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도 하지 말고 악행도 하지 말라 그동안 세계는 서구과학문명을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물질문명의 편리함을 저버리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한계를 인식하고 인간의 내면세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구체적인 현실들을 바라보면, 무심코 말세라는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그러나 길고 긴 불교 역사를 돌이켜볼 때, 당시의 상황에서 말세가 아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승가는 그러한 문제들을 불교적인 고리로부터 풀어가고자 하였다. 하여 때로는 눈 밝은 스승이 계셔서 바른길을 제시해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승가가 주체가 되어 어두운 세상을 비추고자 애쓰기도 하였다.
그 험한 세상을 밝히고자 제시되었던 것 중 하나가 법보사찰 해인사에서 발견된 무생계無生戒(무생계첩)이다. 이것은 전세계 불교국가 중에서도 한국(고려)에만 존재하는 보살계로, 고려를 방문했던 인도승 지공화상에 의해 전해진 것이다. 지공 화상이 고려를 방문했을 당시, 고려 후기의 불교계는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때문에, 당시의 고승대덕들은 그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였으며, 무생계는 아마도 이러한 고려 불교계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되었던 새로운 계율사상의 표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혼돈기의 세상을 구하고자 제시되었던 그 혁신적인 계율사상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다음은 1992년 5월 해인사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 우측에 계신 부처님 복장에서 나온 비로자나불 무생계법의 내용이다.
비로자나불 무생계(원문)
무릇 무생계는 천성千聖을 세우는 땅이요, 만선萬善이 생겨나는 터이니, 땅과 터전을 다스리지 않으면 성聖과 선善이 어찌 설 수 있으랴. 이는 마치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으니 어찌 이룰어질 날이 있을 것이요, 또 오물덩어리를 깎아 향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 끝내 얻을 수 없으리라.
고해를 건너려면 반드시 자비의 배를 빌려야 하고, 어두운 거리를 밝히려면 반드시 지혜의 횃불을 밝혀야 하느니, 그러므로 일체중생이 이 계법을 받지 않고서 불도를 이룰 수는 없으리라. 이 계법은 온갖 형상 있는 존재이거나 형상 없는 존재이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받아 지녀야 하느니, 이러한 까닭으로 비로자나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문수보살께서 몸소 전해주신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께소 이를 말미암아 깨달음을 이루셨고, 모든 보살들 또한 이 계를 의지하여 인행因行을 완성하셨나니, 번뇌를 없애는 청량함이며, 법신을 장엄하는 보배라 할 것이니라. 이 계 안에서는, 유정有情 무정無情 가릴 것 없이 모두 능히 번뇌 없는 법신을 성취 할 수 있음이라.
만약에 선남선녀가 이 계를 받고자 한다면 자신에 대해서 애착하거나 그렇다고 하여 자신을 버리거나 또는 유심有心 무심無心으로써 받아도 안 되느니라. 자신에 대해서 애착하면 사마邪魔에 떨어지고 자신을 버리면 외도外道라 불리게 되느니라. 유심으로 받으면 생사를 계속하게 되고, 무심으로 받으면 단멸斷滅에 빠지게 되며, 성품과 형상으로 함께 받아도 성취할 수 없느니라.
이 계법은 본래 일정함이 없어서 범부도 없고 성인도 없으며, 선도 악도 없다. 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가 이를 의지하여 수행함에 모두 받아 지닐지라.
1. 제 가지 귀의계歸依戒를 받아 깨끗이 믿어야 한다.
무형無形의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무생無生의 법에 귀의합니다.
무쟁無諍의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최상最上의 무생계無生戒에 귀의합니다.
2. 세 가지 업의 모든 죄를 참회하여 없애야 한다.
도는 본래 청정하거만 미혹 때문에 아는 바가 없어서
한량없는 죄를 짓고 이 번뇌의 몸으로 받게 되었으니,
내가 이제 애달프게 참회하고 빨리 부처님의 보리를 증득하리라
3. 여섯가지 서원을 세워야 한다.
첫째, 일체중생이 모두 성불하지 않으면 나 또한 정각에 오르지 않겠습니다.
둘째, 일체 중생의 모든 번뇌를 내가 모두 대신하겠습니다.
셋째, 일체 중생의 모든 어리석음을 밝혀 주겠습니다
넷째, 일체 중생의 모든 재난을 안온하게 하겠습니다.
다섯째, 일체 중생의 모든 탐진치를 계정혜로 바꾸겠습니다.
여섯째, 일체 중생이 모두 나와 함께 정등각正等覺에 오르게 하겠습니다.
4. 이것이 최상승의 무생계이니, 모든 선을 짓지도 말고, 모든 악을 짓지 말아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모든 조문을 여법하게 잘 지닐 것이니라. 한 번 귀에 스치기만 하여도 모두 비리를 증득할 것이며, 사유하고 닦아 익한다면 영원한 배를 만들어 함께 미혹의 나루를 벗어나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리니, 이와 같이 수승한 이로움은 넒고 커서 다함이 없으리라.
