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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眼目에속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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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이야기 그림 이야기 - 김현정 2007년 10월 308호
백의관음상(白衣觀音像) 비단에 수묵, 14세기, 일본중요문화재, 100x41.4cm <보살 뒤쪽 빽빽한 대숲, 사각거리는 댓잎 부딪치는 바람소리가 그대로 들려온다. 대숲의 바람소리는 가을의 크게 맑은 차가운 폭포수와 한결 더 잘어울리는 것 같다. 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다 살핀다는 관세음보살인데 오히려 눈을 꽉 감은 그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하기 짝이 없으니 한편으로는 그림 속의 관음보살이 야속하기도 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면 아래 애써 손을 길게 뻗은 선재동자는 그 담담한 표정위로 선지식을 구하고 있다.>


안목眼目에속지말라


며칠을 두고 바람과 비가 허공을 오간다.
아침에 집 앞을 나서니 오가는 바람과 비 사이에 멀리 보이던 향로봉이 오늘은 하루 종일 구름 속에 잠겨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그 산이 어디로 갔을리야 있겠는가마는 눈 앞에는 분명 보이지 않으니 혼자서“속지마라, 속지마라”중얼거렸다. 그저 농도 짙은 구름 덩어리 하나가 그 산을 잠시 숨긴 것뿐 아닌가. 이미 내가 집앞의 풍광의 원래 모습을 알거늘 구름이 만들어낸 목전目前의 조화로 나를 속일 수는 없을 일이다.

이처럼 어느 비 오는 날 구름과 산을 보며 혼자 심심하여 실없는 호기를 부리는 품이 하도 우스워 히죽하고 혼자 웃었다. 구름 속에 산이 분명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알면서 내 안에 본래의 면목 알기는 어찌 그리 어려운지. 휴…, 오늘도 안목眼目에 속고, 귓가에 울리는 소리에 속으며 입맛에 속고, 향기와 감촉에 속절없이 넘어간다. 오척五尺이나 조금 넘는 내 작은 몸에 속한 다섯 가지 권속들이 주인을 노비 부리기보다 더 쉽게 하니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인지 오늘도 나의 어리석음에 스스로 한탄할 따름이었다.

다시 유정 선사 이야기이다. 여항(餘杭: 지금의 절강성) 공신산功臣山에 머물던 유정 선사(惟政政黃牛:986~1049)는 여유와 운치를 지니며 즐기던 분이었다. 공신산에 머물 때는 주로 누런 송아지를 타고 다니며 물병을 그 뿔에 걸었는데, 저잣거리 사람들이 다투어 쳐다보아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정황우라고 불리었던 것 같다. 몇 회 전에 이미 이분 이야기를 하였는데,《 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을 펼쳐드니 다시 눈이 간다.


구봉감소九峰鑒韶선사가 언젠가 유정 선사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감소 스님이 너그럽고 진솔하기는 하나 성실하지는 않았으므로 항상 스님을 속으로 비웃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잠자려다 말고 유정이 사람을 시켜 감소를 부르니, 마지못해 이맛살을 찌푸리며 건너왔는데 유정이 말하였다.
“달빛이 이와 같은데 삶에 시달리며 정신이 없으니 저 달을 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감소는 이에“네, 네”하며 건성으로 대답하자 스님은 이윽고 동자를 불러 무언가를 잘 익혀오게 하였다. 감소는 막 배가 고픈 참이어서 약석(藥石;저녁 공양)이라 생각하였는데, 한참 후에 보니 귤피를 달인 차 한잔이었다. 감소는 웃음을 감추면서 말하였다.
“오히려(달보다도) 더 맑구나.”

