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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하게 진행된 둘째날의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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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김주연/해인사 종무원 2007년 12월 310호
보제사 분주하게 진행된 둘째날의 일정

옥불사를 관람한 후 우리는 동양의 베니스라 불린다는 소주를 향해 출발했다. 소주로 가는 길은 차들도 굉장히 많고 끼어들기가 난무하는 등 교통질서도 엉망인데다, 주유소에는 또 기름이 없어서 이 주유소, 저 주유소를 전전하며 기름을 구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고, 통행세 징수 문제 등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서 밤늦게야 겨우 소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주蘇州는 중국사람들이“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杭(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이라 말을 할 정도로, 항주와 함께 중국에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또한 소주는 기온이 온난 습윤하고 토질이 좋아 자원이 풍부하고, 교통 또한 매우 발달되어 있어, “인간의 천당”이니, “사주지부(絲綢之府: 비단의 도시)” ,“ 어미지향(魚米之鄕: 해산물과 쌀이 풍부한 도시)”, “원림지도(園林之都: 정원의 도시)”,“ 동양의 베니스”등 별명도 많다고 한다.

순례 이틀째 되는 날, 아침 5시 30분부터 일어나 서둘러 아침공양을 마치고, 7시 30분 둘째날의 일정인 호구사탑과 유원, 한산사 순례의 길에 올랐다. 전날엔 소주에 밤에 도착해서 소주가 과연 동양의 베니스라는 말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아침에 맞이한 소주의 거리는 정말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강을 끼고 예쁘게 자리 잡은 건물들에 서 동양의 베니스라는 말을 실감할수 있었다. 시간적 여유만 된다면 강가에 멈춰서 있는 배에 올라타 소주의 강가를 여기저기 구경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들 정도였다.

1) 호구에 우뚝 솟아 있는 호구사탑

강가로 향하려는 마음을 접은 채 소주에서 가장 먼저 관람한 곳은 호구사탑이었는데, 소주의 상징이기도 한 호구虎丘는 원래 이름이 해용산海涌山이었는데, 호랑이가 웅크려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춘추시대 오나라 왕인 합려闔閭가 이곳 연못 아래에 묻혀 있으며 합려의 무덤을 만들때 관 속에 검 3000개를 함께 묻었다고 한다. 이 검들 중에는 훗날 명검으로 전해지는 검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이 이 검들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보는 앞에서 도굴을 시작했다가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와 결국 도굴을 중 단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연못이 되어검지劍池라고 부른다고 한다.

송대 시인인 소동파蘇東坡가“도 소주이불유호구到蘇州而不遊虎邱, 내시감사乃是憾事(소주에 와서 호구를 구경하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라는 말을 했을 만큼 경치가 아름답다는 호구는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었고, 역사의 흔적이 특히나 많이 묻어나는 곳으로 느껴졌다. 단양전斷梁殿, 감감천 泉, 시검석試劍石, 검지劍池, 옹취산장擁翠山莊, 만경산장萬景山莊등을 관람할 수 있었는데, 역시나 호구의 상징은 호구사탑인 것 같았다. 호구정상에 위치한 호구사탑은 수나라때 지어졌다고 하는데, 높이가 47.5m나 되어 소주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소주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라고 한다.
또한 동양의 피사탑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호구사탑도 북서쪽으로 약간 삐딱하게 서 있었는데,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호구탑밑에 합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어 무덤이 탑을 지탱하기 힘들어 지반 침하가 일어나면서 탑이 기울고 있다고 하는데 왠지 살짝 기울어 있는 모습이 더욱 멋있게 느껴졌다.

2) 이것이 중국의 정원이구나, 유원

멀찍이 호구사탑을 배경으로 단체사진도 한 장 멋있게 찍은 후 도착한 곳은 유원留園이었다. 유원은 명대의 대표적인 정원으로서 중국의 4대 정원이라 일컬어지는 북경의 이화원, 소주의 졸정원과 유원, 승덕의 피서산장 중의 하나일 정도로 유명한 정원이라고 한다. 명대한 관리의 개인정원이라고 하는데, 정말로 과연 개인정원을 이 정도로 만들 수 있는 그 관리의 권능은 어떠했을까 싶은 정도로 규모도 크고 아름다웠다. 정원은 테마별로 이루어진듯 기기묘묘한 돌을 감상하는 공간과 다양한 분재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 흐드러지게 늘어진 버드나무와 연못,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정자가 멋지게 어우러진 공간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가장 시선을 끄는 곳은 역시나 정자와 연못, 버드나무의 공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스님들과 신도분들도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에 한 컷씩 자세를 취하느라 분주했던 곳이기도 하다. 유원은 책에서만 접했던 중국 정원문화를 살짝 엿볼 수 있던 공간이었는데,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정원 문화가 인위적인 미보다는 자연스런 미를 추구하는 데 반해 일본이나 중국의 정원 문화는 인위적인 미를 추구한다는 것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3) 그윽한 종소리의 한산사

