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성보박물관 불교조각실 안에는 의연한 모습으로 앉아 관람객들을 바라보는 한 노스님이 계신다. 마치 살아 계신 분처럼 따스함까지 그대로 전해지는 이 스님은 화엄학華嚴學의 대가로 알려진 해인사의 고승 희랑 조사(希郞祖師, 889~956)이시다.“… 신라新羅의 말기에 승통僧統희랑希郞이 이 절에 주지住持하여‘화엄신중삼매華嚴神衆三昧’를 얻었을 적에,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백제百濟의 왕자 월광月光(?)으로 더불어 싸웠는데, 월광은 미숭산美崇山에 있으면서 식량이 넉넉하고 군병軍兵이 강하여, 태조의 힘으로는 대적할 수가 없었다. 해인사에 들어와서 랑공朗公을 스승으로 섬기면서 백제를 물리칠 방법을 청하자, 랑공이‘용적대군야차왕勇敵大軍夜叉王’을 보내어 돕게 하였다. 월광이 금갑金甲을 입은 신병神兵이 공중에 가득함을 보고 두려워 항복하였다. 그래서 태조는 희랑 스님을 공경하여 받들면서 전지田地 오백결五百結을 드리고, 옛 사우寺宇를 새로 중건하였다. …”
<해인사 고적>에는 위와 같은 내용이 나와 있는데, 즉 희랑 조사는 고려 건국 당시 왕건王建을 지지하는 북악파北岳派의 종주宗主로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왕건의 복전福田이 되었고, 해인사를 크게 중창하였다는 내용이다.
또한 최치원이 가야산에서 화엄경을 강하고 있는 희랑 화상에게 준 시 중에
보득금강지상설 필추해인사강경운운 步得金剛地上說苾芻海印寺講經云云
마갈게성광변조 금조혜일출부상운운 摩竭揭城光遍照今朝慧日出扶桑云云
천언비교종천수 호시해우흥해의운운 天言秘敎從天授好是海隅興海義云云
도수고담용수석 빈공피안진금성운운 道樹高談龍樹釋斌公彼岸震金聲云云
등의 표현으로 미루어 최치원이 해인사에 은거하던 시기에 희랑은 화엄경을 강講하여, 명성을 얻었던 것 같다.
높이 82.7cm의 목조초상조각 희랑조사상은 나무 표면에 올이 고운 삼베를 붙이고 다시 그 위에 두껍게 채색을 하였다. 여윈 몸에 흰 바탕에 붉은 색과 녹색 점이 있는 장삼을 입고 그 위에 붉은 바탕에 녹색 띠가 있는 가사를 걸치고 있다. 노스님의 범상치 않은 위엄이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특이한 것은 가슴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인데, 구멍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전설에 의하면, 당시 해인사에 모기가 많아서 수도를 하는 스님들이 모기 때문에 정진을 하지 못하기에 희랑 조사는 희랑암希郞庵에서 가슴에 구멍을 뚫어 모기들에게 피를 보시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해인사의 모든 모기가 희랑암에 모여들었고 다른 스님들은 편안히 정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성된 연대는 고려 초인 10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유일한 승려의 목조진영이자 가장 오래된 목조초상조각으로서 초상기법이나 불상양식 연구 등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1989년 4월 10일에 보물 제99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