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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맛 뒤 단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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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 - 박재은 2007년 10월 308호
차  /  사진 임우석 샴페인

서양 영화에는 샴페인과 딸기를 먹는 로맨틱한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실제로 와인 강의를 다니다 보면‘샴페인과 딸기는 왜 같이 먹나?’하는 질문도 받는다. 샴페인을 우리는 ‘발포성 과실주’의 통칭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샴페인은 발포성의 포도주 중에서도 프랑스의 샴페인 지방
산産만을 지칭한다. 즉, 샴페인은‘합천’이나‘통영’과 같은 지명이다.
자, 이 샴페인 지방의 고급 포도로 만든 샴페인이라는 술은 그럼 어떤 맛일까? 주재료가 되는 포도 품종이나 그 배합률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차갑고, 날카롭고, 산도가 높은 편이다. 빵집에서 케이크랑 묶어 파는 발포성 음료의 달달한 맛과 는 거리가 멀다. 날카롭게 정제된 맛은 오히려 쌉쌀하기까지 하다. 맛이 좋은 차의 쓴맛을 생각하면 되겠다.
아무튼, ‘달콤한 인생’을 상징하여 영화에 곧잘 등장하는 샴페인은 실은 달지 않은 음료라는 말이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신맛이 강한 딸기를 한 개 먹고 샴페인을 마시면 샴페인 속에 숨겨져 있던 단맛이 빼꼼 나타난다는 사실. 산도가 아주 강한 딸기를 입 안 가득 씹어 삼키고 샴페인을 마시면 상대적으로 샴페인이 덜 시고 덜 쌉싸래하게 느껴진다. 또, 딸기가 너무 농익어 단맛이 넘칠 때에는 그것대로 찰떡궁합이다. 달디단 딸기를 먹고 쌉쌀한 샴페인을 마시면 꿀떡에 결명자 차를 마시는 것처럼 그렇게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샴페인과 딸기는 각자 가진 쓴맛과 단
맛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상대의 맛을 더욱 부각 시켜주는 단짝이다.


콩잎

여름 내 쌈밥을 많이도 먹었다. 특히 제주도 갔을 적 먹은 콩잎은 나의 여름 입맛을 책임졌었다. 제주는 원래 깻잎보다 콩잎의 인기가 높아왔다는데, 지난 여름에는 아예 제주 농가들이 콩잎을 쌈 채로 개량 수확하여 선을 보이기도 했다. 깻잎보다 더 도톰하고 향이 은은한 콩잎은 잎이
도톰한 만큼 그 씹는 맛이 좋다. 얇고 고소한 맛의 여타 쌈 채소에 비해 쌉쌀한 맛이 난다. 겨자 잎이나 치커리처럼 맵싸한 맛이 아닌, 그냥 도톰한 잎사귀 씹는 쌉쌀한 맛은, 함께 먹는 밥 한술을 더 달게 느끼게 한다. 사실 조미료나 기타 음식첨가물이 남용되고 있는 요즘의 밥상에서
는‘맛있는 쓴맛’을 찾기 힘들다. 온통 입에 꼭 맞춘 듯 달콤하고 짭짤하고 매운 맛 일색. 입에 혀처럼 간이 맞춰진 인스턴트 음식은 씹을수록 변하는 맛이 아니다. 당장 한 입은‘맛’있을지 몰라도 진정 깊은‘맛’이 없다. 진정 맛이 깊은 식사는 식사하는 동안에 차차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콩잎에 밥을 척 얹어 입에 넣어 씹다 보면 콩잎을 오래 씹어야 하는 탓에 자연 천천히 식사를 하게 된다. 그 와중에 잎사귀의 쌉쌀한 맛이 쌀의 단맛을 부각시켜주면서 더 오래 씹고픈 마음이 들게 만든다. 머리를 비우고 소처럼 천천히 씹으면서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생각이 열린다. 인스턴트 음식이나 조미료를 많이 넣은 음식은 먹고 나면 배는 부르지만 마음은 부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혀에 너무 달아서 허겁지겁 먹게 되는 음식이어서 그렇다.


차

그러면 바쁜 일상 가운데 어떻게 ‘쓴맛’을 찾아 먹을 수 있을까? 어쩔수 없이 시간에 쫓겨서, 회식이라서 등의 이유로 인스턴트나 조미료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 하루한 번 차를 마시면 어떨까? 요즘은 1분이면 물이 끓는 전기 포트도 흔하니까, 기왕이면 캔 녹차 대신 우려마시는 차 한 잔을 마셔보자. 시중에 나와 있는 차 거름망이 붙어 있는 머그 잔 등을 사무실이나 집에 두면 물끓이는 데 1분, 찻잔과 차를 준비하는데 1분 여 만에 따끈하고 신선한 차를 마실 수 있다. 녹차, 쟈스민 차, 보이차 등 쓴맛이 그 매력인 차 잎을 보물처럼 서랍에 두었다가 틈이 날때 나만의 티타임을 가져보길 권한다. 차가 주는 혜택, 체내 기름기 감소, 식욕 조절, 숙취해소 등은 둘째이고, 일단 입안이 쌉쌀~하게 정리되면서 정신이 맑아질 것이다. 차 마시기 전에 먹은 정성이 빠진 음식의 뒷맛도 싹 씻겨 나갈 것이고, 차 마신 후에는 담백한 음식을 먹더라도 식재료 본연의 단맛이 잘 느껴지니 자연히 입에 침이 고여 소화를 도울 것이다. 입 안을 쌉쌀하게 청소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

인생을 살면서도 단 일과 쓴 일이 번갈아 온다. 지금 상황이 녹즙처럼, 까맣게 우린 차 한 모금처럼, 인삼을 진하게 우린 약술 한 잔처럼 쓰디쓰더라도 그 다음에 맛볼 순간이 달콤할 것이라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