유원의 아름다운 연못을 뒤로 하고 다시 버스는 천년고찰이라는 한 산사로 출발했다, 한산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의 보신각에서 매년제야의 종을 치는 것이 유명하듯이 한산사의 섣달 그믐날 밤에 이뤄지는 타종행사가 유명하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33번의 타종이 이뤄지는 것과 달리 108번 타종을 한다고 하는데, 그 종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산사에는 역시나 타종과 관련한 고사가 전해진다고 한다. 즉 당나라의 시인 장계張繼가 <풍교야박楓橋夜泊>이라는 시를 지어 더욱 유명해졌다는 것인데, 장계가 노를 저어 마을로 돌아가던 중 밤중에 풍교에 배를 정박해 두고 있는데 그때 마침 한산사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월락오제상만천 月落烏渧霜滿天
강풍어화대수면 江楓漁火對愁眠
고소성외한산사 故蘇城外寒山寺
야반종성도객선 夜半鐘聲到客船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리네
풍교에는 고깃배 등불을 마주하여 시름속에 자고
고소성 밖 한산사에는
한밤중에 종소리가 객선에 이르네.


부지런히 순례를 하는 틈틈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중국의 음식을 맛보는 시간이 왔다. 한국에서야 기껏해야 자장면에 탕수육이 중국 음식의 상징이었는데, 중국에 와서 보니 확실히 자장면과 탕수육은 없었지만 역시나 튀기고 볶길 좋아하는 중국음식들은 대부분 기름졌다.
나와 몇몇 직원들은 아주 맛나게 현지적응을 잘 했지만 일부 직원들은 벌써부터 느끼한 중국음식에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광동성으로 미식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배를 그득히 채웠으니 또 오후 순례길에 나섰다. 이번에는 지상의 낙원이라는 항주로 향했다. 여행사 가이드 분의 말에 따르면 중국은 워낙에 땅덩어리가 넓어서 5시간 미만의 이동은 옆 동네에 마실간다고 한다더니 지도에서 소주와 항주는 바로 옆동네 같은데, 우리는 오래도록 버스에 몸을 싣고 있어야만 했다.

항주杭州는 9세기부터 237년 동안 14명의 황제가 수도로 선택했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절강성의 성도城都이자, 중국이 자랑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로 자원이 풍부하고 경치가 수려하다고 한다. 13세기 무렵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행가인 마르코폴로는 항주에 들렀다가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항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 했을 정도라고 한다.

4) 중국 선종 10대 사찰, 영은사

그 아름답고도 역사가 깊은 고도시인 항주에서 우리 일행이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선종 10대 사찰 중의 하나인 영은사靈隱寺라는 고찰이었다. 영은사의 천왕전에는 청대 강희제의 자필로 알려진“운림선사雲林禪寺”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 있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강희가 남쪽 지방을 순찰하던 중 항주에 들러서 북고봉北高峰에 올랐는데, 구름이 자욱하고 안개가 덮인 곳 속에 영은사가 있는 것을 보고 이 네 글자를 생각해냈다고 한다. 또한 대웅보전은 높이 33.6미터로 중국의 저명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영은사의 볼거리 중 또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비래봉이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10~14세기경에 만들어진 석굴조각품들이 330여 개가 산을 따라 조각되어 있는데, 이 석굴조각들은 강남지역에서는 보기드문 고대석굴예술을 보여주고 있어 그 가치가 더 빛난다고 한다. 300여개나 될 정도로 많은 조각품들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들은 역시나 시간 관계상 그 중 몇 곳의 조각상만을 관람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비래봉이란 이름에도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고 하는데, 서인도의 스님 혜리가 항주에 왔다가 이곳을 들렀다가 이 산을 보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수련하던 천축국의 영취산이 어떻게 여기로 날아왔느냐?”고 감탄하며, 이 산에 날 비飛자에 올 래來자를 써서 비래봉飛來峰이라 이름을 짓고, 맞은편에‘영은사’라는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영은사 또한“신선의 영이 이곳에 깃들여있다 (선령소음仙靈所陰)”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영은사는 사찰 내에 조그마한 계곡이 있어 특히 비가 올 때면 사원 전체가 안개에 싸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은 너무나 화창한 날이었던지라 그런 환상적인 분위기는 커녕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한 분위기에서 잃어버린 사람이 없나를 정신없이 챙기느라 급히 끝난 관람이었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하다.

5) 중국내 한국불교 포교의 선봉, 고려사

영은사를 참배하고 난 후에는 한국 조계종에서 관리하는 한국 사찰이라고 하는 고려사로 향하였다. 눈 설고, 입 설은 중국땅에서 우리나라 스님들이 입는 가사와 장삼을 입은 우리 스님들을 뵈니 괜스레 더욱 반갑고 절 또한 낯설지 않고 왠지 정이 갔다. 절 또한 중국의 절 형식을 취하는 듯 하면서도 어딘가 우리나라의 정서가 느껴지는 듯 하여 좋았다. 그곳에서 스님들과 신도분들이 모두 모여 한국식 법회의 시간을 가졌는데, 그 또한 뜻 깊게 느껴졌다. 그리고 법회가 끝나고
나서는 아무래도 타지에서 절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듯 하여 해인사에서 온 직원들이 나서서 기도 접수도 하고, 보살님들도 흔쾌히 기도 접수에 응해주셔서 무척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나 또한 좋은 인연을 속히 만나길 발원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접수했는데, 부디 속성취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