소박하거나 맑기로 하자면 여항유정 선사는 높은 곳에 있었다.
겨울이면 화롯불을 쬐지 않고 갈대꽃으로 공을 만들어 발을 그 속에 넣고 있다 객이 오면 그 속에 함께 발을 넣었다는 분이다. 그것만으로도 푸근함이 맘 속 깊이 전해 온다. 아마도 달빛을 무척이나 즐기셨던지 보름달이 뜨는 가을날이면 대야를 연못 위에 띄워놓고 앉아 그 위에 달 그림자를 받아 밤새 즐겼다고 한다. 동정호에 배를 띄우고, 술잔에 달을 띄웠던 이백李白의 운치보다는 더 맑은 달빛이다. 그러던 분이 그 달빛에 마음이 동하여 객客과 더불어 달을 즐기고자 하였지만 구봉 스님 마음의 그림자가 맑은 달빛을 가리우니 둥근달과 같은색의 귤차를 맑게 달여 차향기로 달빛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유정선사의 차 향기가 코에 닿아 문을 활짝 열고 하늘을 보니 초닷새 이른 달이 이미 서쪽으로 기운다. 휘엉청 보름달이 아니면 또 어떠랴,‘ 삶에 시달리는’도시의 생활에 이른 달빛 보기는 더 어려웠지 아니한가.
서쪽 산마루에 걸터앉은 초승달이였지만 이미 금빛이 가득하였다.

달빛 아래 관음보살의 백의白衣는 더 눈부시게 빛났을 것이다. 경전의 내용대로 하자면 워낙은 보타낙산바닷가 바위에 앉아 계셔야 할 분이다. 보살 뒤쪽 빽빽한 대숲, 사각거리는 댓잎 부딪치는 바람소리가 그대로 들려온다. 대숲의 바람소리는가을날 크게 맑고차가운 폭포수와 한결 더 잘 어울리는것 같다. 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다 살핀다는 관세음보살인데 오히려 눈을 꽉 감은 그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하기 짝이 없으니 한편으로는 그림 속의 관음보살이 야속하기도 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면 아래에서 애써 손을 길게 위로 뻗은 선재동자는 그 담담한 표정 위로 선지식을 구하고 있다.

《화엄경》<입법계품入法界品>은 선재동자의 선지식 역방歷訪의 구성이나 동기 때문이라도 선禪의 세계에서 선호하던 경전이다. 화려한 색상은 멀리 두고 먹의 농담濃淡과 선線으로만 선재동자와 백의관음보살의 만남이 순간을 그려 넣었는데, 공간의 깊이감을 표현한 기술이 특히 탁월하
여 보살의 앉은 바위 아래 쪽은 가늠할 수 없는 허공에 머물러 있다. 일본에서 전래 되어온 이 작품의 화면위에 교토(京都)의 난젠지(南禪寺) 등에 머물렀던 선승 야쿠오도쿠겐(約翁德儉, 1244~1319)의 칠언절구 찬문이 있다. 바위의 질감을 표현함에 있어 먹의 강약을 강하고 거칠게 쓴 작품의 화풍으로 보아 작품이 그려진 것도 그때 14세기 즈음으로 추정할 수 있다. 두 선승이 달빛을 벗삼아 앉아 한 사람이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이 썼을지 모르는 일이다. 보살의 밝은 후광이 달빛을 닮지 않았던가.


화엄경 관음보살의 발원發願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중생들이 다 나를 생각하거나 내 이름을 부르거나 내 모습을 보게 되면 다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지이다.”
아직 철이 일러 귤차는 못 달일지라도 나는 오늘 맑은 잎차 한 잔 내려 찻잔에 달은 이미 넘어간지 오래이니 희미한 별빛을 담아본다. 서쪽 하늘 초승달도 원래의 모습이 둥근지 알고, 구름 속에 숨은 봉우리가 원래 그 자리에 우람한 것을 이미 안다면 눈 앞에 벌어지는 현상에 속을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니 두려움이 설자리가 어디던가 싶다. 하지만 하늘은 이내 조화 속으로 들어가고 후두둑 철없는 가을비 소리가 또 내 마음을 속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