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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문화부장 수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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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07년 08월 306호
수경스님 스님 방의 창문 틈에선 오후 볕이 와선 중이고 열어놓은 창 밖으로는 조계사 대웅전이 내려다보인다. 그 뒤로는 빌딩들이 먹장구름처럼 버티고 서 있어 그것들만 깨끗이 지워버리면 참 좋은 풍경이겠다 싶은데 스님이 말씀 하신다.
“지우지 마세요. 보고 싶은것만 보세요.”
내 논리대로라면 누군가는 이 세상에서 나를 지워버리고 싶어할 수 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먹장 구름을 지우려했던 내가 끔찍해 진다. 미워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고, 보고 싶은것만 보면 되는 것을.
“하나도 버릴게 없어요, 세상은.”
스님은 출가했을 때, 산신각과 신중단에서는 절을 하지 않았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니 그곳에서 절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경계는 곧 허물어졌다. 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가 하나의 꽃이니 너와 나를 구분 할 것도 없고, 그러니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나눌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이 세상에서 성을 내며 나 아닌 것 들을 지우고 싶어 한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또 깨닫게 하는 말씀이다.
“불교공부를 하다 보면 물을 닮아가요.”
물은 울퉁불퉁한 웅덩이를 다 채우면서 흘러간다. 절대로 거스르는 법도 없다. 여기는 싫다고 건너뛰고 저기는 좋다고 머물지도 않는다. 그러니 행복을 논할 필요가 없어진다. 아무리 행복론을 따져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마음을 물처럼 편안하게 두면 행복해지는 것이니. 스님은 불교 공부야말로 그렇게 마음을 순화시킨다 고 말한다. 스님은 출가전부터‘이뭐꼬’화두를 들었다.
“화두를 들면 자기를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어요. 너무 멋지죠?”
그 말씀이 멋지다. 무엇을 하든 화두를 들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으니, 스님의 수경修鏡이라는 법명과도 같이 잘 닦아놓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움직임을 다 들여다 보고 있으니, 어디에든 푹 빠지지 않으며 언제든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으니, 스님의 말씀대로 멋지다. 그래서 스님은 오늘도 그 거울을 닦는다. 그래서 스님은 오늘도 평온하다. 스님은 잠들 때 이 뭐꼬 화두를 들고 잠들면 아침에 눈뜰 때 이 뭐꼬 화두를 들고 있다고 한다. 말을 하면서도 화두가 같이 굴러가고 밥을 먹을때도 화두가 성성하니 스님의 뱃속에 든 밥알들도 모두 도업을 이루기 위한 약이 된다. 우리가 고기의 맛에 빠져서 절제력 없이 맛에 끄달리고 취함에 끄달릴 때, 그럼으로써 뱃속의 고기들이 모두 똥과 같을때. 연꽃처럼, 발은 진흙에 디디고 있어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이들이 스님이라 했다. 그것은 순간순간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잠깐 거울을 본다고 해도, 그것은 탁한 거울이거나 일그러진 거울이기 십상이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 거울을 늘 깨끗이 지키지 않으면 밥을 먹는 것이 똥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을 터, 사는것이 똥통에서 허우적 대는것과 별 반 다르지 않을터다.
두달 전, 스님은 조계종 문화부장 소임을 맡았다. 비구니 스님들이 맡고 있는 직책 중에는 가장 높다. 여태 공부만 하고 강원에서 가르치는 일만 해왔으니, 스님은 소임을 맡으면서 행정에 밝지도 못한데 왜 이런 소임이 인연으로 왔을까 생각해보았다. 결국 스님 안에 그러한 자질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자질을 끄집어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님을 이 자리에 추천하신 스님은, 한결같고 맑은 사람이니 이 자리에 제격이라고했다.
“불교가 1600여년의 역사라면 우리는 1600여년의 불교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사람이 사는 데 어우러져 있는것이 다 문화이니까요.”
역사는 흘러간다. 그렇기에 스님은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것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현대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고, 일상생활에서 일반인들이 불교문화에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은 문화부가 문화재를 발굴해 내고 문화재로 등록하는 일에 많은 부분 치중해 있었다. 그런데 문화부에 속해 있는 박물관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독립 부서로서 활동할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되어서, 무형문화재 부분에 있어 특성을 살린 컨텐츠들을 마련하려고 한다.
“뿌리는 전통에 두면서 현대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불교문화를 끊임없이 개발해야지요.”
