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묻는다.
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살아서 돌아올 약속도 할 수 없는 안나푸르나에 오르느냐고. 여자는 대답한다. 어려서 엄마가 죽었다. 하늘로 갔다는 엄마를 조금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해서 늘 산을 올랐다고. 그렇게 산을 오르다가 마침내 산이 자신의 운명이 되어버렸다고 여자는 대답한다. 연인을 두고 처녀의 몸으로 안나푸르나 등반에 나선 여자는 설산에 묻힌다. 산이 자신도 모르게 운명이 되어 버린 한 여자의 짧은 생애를 연극‘안나푸르나’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안나푸르나에 묻히면 눈이 녹을때까지 몸은 싱싱하게 남아 있다. 남은 사람이 설산으로 떠난 연인을 홀로 기다리다 호호백발이 되어 있을 때, 만년설에 파묻힌 연인의 시신이 시냇물을 타고 늙은 그 앞으로 옛 모습 그대로 떠내려 오기도 한다. 정말 옛 모습 그대로 시냇물처럼 돌아온다면? 여름가고, 봄이가고, 세월이 자꾸 흘러서.
내가 꽃다운 얼굴로 시냇물에 떠내려 오는 몸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용광로 같은 슬픔이 타올라 얼었던 몸을 스르르 풀고 연인 앞에서 물안개처럼 가볍게 일어설 수 있을까. 이미 식어버린 숨결을 꽃잎처럼 내쉬고 미처 감지 못했던 눈동자를 다시 반짝이며 이미 늙어버린 연인의 가슴을 환하게 칠 수 있을까. 오백생이 지나갔다 할지라도 그리움은 빛보다 더 빨라서 세월이 한순간도 지나지 않은 것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는 말할 거야. 만년설 속에서 당신을 다시 만나기를 약속처럼 기다렸다고. 당신이 기다렸으므로 내가 돌아올 수 있었다고.
가슴을 울렁거리며 나는 푸른 몸매 그대로 되살아나 연인의 주름살 깊은 흔적들을 손끝으로 되짚어 쓰다듬고, 때로는 그의 가슴을 탁치며 그 가슴에 얼굴을 오래 파묻는다. 그의 머리를 가슴에 안고 흰 머리카락을 빗기면 머리카락에서 그리움의 실체처럼 떨어지는 비듬도 빛나겠지. 잃어버린 시간은 언제나 짧으므로. 설산에서 내가 기다렸던 모든 날짜들이 그 한순간 보다 가볍고, 연인이 기다렸던 생애는 내 푸른 몸보다 더 화려해지겠지. 그 찰나의 빛들이 모든 생애를 채우고도 모자라 다음 생애도 물들일 것이다.
내가 연인을 기다리다 실성하듯 늙어버렸다면? 시냇물에 떠내려 오는, 조금도 늙지 않은 연인의 꽃다운, 그러나 차가운 몸을 바라보는 늙은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가슴으로 연인을 안고 얼어 있는 몸을 녹이기 위해 미친 듯이 살을 비벼 댈까? 차가운 입술에 숨결을 불어넣고 시든 내 입술로 연인의 입술을 녹여 그의 입술에 피가 돌아 오르게 하고 해당화처럼 붉게 만들 수 있을까.
이마에 맺혀 있던 피가 물살에 씻기고 얼었던 미소가 비로소 새처럼 솟아오르는 연인은 눈부시게 빛나서 이미 흰 머리카락으로 뒤덮이고 주름살이 깊게 패인 내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는 그리운 연인은 단번에 내 모습을 알아볼 수 있겠지. 허리가 굽고 손가락은 나뭇가지처럼 떨리지만 연인의 뺨이 붉어오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새벽처럼 반짝이면 이미 굳어 버린 나의 혀도 한 마디 쯤 할 수 있을거야. 살아서 다시 만날 줄 알았다고. 안나푸르나를 오를 때부터 내 그럴 줄 알고 있었다고 원망하듯 외치겠지. 그러나 유리 같은 피부도 메마르고 남루한 얼굴에 눈곱마저 낀 내 모습을 그가 알아보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가 얼룩진 내 얼굴에서 젊은 내 모습의 흔적을 찾으려 애쓴다면 나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세상에변하지않는 것이 없다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무엇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오직 쉬지 않고 기다렸다고. 기다림이 나의 전 생애였음을 말하지 않고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내 연인은 그 불립의 언어들을 바람의 신처럼 얼마든지 알아들을 것이다. 알아듣지 못 한 다해도 좋다. 몸은 늙어도 기다림은 늙지 않으므로. 비록 내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로 전할 수 없는 기다림을 그가 들을 수 없다 해도 그가 돌아오면 나의 기다림도 완성되니까.
안나푸르나는 대답이 없다.
내가 아무리 기다려도, 수없이 계절이 바뀌어도 연인의 얼어버린 몸이 시냇물에 떠내려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시냇물에 떠내려 오는 맑은 몸을 볼 수 있으리라. 옷차림 그대로. 머금은 웃음 그대로. 너무 놀라서 다시 보면 헛것처럼 사라지는 그 얼굴을 쉼 없이 볼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헛것이 연인으로 보이는 그가 나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벌떡 일어섰다가 설산처럼 주저앉을까. 안나푸르나를 바라보며 시냇가를 떠나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짧은 생애동안.
내가 설산에서 어느 날, 마침내 푸른 옛 모습 그대로 떠내려 왔을 때, 기다리던 연인은 오백생보다 더 길었던 생애가 다해 한줌 흙으로 돌아가 버렸다면?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흘러가야 하나. 기다림의 징표처럼 그의 신발과 옷이 재가 되어버린 곳에서 소용돌이처럼 맴돌다가 최후의 불꽃처럼 다시 한 번 몸을 일으켜 그가 이루었던 흙으로 떠나갈 수 있을까.
안나푸르나는 대답이 없다.
안나푸르나에 가고 싶다.
내가 누구고 당신이 누구든 그 모든 길에 안나푸르나는 우뚝 서 있다. 저잣거리의 깊고 무거운 길에도, 그리움의 길에도, 기다림의 길에도. 우리가 안나푸르나로 떠날 때 비로소 언젠가는 안나푸르나처럼 드높은 삶의 정상에 서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얼어 죽는다면 그곳이 안나푸르나의 정상이다.
내게 안나푸르나가 있다. 당신에게도 안나푸르나가 있다. 한번도 가지 않았던 길로 이르는 안나푸르나가 있다. 산이 운명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슬픔이 운명이 되어버린 사람에게도. 나무처럼 하염없는 기다림이 운명인 사람에게도. 모든 삶은 운명이고 운명이 삶을 사랑하는 것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