*당시 수계 받은 제자와 전수하신 스님*
태정泰定 3년 <서기 1326년 8월>
받아 지니는 제자 각형覺慶
여래如來 유교遺敎제자이며 일승 계법을 전수하는
서천선사 지공指空
이상이 병든 불교계와 고통스런 세상을 치료하고자 제시되었던 무생계의 처방전이다. 감히 이것을 설명해야하는 역할을 맡아 어깨가 무겁지만, 필자 나름대로의 해석을 더하고자 한다.
무생계첩은 우선 무생계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무생계가 일체 모든 것의 터전과 같고, 어둠을 비추는 횃불과 같아 이 계법이 없으면 불도를 이룰 수 없다고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 무생계뿐이겠는가. 계율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불도를 이루는 원동력이며, 승단운영의 기반인 것을.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가 모두 함께 받을 수 있는 이 무생계는 1. 사귀의 2. 참회 3. 서원 4. 무생계의 순서로 진행된다. 우선, 이계의 명칭인 무생계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술적인 용어로 설명하자면, 이 무생無生의 원어는 anutpanna로, 이 말에는 불생不生, 무생無生, 미생未生, 비생非生, 미기未起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현상적인 면에서 그것을 초월하는 궁극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멸이 없는 열반, 즉 무생법인無生法忍이 그것이다. 그리고 무생無生의무無는 부정이 아니라, 무위無爲라는 뜻으로 의식이전의 절대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무생계란 무생법인이라고 이해해도 좋다. 그럼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무생계첩의 내용을 살펴 보겠다.
첫째, 사귀의四歸依는 삼귀의三歸依에 무생계가 첨가된 형태로, 불佛은 형상없는 법신불, 法은 남이 없는 무생법인, 승僧은 화합승가를 가리키며, 여기에 최상승무생계에 대한 귀의가 더해진 것이다. 비로자나불 무생계법이라고 되어 있는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사귀의는 법신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최상승무생계에 대한 귀의는 단순히 이 계첩의 내용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않고, 불교도의 궁극적 목표인 깨달음의 세계에 대한 귀의를 현시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둘째, 무생계의 참회는 신구의身口意의 삼업三業을 정화시켜 자신의 업장에 장애되는 일 없이 수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혹에 빠져 있던 자신의 업에 대한 깊은 응시와 반성이 엿보이며, 그것을 통해 보리를 증득하기 위해 청정해지고자 하는 원이 담겨 있다.
셋째, 서원에는 일체중생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쓰여 있다. 무생계에서는 1992년 발견된 무생계첩 여섯 가지 서원을 세우고 있는데, 일반적인 사홍서원과는 그 내용이 상
이하다. 즉, 자신을 위한 서원이 아니라, 모두가 일체 중생을 위한 서원인 것이다. 참회나 서원은 대승계 수계의식에서 빠질 수 없는 항목이지만, 이것들에 대한 변천사 또한 다양하여 왜 이러한 참회나 서원이 무생계 안에 들어가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단답으로 그칠 수 없다. 그것은 시대상황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생계의 여섯 가지 서원이 정신성을 강조하는 밀교나 선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일체중생과 함께 하는 대승사상을 통해 계율의 실천력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넷째, 무생계이다. 단 한개의 조항만이 설해져 있는 이것은 무생계첩의 핵심이 된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유일한 계목은 <선행도 하지 말고 악행도 하지 말라>이다. 어찌보면 계목이라고 보기조차도 어렵다. 종래의 계목은 선은 행해야 하며, 악은 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그래야만 계율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생계는 기존의 계율관을 철저하게 깨고있다. 선악이라는것 자체를 구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가? 이 무생계 안에는 인간 존재의 본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무생계를 받음으로써 이미우리 안에 무생법인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선악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즉, 선악을 초월하여 애써 추구하지 않으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자신의 내면적 진리 곧 무생無生에 도달하게 된다는 심오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이렇게 혁신적인 무생계의 계율관은 선사상에 입각하여 만들어졌음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육조 혜능 스님의《무상심지계無相心地戒》에서도 똑같은 사상이 발견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소승율과 대승계, 선계, 청규 등여러 가지 계율사상사의 갈래 속에서도 무생계만큼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계목은 그다지 흔치 않다. 무생계야말로 불성이라고 하는 인간 본질의 기반 위에 선과 계율을 절묘하게 융합시킨 가장 적절한 선계라고 말 할 수 있다.
계戒는 승단운영을 위한 율律과 달라서 오로지 깨달음의 길로 향하기 위한 필수불가결 요소이다. 그러므로 길고 긴 불교역사 위에서 계戒는 승속을 구분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에 의지하는 기본윤리에 바탕을 두어왔다. 무생계 또한 그러한 전제 하에서 성립되고 유포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무생계는 기존의 계와는 상당히 다른 독자성을 보인다. 기본적인 윤리 도덕을 넘어서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계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해인사에서 이러한 무생계첩이 발견되고, 시간의 벽을넘어 이제 와서 다시금 이곳에서 무생계를 설한다고 하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불교계의 중심에 항상 법보사찰 해인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좋은 계기이다. 번쇄한 이론은 그만두고, 올 가을엔 무생계를 받아 자신 안의 무생법인에 눈뜰 수 있기를 조심스레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