불교를 성역화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무게를 잡으면 잡을수록 다가오는 사람이 없으니 불교문화를 전달하려는 노력은 무의미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은 틀 속에 갇히지 않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테두리 안에서 전통만 끌어안고 있을 것이 아니라 현대화 작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사찰 음식의 재료를 가지고 피자를 만들 수도 있고 스님의 생활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 수도 있고 범패와 현대무용을 접목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자꾸 표출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많은 사찰에서 산사음악회를 하고 있는데, 흥미 위주로 끌고가는 절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있어요. 그러나 그것을 뿌리째 흔들 필요는 없어요.”
아예 활동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잣대를 내세워 안 된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자체 평가가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평가를 내리다 보면 점점 걸러지면서 언젠가는 고급화 단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라는 것은 잣대를 세워 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불교가 사람들에게 가 닿기 위해서는 문화와 복지 측면에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스님은 일순간에 무엇을 일궈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체계를 조금씩 갖추어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세대들이 완성된 모습을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같이 보던 책을 덮어두고 맡은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생각이 많았다. 데미안에 심취하고 버트랜드 러셀을 좋아하며 철학 서적에 푹 빠져 지냈다. 인생은 무엇이며 나는 무엇인지 끝없이 고민했다. 많은 장래희망 중에서 가장 되고 싶은 건‘인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했다. 그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인천 용화사였다. 그곳에서 1년 동안 송담 스님의 참선 법문을 들었다. 그때 스님의 말씀 중에‘이 세상엔 영원한 것이 없다. 영원한 것이 있다면 영원한 것이 없다는 그 말만 영원한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원한 것을 찾아다녔는데 그것을 찾지 못해 괴로웠구나 싶었다. 그렇게 스물넷의 나이에발심 출가했다.
절집에 와서 실망한 부분도 있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출가와는 달랐다. 출가를 하면 고차원적인 세계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인간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랬는데, 그 이후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동안 하늘에 매달려있느라, 이상을 향해 가느라 힘들었다는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시점이 없으면 미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 시점을 자꾸 놓치고 미래만 얘기하는데, 그건 영원히 오지 않는 거예요. 나는 출가할 때 꿈을 버렸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별 볼일 없어 보이던 세상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이더라고요. 세상이 나를 변화시킨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변화 시킨거지요.”
참선을 하기 위해 출가했던 것인데, 어느 날 어느 보살이 와서‘마하살’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못해 부끄러웠다. 출가한 절이 마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노보살들이 쌀을 머리에 이고 두 시간씩 걸어 올라오는 걸 보면서 대체 불교가 무얼까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송담 스님과 은사스님은 세속 공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고 왔으면서 왜 망상을 피우느냐고 꾸짖으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국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니 부처님의 말씀을 큰 스님들의 법문을 통해 들을 것이 아니라 경전을 직접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문을 배웠다. 대학을 졸업하던 그해에 삼선 강원에 들어가 아침에는 강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공부했다. 그렇게 3년을 공부하고 나니 기력이 쇠잔해질 정도였다. 화엄반 4학년에 올라가서는, 학장스님이 중강을 하라고해서 그때 화엄경을 보면서 치문반을 가르쳤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껏 강의를 했다. 그런데 강의를 하면서도 항상 출가할 때의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참선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박사과정 때 일본 도쿄에 있는 용곡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공부하면서 불교 공부의 자부심을 느꼈다. 그때부터 공부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떠날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강의를 했었는데 일생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돌아왔다. 선과교가 둘이 아니니, 경전을 보면서 마음 공부를 함께 한다면 꼭 선방에 앉아서 만참선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싶었다. 스님은 기쁜 마음으로 강원에 나갔다. 강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치면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7시에 강원에 나갔다. 한 번도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공부하면서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다. 그렇다면 스님은 문화부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나면 무엇을 하려하시는가 여 쭈었다.
“출가하면서 꿈을 버렸듯이, 계획을 세우지 않아요. 지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하려고 해요.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일본에서 본 어느 액자에‘일일일생一日一生이란’말이 적혀 있었는데 내 생각과 참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말을 늘 되뇌며 살아요.”
일일일생一日一生, 망상을 가질 여유가 없다. 무엇을 탓하고 의심할 시간도 없다.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찰나에 도망상을 피우는 내게 스님은 말씀하신다. 어서, 화두들 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