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세제불三世諸佛이부지유不知有라하니 남전보원선사는 마조도 일선사에게 참학하여 그의 법을 이었습니다.
안휘성지양池陽남전산에 머물면서 선원을 열고서 삿갓을 쓰고 소를 치면서, 그리고 산에 올라 나무를 하고 밭을 일구며 선풍을 떨쳤습니다.
속가의 성이 왕씨인 까닭에 스스로 왕노사라고 칭하면서 30년간 한 번도 남전산을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제자로는 조주종심, 장사경잠, 자호이종 등이 있었고 재가 제자로는 육긍대부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남전선사가 어느 좌주에게“열반경은 무엇으로 극칙을 삼느냐?”고 물으니
“여여如如로 극칙을 삼는다”고 대답합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여여라고 부른다면 그 순간에 벌써 틀려 버린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 하시길“요새 공부하는 사람들은 축생이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행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제자 조주가 승당 앞에서 이 말을 듣고서 한 마디 했습니다.
“틀렸다고 한 것에 대해선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것이 축생입니까?”
그러자 남전선사는 두 팔을 벌려 두 다리와 함께 네발을 만든 다음 땅에 엎드렸습니다.
이에 조주는 스승을 발로 힘껏 밟아 쓰러뜨리고는 얼른 연수당延壽堂으로 도망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원통하구나. 원통하구나.”
이 말을 듣고 있던 남전은 일어나서 시자를 시켜 조주가 무엇이 그리 원통한 것인지를 물어 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조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번 거듭밟아 주지 못한 것이 원통하오.”
축생은 야무지게 밟아 주어야하는데 스승인지라 인정에 끄달려 차마 그렇게까지 할 수 없었던 자신의 공부경지가 너무 원통하다는 것을 대답한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느날 남전이 상당上堂하여 말했습니다.
“내가 젊어서부터 암소 한 마리를 길렀는데 개울 동쪽에 놓아 먹이면 남의 수초水草를 침범하지않을 수 없고, 서쪽에 놓아 먹여도 역시 남의 수초를 침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외진 곳에 묶어 놓았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욕두가 물을 데우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공양끝에 암소를 목욕 시켜주게.”
그러자 나중에 욕두가 남전에게가서 이렇게 묻는 것 이었습니다.
“고삐가 있으신지요?”
그러자 옆에 있던 조주가 재빨리 손으로 남전의 코를 잡고서 끌고 갔습니다.
이에 남전이 말했습니다.
“대답이 옳기는 한 데 행동은 너무 거칠구나.”
그러자 조주가 되 물었습니다.
“옳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러자 남전이 말했습니다.
“산 밑의 단월댁에 한 마리의 암소가 되었느니라.”
이에 조주가 다시 말했습니다.
“화상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남전이 말했습니다.
“지난번 삼경에 달이 창밖에 이르렀느니라.”
스승과 제자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서로 법을 나누는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법담의 매개체는 모두 짐승입니다.
남전선사는 축생을 가지고서 화두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실 축생 화두는 남전이 처음으로 제창한 것입니다.
그 뒤 위산 山도 오道吾운암雲巖이 그 축생화두를 전수해 왔다고 하겠습니다.
남전선사는열반때에도축생법문으로마무리를지었습니다.
임종시에 어떤 수좌가“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으니“산 밑의 집에서 한 마리의 암소로 태어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남전의 축생화두는 뒷날 조산본적에 이르러‘삼종타三種墮의관문’즉삼관三關으로자리를잡았습니다.
이는 수행자가 안주해야 할 세가지경지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타墮’는 자재自在의 뜻입니다.
첫째, 수류타隨類墮입니다.
축생으로 태어나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담담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경지입니다.
둘째, 사문타沙門墮입니다.
깨달아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자재한 경지를 말합니다.
셋째, 존귀타尊貴墮입니다.
존귀한 것 즉 본래 면목까지도 잃어버리는 자유자재한 경지입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수류타 즉 설사축생으로 태어나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담담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경지를 남전선사는 후학들에게 보여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스승의 축생법문영향을 받은 조주선사는 그 유명한“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는 조주무자화두로후학을 제접했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남전선사는 삼세제불도 모르는 것을 이류축생은 안다고 했습니다.
하안거반 살림대중들은 삼세의 부처님이 유有를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숨을 죽이고 소리를 삼키게 놔두십시오.
그리고 이류와 축생이 유有를 안다고 할지라도 억지로 두각을 나타내려는 짓은 부디 하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지유부지유知有不知有여
녹수청산차의구 水靑山且依舊요
조계경리본무진曹溪鏡裏本無塵이라
하필면남간북두何必面南看北斗리오.
유를 안다고 하거나 유를 알지 못 한다 함이여!
푸른 물 높은 산은 옛날과 다름이 없고
조계의 거울에는 본래 티끌이 없다.
어찌 굳이 남쪽을 향하여 북두칠성을 보려하리오.
불기 2551(2007)년 하안거 반살림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