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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마력의 소리-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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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음악산책 - 이미향 2007년 9월 307호
묘한 소리의 마력-바라 아스라한 안개가 산허리를 돌아 산사의 큰 법당 황토벽에 부딪치면 이슬 머금은 검푸른 소나무가 풍송조로 새벽 법문을 연다. 티-잉 팅-팅 처마 끝 풍경이 울고 법당 안 금고가 따앙-땅-땅땅땅땅 따땅-땅 마지막 쇳소리로 모든 소리를 하나로 정돈한다.
절에서 사용되는 악기 가운데는 범종, 운판, 금고, 풍경, 요령, 광쇠, 경쇠, 바라 등과 같이 놋쇠로 된 타악기가 많다.
바라는 원래 서역 악기로 불교 발상지인 인도에서 유래하여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발, 동라, 발라, 바라, 자바라, 향발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 감은사지 삼층석탑 사리함에도 동발주악상이 보인다. 신라시대의 지증대사 부도탑, 조선시대의 감로탱화에도 보이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3~14세기경의 청동제바라에는‘도솔’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융성한 불교문화의 흔적에는 이처럼 늘 바라가 있었다.

바라는 불교의식에서만 연주되는 것은 아니다. 강원도, 경상도, 제주도 지역의 무속음악, 궁중무용인 향발무에서도 아주 중요한 악기로 사용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군악대 취타에는 자바라라는 이름으로 편성되어있다.
판소리나 무가의 사설에서는 바라소리를 사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는 글을 볼 수있다.
“법고는 두리둥둥, 광쇠는 꽝꽝, 목탁은 또도락, 죽비는 찰찰, 정쇠는 땅땅, 바라는 처르르 나무아미타불 나무서방정토.”
“어떠헌 스님이 목탁을 치느라 또드락 똑딱 하는구나. 어떠헌 스님은 광쇠를 치느라고 꽈꽝 꽝꽝 하는구나. 또한 스님은 바라를 치느라고 채잴챌챌 하는구나.”
불교의식에서는 크게 두 종류의 바라가 사용되고 있다. 영산재, 수륙재와 같은 불교의식에서 사용되는 큰 바라가 있고, 허리북, 나발, 나각과 함께 취타대에 편성되는 작은 바라가 있다.
바라춤은 바라를 양손에 들고 추는 춤을 말한다. 영산재나 수륙재와 같은 대규모의 불교 의식뿐 아니라 49재와 같은 천도재에서도 바라춤을 춘다.
각 지역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서울 경기지역의 바라춤이 부드러우면서 유려한 몸동작으로 깨달음의 기쁨을 대중과 함께 하려는 환희심의 표현이라면, 영남지역의 바라춤은 깨달음을 향한 고행승의 힘찬 정진을 연상하게 한다. 그 바라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동적인 춤동작은 다른 지역에서 느낄 수 없는 묘한 카리스마가 있다. 그것은 영남에서 사용하는 바라가 서울 보다 더 크고 무거워 그 춤이 훨씬 장중하고 움직임이 큰 탓이다.
아직도 난 작년 거제도 조선소 건립을 축원하는 용왕재에서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검은 먹구름이 온 하늘과 바다를 뒤덮어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칼로 자른 듯한 절벽 위에 수백 년의 풍랑을 버텨온 소나무만이 홀로 청청하였다. 외호하는 신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소나무 앞엔 세찬 풍랑과 정성스레 차려진 제물만이 유일한 무대 배경이었다. 잿빛 긴 장삼에 빨간 가사를 두른 스님들의 바라춤은 마치 하늘과 땅에 떠도는 온갖 번뇌와 고행의 사슬을 단박에 벗겨내 버리려는 듯했다. 부처님이 선언하신‘천상천하 유아독존삼계개고 아당안지’를 그대로 펼치기라도 하듯 양손으로 힘차게 바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장렬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심오한 뜻이 검은 먹구름에게 전달된 것인가! 비를 쏟아낼 것만 같던 먹구름이 기세가 꺾인 듯 주춤하였다. 하늘마저도 그 신령한 소리와 신명나게 휘어감아 도는 바라춤에 감흥을 받아 동참 발원할 수밖에 없었나보다. 그래서인지 모든 재의식이 끝날 동안 비는 한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의식이 끝나자마자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실지로 이와 유사한 경험들을 많이 한다고 한다. 불교의 제반 의식들은 하늘을 감동시키고 유주무주의 모든 영혼과 중생들을 구제한다.
일본에도 우리나라의 바라와 비슷한 것이 있는데 불교의식 음악과 관련해서 스님이 직접 추는 춤이 존재하느냐고 물으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아니 스님이 춤을 추느냐고. 그래서인지 불가에서는 춤이라는 표현보다는 작법作法, 즉‘법을 짓는다’라는 의미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속인의 눈으로 보면 단지춤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불교적인 심성에서 보
면 그것은 바로 불교의 오묘한 진리요 불보살을 향한 찬탄이며 모든 중생이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들기를 바라는 간절하고도 간절한 발원의 마음인것이다. 그래서인지 춤이 아닌 작법이라는 용어가 가슴으로 전해져 온다.
바라는 인류가 만들어낸 악기 가운데 고대 이후로 거의 변함없이 사용되어온 악기 가운데 하나이다. 바라에서 나는 소리는 사람을 열광시키는 묘한 마력이 깃들여져 있다고 예로부터 믿어왔다. 수많은 불교 경전뿐만 아니라 성서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종교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과 경기 남부지역의 무속음악에서는 바라가 단순한 반주음악에 머무르지 않고 복과 수명장수를 가져다주는 신령스러운 악기로 여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