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적 절집에 놀러 가면 가장 손쉽게 만지고 놀던 장난감이 목탁이었습니다. 두드려도 보고 두 개의 구멍에 눈을 대보기도 하고 아기 스님들 까까중머리를 손바닥으로 만지듯이 목탁을 만져보며 깔깔거리기도 하구요. 목탁을 가지고 노는 저를 나무라기는커녕“심심하면 목탁 갖고 놀아라”하셨던 스님도 계시니 법구法具를 장난감처럼, 신기한 악기처럼 무람없이 여겼던 기억이 납니다. 불전 사물 중 하나인 목어를 간소화한 법구가 목탁이라 하지요.‘ 나무 물고기’. 이 말은 검박하면서도 소슬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화려한 색감의 유화가 아니라 수묵 담채의 담박한 물빛을 떠오르게 하지요. 목탁의 두 구멍은 물고기 아가미에 연결된 숨통 같기도 하고, 잘 때도 감지 않는다는 수행자의 두 눈 같기도 합니다. 목탁의 길게 갈라진 부분은 물고기 입 같기도 하고 눈과 눈을 연결하는 마음의 길 같기도 합니다.‘ 청안하시게’라고 가끔 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할 때가 있는데, 청안靑眼의 당부에 목탁은 퍽 잘 어울리는 동무인 듯도 합니다.
어디선가 이런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흰 눈썹의 노스님이 배를 타고 있는데 뱃전에 커다란 물고기가 다가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노스님께 무언가 하소연하는 그림이었어요. 가만 보니 물고기 등에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삐죽 솟아 있었습니다. 저는 나무의 다양한 설화적 모티브들에 관심이 많은지라 물고기 등에 자라난 나무에 당장 호기심을 보였지요. 나중에 이 그림이 목어와 목탁의 유래를 설명하는 그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전하는 얘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이렇습니다.
옛날 어느 절에 노승이 살았는데 여러 제자 중 유독 제멋대로인 제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온갖 그릇된 행동을 일삼던 이 제자가 몹쓸 병에 걸려 일찍 죽었답니다. 다음 생에 물고기로 태어난 제자는 업보로 인해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해요. 손가락에 가시 하나 박혀도 힘든데, 몸통만한 나무가 등에 솟아난 물고기라니요! 하루는 고승이 배를 타고 가던 중 물고기가 된 전생의 제자와 조우하게 됩니다. 제게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 다음부터인데요. 그렇게 속을 썩이던 제자였건만 노승은 그를 가여워하여 뭍과 물의 고통에 처한 모든 미물들과 외로운 혼들을 위로하는 수륙재를 베풉니다. 그러니까, 그 그림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고통 받는 물고기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노승도 함께 울고 있었던 거지요. 나 아닌 다른 존재의 고통 때문에 눈물 흘릴 수 있는 마음! 비단 사람만이 아니라 생물 무생물에 이르는 세상 모든 존재의 고통을 함께 듣는 마음! 스님의 자비로 물고기의 몸을 벗은 제자가 꿈에 나타나 다음 생에는 참다운 수행자로 살아갈 것을 서원하고, 등에 난 나무를 베어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 막대로 쳐 주길 원했다고 합니다. 수행자들에 대한 일종의 경책이며, 수행자 개인의 해탈에 머물지 않고 일체중생의 해탈을 함께 염려하는 이 마음. 불음佛音이란 이런 마음의 공명共鳴이구나 싶었습니다.
절집에 가면 물고기가 퍽 많습니다. 목어가 있고 모든 스님들이 수행의 반려로 지니시는 목탁이 있고 문살이나 불단, 건물 기둥 같은 데서 물고기 조각이나 문양을 만나게 되기도 하지요. 처마 끝에 매달아놓는 풍경에도 물고기가 매달려 있지요. 푸른 가을하늘에 나무 물고기!
바람속을 헤엄치는 저 물고기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