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집 지으며 문득!
우스갯소리하나. 광활한 고비사막과 복잡한 서울에서 수련한 두 도사가 있었다. 서로 소문을 듣고 궁금하여 내공을 겨루어보기로 했다. 겨룰 공부는 수십 가지, 며칠이 걸릴지 예측불허. 둘 다 수행이 만만치 않다는 소문이 주변에 자자했다. 어느 날 두 도사가 마주했다. 장소는 지리산 깊은 계곡. 사막에서 온 도사가 진땀을 흘리더니 갑자기 기권을 선언했다. 이유는 산 속이 너무 시끄러워 정신집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수 내공을 보이기는 커녕 정신통일도 못 시키고 그 도사는 초장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니 지리산의 적막함이 시끄럽다니?
한반도 깊은 산 속의 고요함도 고비사막에 비하면 속세가 너무 가까워 시끄럽다는 것이다.
좁은 한반도는 어딜 가든 동리가 가깝고 밥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나니 그 속에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우스개 은유다. 좁은 반도의 산중도 시끄럽다면 세속의 장터는 오죽할까?
외부 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세상 모든 것은 다 소리를 낸다. 살아있는 자연은 관계와 현상 자체가 소리를 동반한다. 사회생활 또한 소리 덩어리다. 남들이 아무리 아름답다는 소리도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은 다 소음이다. 어디 소리에만 소란이 있겠는가. 관계에도 소음 같은 처지가 있는 법. 그 중에 사람끼리의 부대낌이 가장 큰 장애다. 늘 노래하는 존재의 관계도 있지만 항시 소음 같은 존재의 관계도 있다. 좋은 노래도 자주 들으면 싫어지고 있는 판에 소음을 자주 듣는 것은 큰 고통이다. 사람이란 관계를 떠나 살 수 없으니 고통의 근원은 언제나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떠난다는 것은 곧 길에서 떠난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길에서 떠나 살 수가 없다. 인간이란 길에 붙어사는 존재다. 길을 핥아먹고 길에 물으며 길을 좇는 듯 하다가도 길에 쫓긴다. 싸우고 훔치며 거짓말하는 터전도 길이다. 그 길에서 사냥하며 농사 짓고 길에서 배우고 만나며 사랑하고 헤어진다. 오죽하면 죽을 어려움을 길을 잃었다 하고 살 방도는 길을 찾았다 하겠는가. 사람은 길에서 살다 길에서 죽는 존재다.
길은 사람들이 살아 온 양태가 지형에 새겨진 흔적이다. 혼자가는 길은 좁고 한적하나 험하기 짝이 없고 여럿이 다닌 길은 넓고 편하지만 번잡하며 잡스럽다. 그 길의 도정에서 번잡함의 극치는 무엇일까 묻는 이 많아서 속담으로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길가에 집짓기’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길가에서 집 짓는 일이다. 세상 모든 집은 길과 만난다. 꿈속의 집도 꿈길로 이어져 있고 물 위의 집도 뱃길로 이어져 있으니 땅 위의 길이야 오죽 많으랴. 길의 가지만큼‘길가에 집짓기’도 다양하다. 말이 좋아 다양이지 사실은 혼잡 혼돈 참견 어지러움… 복잡함 그 자체다. 절집 말로는‘상좌 많으면 가마솥 깬다’와 유사하리라.‘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과도 엇비슷하지만‘길가에 집짓기’는 보는 이마다 무책임과 불확실과 즉흥성 그리고 끝없는 간섭과 훈수에 싸구려 경험담에 덜 깨친 소신까지 그야말로 대책 없음의 극치를 보인다. 상좌나 사공이 아무리 많아도 길가의 입만이야 하겠는가. 그러니‘길가의 집짓기’가 오죽 힘든 일인가. 내 직업은 건축가. 남의 집 그려주고 대가를 받는다. 속으론 건축주와 삶의 방식을 상의하는 존재가 건축가라고 믿으며 기술보다는 사유의 가치를 우선하지만 그건 나의 희망사항일 뿐 세상에 무수한 업자 중에 하나다. 길가에 집을 짓다보면 참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난다. 건축주도 여러 모습이 있고, 시공자도 여러 모습이있다. 새집 짓는 곳에도 이웃이 있으니그 또한 천태만상이다. 집앞을 지나는 행인들 또한 각양각색이다. 자기 일도 아닌데 끼어들어 간섭하는 길손이 있는가 하면, 시작부터 끝까지 못알아 듣는 척 자기 실속 챙기느라 엉터리 공사하는 시공자도 있고,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자주부려 시공자 골탕 먹이며 공사비 낭비하는 건축주도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집짓는 인연으로 만났으니 집짓기가 끝날 때까지 집주인 편을 들어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시공자 편도 들어야 한다. 시공자와 건축주가 다투면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이웃이 시비를 걸면 이웃 편도 들어야 한다. 난감하다. 그럴 때 나는 그 누구 편도 아닌 오로지‘집’편을 든다.사고방식이 올바른 집이라면 주인에 대해서도 굽실거릴 필요가 없고, 시공자에게도 희생과 무리를 강요할 필요가 없고, 이웃에 대해서도 횡포를 부리지 않는다.
아 가장 힘든 일은 집짓는 일이 아닌 이웃의 감정- 질투 욕심 시기 미움 등- 이 집짓는 일을 빌미로 터진 경우다. 옆에 새집이 들어서니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기분 나쁘다고 대놓고 말하기는 멋쩍어 다른 이유를 대며 집짓기에 훼방을 놓는 것을 자주 본다. 1·4후퇴 때 목숨 걸고 같이 피난해서 평생을 옆집에 살고도 새집 지을 때 일조권 핑계로 싸우고, 옆집 새로 서면 자기 집의 조망이 나쁘다고 시비 걸고, 심지어는 아무 이유 없는 트집으로 헌 집 고쳐달라고 생떼 쓰는 이웃도 있다.‘ 길가에 집짓기’에서 이웃사촌이란 참 보기 어렵다. 집 짓다 싸우면 이웃사촌이 아니라 이웃이 원수가 된다. 혼자 살기도 벅찬 세상에, 사랑할 시간도 짧은 시간에 옆집을 원수로 살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옛말에‘백 냥으로 집 짓고 구백 냥으로 이웃산다’한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이웃은 어려운 관계임이 분명하다. 하긴 이웃사촌이란 말도 이웃사촌이 하도 귀해서 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디자인하고 짓는 집은 내 소유가 아니고 내가 살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다른 이가 사는 다른 이의 집이다. 만약 건축가로서의 욕심을 부리는 것이 혹 있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건축가의 욕망은 남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남을 위해 욕망하다니. 참 이상한 직업이다. 나는 오늘도 다른 이의 삶의 형태를 내 방식의 공간으로 구축한다. 그 모든 집은 길과 만나고‘길가에 집짓기’는 끝이 없는데 아 난 언제나 길을 떠난 빛 닮고 바람 같은 자유의 집을 한 채 지으려나. 아 길은 나의 거울! 집 밖의 길을 살피던 눈을 돌려 집 안의 길을 보자꾸나. 아니 내안의 길을 보자꾸나. 스스로 길을 잃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