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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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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담善雨情談 - 김선우 2007년 9월 307호
범종 산사에서 한 열흘 머물다 돌아왔습니다. 산속의 시간이 도시의 시간으로 바뀐 한참 후에도 내 귓가에 맴도는 종소리 있습니다.
아니지요, 귓가가 아니라 심장 같은 곳, 일테면 좌심방과 우심실사이 얇은 문, 우심방과 좌심실 사이 문 같은 곳을 노크하는 듯한 종소리…크고 큰범종소리….
산사에 들어간 첫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툭-투둑-투두둑-, 텅-터엉-, 땅-따앙-. 음력 칠월 칠석을 향해가는 여름밤. 좀 가벼운 나방 같은 것에서부터 크고 육중한 소리를 내는 매미에 이르기까지, 장지문에 온몸으로 부딪혀오는 목숨붙이들 때문에 밤새 힘들었습니다. 처음엔 낯선 소리에 흠칫 놀랐고, 소리의 진원을 알고 난 후에는 육박하는 온몸의 무게에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텅- 터엉, 땅-따앙-. 크다고 해봐야 고작 내 엄지손가락 정도인 날것들이 온몸으로 내는 소리들. 그이들이 불빛을 보고 달려오는 듯해 불을 껐습니다. 불을 끈 후에도 한참을 텅-터엉- 부딪혀왔습니다. 아파라…. 정말이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소리들. 온몸이 아니고는 날 수 없는 소리들. 내가 면한 문이 매미들이 면한 벽이라도 되는 것처럼, 문과 벽 사이로 밤새 목숨들이 졌습니다. 온몸으로 던져진 유언들. 매미들이 나를 때렸습니다. 나는 나의 온몸인가.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는가.
다음날 아침. 조심스레 열어본 장지문 밖 추녀 밑엔 죽은 매미들이 별의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습니다. 더러는 죽어 있고 더러는 며칠 더 울다 가려는 듯 산속이 매미 울음으로 다시 울창해지는 아침. 멀리 종루에서 아침 범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주저앉아 바라보던 죽은 매미들에게서도 종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크고 큰종소리가 아주 작은것들의 몸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온몸일때 그 소리는 크고 큰 것이었습니다.
도시로 돌아와 인터넷과 책을 뒤져 매미의 생태를 확인해보았지요. 매미의 최후가 늘 그렇게 온몸의 부딪힘을 동반하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이렇다 할 답을 찾지는 못했어요. 나뭇가지에 산란한매미 알에서 깬 1령 애벌레가 땅 위로 떨어져 잠시 걸어 다니다가 부드럽고 무른 땅속으로 들어가 짧게는 1-2년, 길게는 17년 살다나와 어른매미가 된다고 하지요. 그렇게 매미가 된 후 고작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살다 죽는 그이들은 종종 생을 위한 길고 긴 기다림의 비유로 회자되곤 하지만 이 여름 그런 수사들이 내게는 싱거워졌습니다. 나는 그들의‘온몸’에 사로 잡혔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산사는 범종소리로 가득해집니다. 서른세 번의 종소리는 서른세 번째 천상세계인 도솔천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도솔천은 막연히 그리워할 대상이 아니라 지금 이곳을 온몸으로 뚫고 건너가는 이들의 하늘집이기도 하겠습니다. 범종소리는 기교를 허용하지 않는 소리입니다. 민첩하지도 둔하지도 않고, 다만 온몸으로 건너가는 소리입니다.
당신이 그러한것처럼.□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