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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삼층석탑(비로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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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성보 - 정미경 2007년 08월 306호
해인사 삼층석탑 중수 이전, 이후 대적광전의 앞 마당에는 해인사의 깊은 역사만큼 오래된 석탑 1기가 자리 잡고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서 기단부가 하층, 중층, 상층을 이루는 삼중기단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삼중기단의 양식은 해인사 삼층석탑,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 봉화 취서사 삼층석탑, 대구 부인사 삼층석탑, 삼척 흥전리사지 삼층석탑, 부산 범어사 삼층 석탑에만 남아 있어 그 희소적 가치가 높다.
학계에서는 해인사 삼층석탑이 원래 이중기단 석탑이었는데 1926년 중수를 하면서 삼중기단 석탑으로 변형되었다고 받아들여 지고 있다. 하지만 고유섭 선생의 《한국탑파의 연구》에는 해인사 삼층석탑의 기단부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수리 이전의 원형태에 있어서 기단이 3단으로 되어 중단, 하단에 모두 안상이 있는 예이다.”
고유섭 선생의 학설을 토대로 본다면 해인사 삼층석탑은 1926년 중수로 인해 삼중기단 석탑으로 변형 되었다는 학설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해인사 삼층석탑이 원래부터 삼중기단 석탑이었다는 사실은《조선고적도보》에 실려 있는 사진과 1916년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 첫 방문 때 찍었던 해인사 삼층석탑 사진에서도 확인 할 수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중인 유리 원판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중수 이전과 이후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원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중수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층기단 일부에는 기존의 부재에서 나타나는 안상이 조식되어 있고 부재의 재질도 기존의 부재와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해인사 대적광전 마당에 있는 5개의 지반석 부재에서도 안상이 조식되어 있는데 안상의 문양이나 부재의 크기로 보아 탑의 하층 기단부재로 추정된다.
해인사 삼층석탑의 조성 시기는 9세기 전반으로 보고 있는데 황수영 박사는《삼국사기》에 보이는 애장왕 초의 해인사 창건시기와 같은 시기인 802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탑의 양식을 보면 9세기 전기 석탑 양식을 따르면서 하층기단에 안상이 있고 중층기단에는 탱주 2주가 조식되어 있다. 탑의 하층기단, 중층기단, 상층기단 갑석 모서리 부분은 끝이 살짝 올라가 있는 형태인 부연이 표현되어 있다. 탑신부분의 갑석에는 낙수홈이 있으며 상륜부에는 노반, 부발, 보주가있다.
해인사 삼층석탑은 8세기 불교미술이 9세기 전기로 넘어가면서 지방으로 확산되던 시기에 조성된 탑으로 다른 석탑과는 다르게 기단부가 삼중기단의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기단부의 변화는 9세기 전기 석탑에서도 독특한 양식으로 해인사 삼층석탑을 시초로 9세기 후기까지 조성되었는데 그 수는 전국에 5기에 불과하다. 또한 삼중기단 석탑은 화엄사찰을 중심으로 조성된 특이한 양식의 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