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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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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담善雨情談 - 김선우 2007년 08월 306호
탑 산문을 들어선 길가 널찍한 바위 위에 자그만 돌을 얹어 돌탑을 쌓는 어린 연인들을 보았습니다. 갓 스물쯤 되었을까. 아직 앳된 그 이들이 바위 앞에 머물러 아주 작은 돌 하나를 온 마음으로 올리는 그 순간을 축복했지요. 돌탑 위에 또 하나의 돌을 올리느라 여자애의 얼굴이 잔뜩 긴장한듯하고요. 무릎을 살짝구부려 돌탑과 시선을 맞춘 그 자세가 누군가의 말을 눈높이 맞춰 들어주고 있는 듯해 퍽 고왔습니다. 여자애가 돌탑에 무사히 돌을 올린 순간
휴-, 지켜보던 남자애가 함께 미소하는 것을 보았다고 할까요.
그 마음을 느꼈다고할까요. 납작한 작은돌을 여자애가 남자애의 손에 내미는 걸 보면서 우리는 길을 오릅니다.
뒤쪽에 남은 그애들 모습이 눈에 선해요. 뒤통수를 긁적이며 남자애가 작은 돌을 받아들고, 여자애가 그랬던 것처럼 진지한 얼굴로 돌탑 위에 또 하나의 돌을 조심조심 올리겠지요.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그마 한돌멩이 하나를 온 마음으로 올리던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렴. 나는문득속삭였어요. 어린 연인들도 느꼈을까요? 그애들이 얹은 작은 돌 하나는 오로지 그들만의 것이면서 동시에, 돌탑에 소망을 얹은 수백 수천 길손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 아닌 이들의 손길과 공존을 시작한 나의 손길을 품고 쌔근쌔근 숨쉬기 시작한 돌탑의 호흡에 귀 기울입니다. 사람 살이가 돌탑의 생애로부터 그리 멀지 않음을 불현 듯 압니다.
옛적부터 탑과 얽힌 선남선녀 사연들 많지요. 탑돌이가 맺어준 사랑의 인연도 많구요. 탑이 있는 풍경은 사랑을 시작하기에도 사랑을 완성하기에도 좋습니다. 탑이라는 상징은 사랑을 속俗과성聖의 어느 편으로 과도하게 쏠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균형추 역할을 해주는 듯해요. 성속일여聖俗一如의 마음밭.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속된 마음일지라도 그 마음이 나아가는 곳은 조화로움의 허공이니, 탑 앞에 선 어린 연인들에게 나는 또 속삭입니다.
벗들! 탑이있는풍경속에서, 스스로 풍경의 주체가 되어 사랑의 손을 잡으세요. 염려할 것 없어요, 사랑의 풍경속에 탑이 있기만하다면!
탑이라 하면 나는 돌탑이 좋습니다. 특히나, 오고가는 길손들의 소망이 빚은 돌무더기 탑이 좋습니다. 쌓은 이들의 손끝의 곡진함이 그대로 묻어 있는 돌탑들. 굳이 미학을 들먹인다면, 포즈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아방가르 드라는 말을 이 돌탑들에 헌정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 없는 독창성과 개성들, 공간의 규정성을 훌쩍 뛰어넘는 자유분방함, 규정된 틀을 가지고 시작되지 않으면서 창조의 과정을 통해 무한한 존재태를 갖게 되는 개방성, 아름다운 틈새와 비대칭의 파격이 아슬하게 구현되는 심미적 비율들, 작가와 관람객 간의 딱딱한 거리감이 일거에 무화되고 상호 소통되는 전복성. 길손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민중서사이기도 한 돌탑들은 저마다 어떤 간절함을 품고 있지요. 좋은 예술이 기꺼이 취해야 할 전위의 미덕들을 나는 우리 산천곳곳의 소박한 돌탑들에서 보곤 합니다.
최초의 탑은 붓다가 열반에 든 후 다비하여 얻은 사리를 봉안하여 세운 것이라 하지요. 탑은 붓다가 바로 그곳에 현존함을 말하는 부처님의 상징형인 셈입니다. 그러니 오가는 길손들이 세우는 돌탑은 우리 모두가 저마다 성불의 맑은 밑자리임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누가 그곳에 돌탑을 쌓으라고 시키지 않았건만, 돌탑은 어디서든 발원되어 오늘도 무수한 손길들로 자라고 있지요. 앞서 돌을 올려놓은 마음들을 치워버리거나 무너뜨리지 않고 살며시 자신의 기원 하나를 보태는 여리고 순한 마음들. 돌 위에 돌을 살짝 포개 얹는 그 순간의 떨림이 오늘 저 은하수 자욱한 별빛들의 주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