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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쟁반을 들어 올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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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야기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07년 9월 307호
홍인 弘仁,<소나무 언덕과 맑은 샘> 그림의 떡은 그림일 뿐이고, 창窓밖의 경치는 창 밖의 일일 따름이다. 답을 못한 중에도 깨달음이 있었다. 백장 선사는 열반 화상에게 재차 물은 것이 아니라 다시 그를 채근한 것이었다. 참으로 자상하기 짝이 없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문수보살의 경지를 곁눈질조차도 할 처지가 안 되는 나는 오늘도 발끝을 들고, 목을 쭈욱 배어 그 결지를 살피고 또 살펴보지만 여전히 눈앞에 컴컴한 허공 뿐이다.


금쟁반을 들어 올리면


가을은 낮 보다 밤에 먼저 온다.
가을밤 창 밖의 귀뚜라미 소리가 꽤나 소란스러워지거나, 어느 날 밤하늘이 터엉 비어 상현이라도 유난히 밝게 비추고 있다면 이미 가을이 문턱을 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점이면 밤바람은 이미 살결에 까실하게 닿아서 여름 내 빳빳이 손질해 걸어 놓았던 모시옷에 풀기를 빼야한다. 올 여름은 유난한 비에 모시 치마저고리가 별무 소용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채 꼬리를 감추지 못한 늦더위가 있으니 잠시 뒤늦은 모시옷의 호사를 부려봄직할 것 같다.

백장 스님께서 행각할 때 대웅산에서의 일이다. 선권사善勸寺의 주지를 만나 인사를 마치고는 주지에게 선상禪床에 앉을 것을 권하면서 말했다.
“내가 꼭 한 가지 주지께 물어 볼 것이 있습니다.”
주지가 사양타 못해 자리에 오르니 스님께서 물었다.
“주지께서는 강을 하실때 어떻게 하시오?”
“마치 금쟁반에 구슬 굴리 듯 합니다.”
“금쟁반을 들어 버리면 구슬은 어디에 있소?”
주지가 대답을 못하였다.
여기까지보다가 생각하였다. 구슬이 금쟁반에 구르지만 그 소리는 허공에 머무를 따름이었다. 허공의 구슬 소리가 한참 동안 또르르 울렸다. 글을 쓸 백지를 대하는 나는 아침부터 칼날을 세운다, 금인지 은인지도 모를 쟁반을 닦는다 부산스러웠으나 순간 허공에 헛 손질이 따로 없었다.

백장스님께서는 또 물었다.
“교敎에서 말하기를,‘ 분명하게 불성佛性을 보면 문수보살의 경지와 같다’하였는데, 이미 분명하게 불성을 보았다면 의당 부처님과 같아야지 어째서 겨우 문수와 같다 하겠소?”
주지가 또 대답치 못하였다.
이일로 주지는 납의를 입고 선을 배워 호를 열반涅槃이라 하였으니, 그가 곧 제2 백장(百丈涅槃)이다.

그림의 떡은 그림일 뿐이고, 창窓밖의 경치는 창 밖의 일일 따름이다. 답을 못한 중에도 깨달음이있었다. 백장 선사는 열반 화상에게 재차 물은 것이 아니라 다시 그를 채근한 것이었다. 참으로 자상하기 짝이 없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문수보살의 경지를 곁눈질조차도 할 처지가 안 되는 나는 오늘도 발끝을 들고, 목을 쭈욱 빼어 그 경지를 살피고 또 살펴보지만 여전히 눈 앞엔 컴컴한 허공뿐이다.

가을이 되어 하늘이 높아지니 소나무 몇 그루 얹혀 있는 봉우리가 장하게 보인다. 바위에 걸터앉아 소나무 가지 사이에 내려다뵈는 세상이 제법 조그맣게 내려앉아 있다. 금쟁반에 구슬도 굴려 보았거니와 서늘한 밤 공기를 가르는 물 소리도 가을밤에 멋진 놀이거리가 아닐 수 없다.
홍인(弘仁; 1610~1664)의 소나무 구릉과 맑은 샘이 흐르는 화폭은 너무나 청명하고 잘 정돈 되어 있어 실은 내 시선이 머무는 것조차 꺼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화면의 절반 이상이 소나무가 듬성듬성한 바위산이지만 이상하게도 눈길을 맨 처음 명징明澄한 물가에 머물게 된다. 바람한점 일지 않는 듯 거울처럼 고요한 물가를 따라 가면 작은 시냇물 사이로 올려다뵈는 난야蘭若한 채가 작은 바람에 사각거리는 대숲을 병풍 삼아 얌전히 놓여있다. 안목을 돋구어 자세히 보면 그 난야의 앞마당에는 잎이 떨어진 고목이 하나 있으니 그 자태가 모르긴 몰라도 틀림없이 매화 고목임직하다. 산사는 대숲을 병풍 삼고 야트막한 뒷산을 의지하고 있는데 눈길을 성큼 뛰면 어느새 내 몸은 바위산 꼭대기에 앉아 있게 된다. 시원한 절벽과 절묘한 바위산을 소나무와 더불어 한가지로 감상하며 하산을 하니 다시 물가에 이르러 족히 한 시간은 쉬어 갈 만한 정자와 너럭 바위가 고단한 다리를 즐겁게 한다. 물이 차면 또 어떠한가, 발을 훌훌 털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나니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가볍다.
홍인은 명왕조가 재건될 기미가 없자 고항古航 법사를 따라 속세를 떠나 1646년에 승려가 되었다. 그는 제운사에 터를 잡고 은둔생활을 하였다고 전하지만, 자주 황산과 안탕산사이를 여행하고 그곳에서 그림에 몰두 하였다고 한다. 그의 즐거움은 산과 물을 벗삼아 생활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였는지 산과 물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그림으로 잘 표현해 내었다. 홍인은 무엇보다도 산과 바위, 숲과 나무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었다는 점에서 예찬의 그림과는 다른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현실의 세계가 아닌 그들이 향하고 있는 이상세계였으며 그들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물과 산이었던 것이다.
《선가귀감》을 펼쳐드니 이런 구절이 보였다.
“도에 게으른 사람은 항상 뒤만 돌아보고 있으니, 이는 스스로를 버리는 사람이다.”
오늘도 바람에 일렁이는 솔숲을 보며 지난 여름을 이야기했건만 앞으로 갈 길은 생각지 않고 또 지나온 길만 들먹인 셈이다. 지나온 길이 어려울수록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어려운 길을 만나서 도중에 주저 앉는것 보다는 그 길을 지나와서 뒤를 돌아보며 주저앉는 일이 더 많다. 할 것 하고 앉았다 하며 기특한 마음도 잠시, 도중에 주저앉는 것이나 지나와서 주저앉는 것이나 앉은것은 앉은 것이다. 아, 하지만 길은 가기 위해 있는것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