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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나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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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서도東話西道 - 이겸 2007년 9월 307호
영혼의 나이테 낮은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다. 신중하고 밝은 성품을 지닌 그녀다. 평소의 음성과는 조금 다른 느낌.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설렘이 전해져 온다. 목소리엔 주저함이 없고 대신 오랜 기다림의 딱지가 붙어 있는 듯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계속해서 들었다. 그녀의 말은 그냥 의사소통을 위한 단순한 의미의‘기능적인 말’이아니었다. 떨림과 기대감이 섞여 있는 그녀의 우물이었다. 깊은 곳에서 길어 올려진 샘물이 내게로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조금씩 물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마르지 않는 샘에서 맑은 물이 넘쳐흘렀다. 이 아침을 기다리며 밤 시간을 보냈을 터이다.

소녀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고 있는 이이며, 그것을 깨닫고자 무던히도 애를 쓰는 이이다. 그런 그녀가 아침에 내게 전화를 걸어 저간의 사정과 함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간절함이 밴 갈증이었다. 아주 근본적인 질문과 그것을 갈구하고자 하는 외침을 이 아침에 전한 것이다. 물속에 잠긴 호흡기처럼 숨통이 막혀가다가 희망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내게 전한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고, 나는 기꺼이 승낙했다. 그녀의 숨통을 트이게 한 희망에 일조하고 싶었다.

칠순이 넘은 소녀와의 통화가 끝난 후, 나에게도 그녀의 샘물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소녀의 모습도 아른거린다. 호기심 가득한 눈, 사뿐사뿐 하늘하늘거리는 발걸음, 잔주름이 가득한 얼굴과 목, 삶의 온기로 가득한 목소리. 그녀의 신체 나이는 동년배들 보다는 십년 정도 늦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영적인 나이테는 빽빽이 쌓여 있었다. 이 아름다운 소녀는 진화한 인간이다. 영적으로 성숙하고자 노력하는 존재다. 나이가 든다는 것엔 많은 의미가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성숙함이다. 신체의 나이는 누구나 거저먹는 것이지만, 영적으로 성숙한 나이는 천차 만별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이 우리는 죽음에 직면하고 만다. 급브레이크에 걸린 자동차처럼 충격의 흔적을 여기저기에 그려 놓는다. 아스팔트에 어지럽게 흩어진 브레이크 자국. 자신이 달려온 길 위에 그려진 마지막 발자국. 이것이 대부분의 삶이다.
달팽이 걸음으로 진행될 것 같았던 인생길이 실은 그림자처럼 항상 붙어 다녔던 것이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이 신체의 나이엔 나이테가 쌓였지만, 영적으로는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유아기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일 게다.
삶과 죽음에 대한 갈증으로 밤을 지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우린 가장 중요하고도 답을 구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살아가지 않는가?

내가 더 살아 나이가 들어 그녀와 비슷한 심정에 놓이게 된다면, 나의 벗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을 것이다.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다고… 눈물이 난다고… 그리고 함께 가보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많은 이들의 삶은 근본적인 의문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깨달음을 향해 가는 것을 마치 현실을 외면하는 자들의 소행쯤이나, 현실 부적응자들의 알리바이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말 살아 있기나 한 것인지? 잠을 설치며 고민해야 한다.

존재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의문을 품은 이들에게 물리학자들의 이론을 전하고 싶다.
“만물은 생성되는 것도 없고, 소멸되는 것도 없다. 그 상태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