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일연천조유무 杲日連天照有無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습니다.
“유언有言으로도 묻지 않고 무언無言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있는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바를 한마디로 말씀해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였습니다.
이에 외도가 찬탄하여 말했습니다.
“세존의 큰 자비로 모든 미망의 구름을 걷어주시어 깨달음에 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물러갔습니다. 외도가 떠나간 뒤에 아난이 물었습니다.
“외도는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음에 들게 했다고 하였습니까?”
이에 세존께 말했습니다.
“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오늘 정해년 동안거 결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유언으로도 묻지 않고 무언으로도 묻지 않을 때가 어떠합니까?’라는 이 말에 제대로
대답할 수만 있다면 마강법약魔强法弱한 이 말법시대에 쇠미해진 법등을 다시 켜는 일이 될 것이며, 또 청정대중들에게 제대로 공양하는 일이 될 것이며, 또한 총림에 제대로 된 정진하는 대중이 살고 있는 것이 될 것이며, 또 눈 밝은 이가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제방을 다니면서 정진한 구참납자들은 사실 한마디도 말할 것이 없겠지만
초심납자들 역시 어찌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외도의 속뜻은 유언으로 물으면 세존께서 반드시 무언으로 대답할 것이요,
무언으로 물으면 세존께서 반드시 유언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미리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유언으로 묻지 않고 무언으로도 묻지 않는다면
세존은 틀림없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것이라고 미리 단정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은것입니다.
어찌 이 외도뿐이겠습니까?
서천西天의 96종 외도들은 모두가 유有와 무無라는 두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유有는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무無는 단견斷見에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외도의 물음은 모름지기 유와 무를 떠나 말 밖에서 듯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대각세존을 질문으로 항복받으려고 한 것일 뿐입니다.
이에 세존께서‘양구’하셨으니 대답하신 경지는 마치 하늘에 기댄 장검長劍과 같아서
먼지 하나 붙일 수 없었으니 가히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외도는 아만의 깃대를 하늘 끝까지 높다랗게 세우고,
자기 자랑의 북을 온 세상이 들리도록 돌아다니면서 두드려대고,
기개는 왕같이 도도하고 위풍은 길에 넘칠 정도로 당당하며,
콧구멍은 하늘을 찌를 듯이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존을 만나 양구良久 한 방에 보기 좋게 뒤로 나가떨어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흔히 말에는 네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뛰어난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곧장 놀라서 주인의 뜻에 따라 달립니다.
두 번째 말은 채찍이 말의 털끝에 닿기만 하면 곧장 주인의 듯에 따라서 달립니다.
세 번째 말은 채찍이 말의 몸통을 때려야 놀라서 달리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못난 말은 채찍이 자기 뼈에 사무치도록 세게 때려야만 그때서야 비로소 겨우
느기고서 달리기 시작합니다.
채찍그림자를 제대로 볼 수 있는 훌륭한 말은 천리를 바람처럼 달리다가도 부르면 곧 되돌아오는 것처럼 제대로 안목을 가진 사람은 한번 손가락으로 튈겨주기만 해도 대뜸 알아차릴 것이며,
한번 부르기만 해도 곧바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세존께서 자비를 내리시고 채찍을 보이신 곳을 알고자 한다면 오로지 화두를 간절하게 드는 일뿐입니다. 결제대중들은 세존이‘양구’한 곳에서 알아차리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고,
채찍을 든 곳에서 알아차리려고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존이‘양구’할 때가 세존이 채찍을 든 곳이라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입니다. 만약에 화두를 타파하여 이러한 도리를 분명히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천하의 모든 종사들이 외도와 도반이 되겠지만 만일 서로가 인증印證할 수 없다면
동토의 납자라고 할지라도 서천의 외도보다도 더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세존의 한 눈은 삼세三世를 관통하였고 외도의 두 눈은 오천축국五天竺國을 관통하였습니다.
사실 외도는 가슴 깊이 보배거울을 품고 있었는데 세존께서는 이를 친히 높이 들었던 것입니다.
삼라만상이 찬란하고 뚜렸하니 아난이 금쇠북을 다시 울려서 사부대중이 함께 듣도록 한 것입니다. 세존께서 자비를 내리는 채찍그림자를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그 외도와 동참하기를 허락하겠지만 만일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해동 땽의 천하종장이라고 할지라도 서천의 외도만 못한다고 할 것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결제대중들은 세존께서 드리워주신 자비와 외도의 깨달은 바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외도는 유언과 무언을 떠나서 한마디 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이는‘사구四句’와 백비百非를 떠나서 한마디 하라’는 말입니다.
이는 마조도일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찾아와서‘사구와 백비를 떠나서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곧장 보여주십시오’라고 한 그 질문과 같은 것입니다.
이번 동안거 결제철에는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사구와 백비를 떠나서 곧장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리도록 삼동한철 동안 일주문을 걸어 잠그고 사관死關에서 용맹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우사체도수미 藕絲掣倒須彌 하고
개자곤번뇌전 芥子輥飜雷電 이로다
연뿌리 속의 실로써 수미산을 끌어 넘어뜨리고
겨자씨가 우레와 번개를 흔들어 일으킨다.
불기 2551(2007)년 동안거 결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