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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이 없는 긴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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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이야기 그림 이야기 - 김현정 2007년 07월 305호
허도녕 - 어부도 비가 오니 훨씬 낫다.
그간 몇 주를 두고 내리쬐던 햇살은 지붕을 달궈가며 동네 고양이들까지도 바닥에 배를 대고 길게 낮잠을 청할 정도로 넉다운 시켰었다. 날카롭게 들리던 집 근처 지빠귀 소리가 오늘은 낮은 구름 가운데서 훨씬 부드럽게 들리는 것도 어제밤에 내린 비 때문일 것이다.
여름비는 툇마루에 앉아 기와골마다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세는 재미도 즐길 만하다. 그러다가 어느덧 빗줄기가 잦아지면 앞산 자락 골짜기마다 피어오르는 안개 구름의 정취도 그만이다. 장맛비가 지루한 여름철에도 나름대로 내가 즐기는 우수憂愁가 섞인 소리가 있으니 충분히 습기를 머금은 나무 사이에서 들려오는 장끼의 긴 탄식소리다. 비록 계절은 다를지나 두보가 높은 산에 올라“바람 차고 하늘은 높은데 잔나비 울음 슬프고…, 풍급천고원소애風急天高猿嘯哀”라며 읊었던 원숭이 긴 탄식 소리의 공명이 바로 그런것이 아니었을까 하며 그 낮을 지냈다.
중국의 장강 주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강에 의지해 수천년을 살아왔다. 때로는 배를 띄우기도 하였으며 강가 주변에 집을 짓기도 하였다. 많은 문인들에게 강물은 세월이었으며, 변하지 않으나 또 언제나 변하는 존재였다. 과거 없는 미래가 없고, 미래 없는 과거가 어찌 있으랴. 여기에 현재는 그 둘을 잇는 중요한 고리를 마련하여 바야흐로 강물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한 곳에서만나는 지점이다.
소식蘇軾은 송대의 가장 호방한 문인이었지만 이백에 비하면 일견 내향적이면서도 섬세하였다. 그의 글은 대부분 거리낌없는 호기로움의 한쪽에는 일말의 애수를 띠고 있는 것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적벽부赤壁賦>가 여기에 속한다. 그에게 인생은 한편으로는 덧없고, 또 한편으로는 담담한 그런 것이었다. 그에게 강물은 인생이기도 하였으나, 동시에 무궁한 장강의 흐름이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마 그래서 <장질부에게(與章質夫)>라는 시에서는 그의 생을 강물에띄우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밤 깊고 바람 멈춰 물결 비단같이 펼쳐지면 야란풍정곡문평夜蘭風靜穀紋平
조각배 타고 떠나 소주종차서小舟從此逝
여생을 강물 위에 띄우고자. 강해기여생江海寄餘生

강물은 흘러가며 세상을 적시고 풍요롭게도 하지만 그 흐름에 많은 영웅 호걸들도 함께 흘러갔다. 별빛을 잃게 하던 당당한 만월은 또 어디로 갔는가. 오늘은 서쪽 하늘에 걸린 딱 반쪽의 상현달만 멀리 별빛과 어울린다.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그려질 북송 무렵의 화풍은 대담하다기보다는 치밀한 것이었고 그래서 일견 복잡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법에는 허도녕(許道寧; 약 970~1052)이라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화 가가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어부도漁夫圖>는 다분히 자유 분방한 성품을 드러내며 즉흥적 영감에 의지 한듯 한 붓질을 보여 주고 있다.
아니 나다를까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술 마시기를 즐겨하였으며 마음이 가는 대로 붓을 움직였다고 전한다.
그림은 전반적으로 나무 몇 그루 없는 큰 산의 실루엣이 지배하고 있다. 산은 황폐하고 이미 물은 차가운 것같다. 몽환적이면서도 리듬감 있는 산자락을 따라 시선을 오르내리다 보면 그 한 자락에 강물이 흐르고 있다. 그 강물의 한 부분에 풀을 엮어 몸에 걸친 어부가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당나귀소리 소란하고, 주변이 부산스러울지라도 일엽편주에 의지하고 낚시에 빠져 있는 그의 삼매경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는 것 처럼 보인다. 이 어부에게도 강물은 선망의 대상이었을까. 이미 어부는 그 자체도 떠나 있지 싶다.
북송대 임제종에서 분파된 황룡파黃龍派의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 스님은 세개의 관문으로 유명하다.
스님은 방 안에서 찾아온 스님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그 출가한 이유와 고향과 내력을 묻고, 다시“사람마다 모두 연기緣起를 일으킨 곳이 있는데 어느 것이 그대가 연기를 일으킨 곳인
가?”라고 덮어 물었다. 또 문답을 하며 쟁론을 하다가는 손을 뻗어 내밀며 “내 손이 어찌 부처 손과 닮았는가?”
하고 물었으며 다시 여러 종사들을 찾아뵈어 얻은 바를 묻고는 다리를 펴 늘어뜨리며 물었다.“ 내 다리가 어찌 당나귀 다리와 닮았는가?”
이 세 가지 물음이 바로 황룡삼관黃龍三關이다. 관문은 세 가지이지만 드나드는 문은 수십이요, 수백이라 순간 순간이 다르다. 이처럼 선객들의 화두가 자유분방해지기 시작한 것도 역시 송宋에 들어서이다. 학문적으로 추구해 오던 철학과 이상은 이미 실천을 강조하게 되었으므로 정해진 답변은 무의미해졌던 것이다. 그의 손은 부처를 닮을 수도 원숭이를 닮을 수도 있는 것이며, 그의 다리는 하늘에 뜬 달과 하나라고 한들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다만 그 경지를 아는 것은 묻는 이와 답하는 이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것인데, 관전을 하는 것도 잠시, 어느새 나도 내 손과다리를 어루만지며 허공속에서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