다.
무학조원(無學祖元; 1226~1286)의 찬讚이 있는 <육조혜능도六祖慧能圖>는 선종의 조사인 혜능 선사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무학조원 스님은 북송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거복산巨福山건장사建長寺의 주지로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분이다. 이 그림은 스님께서 중국에서부터 가지고 왔다고 전하기는 하지만 찬문은 일본에 머물던 시절에 적은 것이니 만큼 정확히는 알 수 없거니와 작가 또한 알 수 없다. 찬문이 그러하니 조원 선사 시절이나 혹은 그 이전에 그려졌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림 속 스님은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겸손한 옷을 걸치고 있어 선사의 면모라기 보다는 권위와는 거리가 먼, 말 그대로 노행자老行者의 모습이다.
혜능 선사는 주장자로 권위를 세우지 않았으며, 가사와 장삼을 걸치지도 않은 채 방앗간에서 방아 찧던 그 모습 그대로 눈빛을 남쪽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다. 선사께서 홍인 선사 문하에 들때 이미 오십을 넘겼던 나이니 작은 몸에 눈빛만 성성할 따름이었다. 스님의 모습만 그렸을 뿐 배경을 생략한 것은 모습만으로 정신을 전하고자 하는 북송시대 인물화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평상복이긴 하나 칼칼한 옷주름과 공수拱手한 두 손에 길게 목을 뺀 모습으로 안광眼光이 또렷이 빛난다. 그 눈빛 아래 정定과 혜慧의 바른 안목을 두고 있을터였다.
선사께서 말씀 하시었다.
“선지식들아, 만약 수행하기를 바란다면 세속에서도 가능한 것이니 절에 있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절에 있으면서 닦지 않으면 서쪽나라 사람의 마음이 악함과 같고 세속에 있으면서 수행하면 동쪽나라 사람이 착함을 닦는 것과 같다. 오직 바라건대 자기 스스로 깨끗함을 닦으라. 그러면 이것이 곧 서쪽 나라이니라.”
이미 본래의 성품을 바라보는 자리라면 있는 곳을 가리지 않는다는 가르침은 부처님 시절부터 전해졌던 것이다. 이것을 다시 각성시키는 선사의 가르침이 또한 그러하다. 자리를 거두고 앉은 이 새벽,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남기지 않듯 오늘밤도 마음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마음을 두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