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니 훨씬 낫다.밤 깊고 바람 멈춰 물결 비단같이 펼쳐지면 야란풍정곡문평夜蘭風靜穀紋平
조각배 타고 떠나 소주종차서小舟從此逝
여생을 강물 위에 띄우고자. 강해기여생江海寄餘生
강물은 흘러가며 세상을 적시고 풍요롭게도 하지만 그 흐름에 많은 영웅 호걸들도 함께 흘러갔다. 별빛을 잃게 하던 당당한 만월은 또 어디로 갔는가. 오늘은 서쪽 하늘에 걸린 딱 반쪽의 상현달만 멀리 별빛과 어울린다.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그려질 북송 무렵의 화풍은 대담하다기보다는 치밀한 것이었고 그래서 일견 복잡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법에는 허도녕(許道寧; 약 970~1052)이라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화 가가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어부도漁夫圖>는 다분히 자유 분방한 성품을 드러내며 즉흥적 영감에 의지 한듯 한 붓질을 보여 주고 있다.
아니 나다를까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술 마시기를 즐겨하였으며 마음이 가는 대로 붓을 움직였다고 전한다.
그림은 전반적으로 나무 몇 그루 없는 큰 산의 실루엣이 지배하고 있다. 산은 황폐하고 이미 물은 차가운 것같다. 몽환적이면서도 리듬감 있는 산자락을 따라 시선을 오르내리다 보면 그 한 자락에 강물이 흐르고 있다. 그 강물의 한 부분에 풀을 엮어 몸에 걸친 어부가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당나귀소리 소란하고, 주변이 부산스러울지라도 일엽편주에 의지하고 낚시에 빠져 있는 그의 삼매경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는 것 처럼 보인다. 이 어부에게도 강물은 선망의 대상이었을까. 이미 어부는 그 자체도 떠나 있지 싶다.
북송대 임제종에서 분파된 황룡파黃龍派의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 스님은 세개의 관문으로 유명하다.
스님은 방 안에서 찾아온 스님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그 출가한 이유와 고향과 내력을 묻고, 다시“사람마다 모두 연기緣起를 일으킨 곳이 있는데 어느 것이 그대가 연기를 일으킨 곳인
가?”라고 덮어 물었다. 또 문답을 하며 쟁론을 하다가는 손을 뻗어 내밀며 “내 손이 어찌 부처 손과 닮았는가?”
하고 물었으며 다시 여러 종사들을 찾아뵈어 얻은 바를 묻고는 다리를 펴 늘어뜨리며 물었다.“ 내 다리가 어찌 당나귀 다리와 닮았는가?”
이 세 가지 물음이 바로 황룡삼관黃龍三關이다. 관문은 세 가지이지만 드나드는 문은 수십이요, 수백이라 순간 순간이 다르다. 이처럼 선객들의 화두가 자유분방해지기 시작한 것도 역시 송宋에 들어서이다. 학문적으로 추구해 오던 철학과 이상은 이미 실천을 강조하게 되었으므로 정해진 답변은 무의미해졌던 것이다. 그의 손은 부처를 닮을 수도 원숭이를 닮을 수도 있는 것이며, 그의 다리는 하늘에 뜬 달과 하나라고 한들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다만 그 경지를 아는 것은 묻는 이와 답하는 이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것인데, 관전을 하는 것도 잠시, 어느새 나도 내 손과다리를 어루만지며 허공속에서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