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생활이 각박하다 하지만, 시골 생활도 그와 다를바 없는 것처럼, 어디든 치열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엘에이의 삶도 치열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이방인들과 새롭게 뿌리를 내리려는 벽안의 이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이 또한 어딘들 그렇지 않겠는가?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생존이다. 개인과 가족의 안위安危에 관련된 것들이 이방인들에겐 가장 큰 관심사이다. 그럼 이를 해결한 후의 삶은 어떠한가? 자본주의 왕국 미국의 풍요를 떠안게 되는가? 달콤한 열매의 수혜자로 살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그저 숨 한번 돌릴 시간이 된 것뿐이다. 이곳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 이들은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상태
가 된 것이다. 또다른 치열함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방학때 마다 한국에서 밀려드는 친지들과 식솔들은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알 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더 윤택한 삶을 자녀들에게 안겨주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넘쳐나는 물질의 풍요를 통제할 수 있는 마음이 자라지 않는다면, 이 모든 노력은 오히려 독이 되어 스스로를 해하고 공동체에 이롭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의 경계가 극명한것처럼,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 또한 많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풍요로움 속에 빈곤이 만연한 곳 또한 엘에이다.
우리는 더 많은 풍요를 원한다. 아니다. 그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풍요를 원하고 있다.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풍요를 원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혼자만이라도 풍요를 쟁취하려 하는 것이다. 새로운 물건들이 끝없이 쏟아지는 것처럼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선 서울과 엘에이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없다. 풍광과 땅을 딛고 선 사람의 겉모습이 다를
뿐이다. 욕망을 채우려 들끓는 모습은 똑같다. 스타를 꿈꾸며 헐리웃으로 몰려드는 사람이나, 물질의 풍요를 맛보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오는 이들이나 차이는 없다.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이곳 엘에이는 커다란 헐리웃이다.
고향 떠난 여러 나라의 이민자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기에 성공의 미끼를 던지는 이들과 흥행사 노릇을 하는 이들도 있다. 스타를 만들어 주겠노라 하고, 성공에 투자를 하라고 한다. 마음이 공허하고 조급하면 미끼를 물고 마는 것이다.
스크린 속에 들어선 스타가 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인생 목표가 된다면 너무 허망한 일이다. 남들에게 박수 받으려고 사는 것이 삶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수 소리의 크기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은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삶이 아니다. 스크린 속, 허상의 움직임으로 반복되는 것 또한 심드렁한 일이다. 치열하게 사는 것이 식솔들의 풍요로움만 추구하는 것이라면, 열심히 먹이를 물어 나르는 개미와 무엇이 다른가? 허상의 천에 비춰진 스타를 향해 질주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제해야 한다. 우리는 자본 제일주의에서 버려진 사람들 또한 아이들에게 숨김없이 보여주어야 한다. 스크린을 넘어서는, 허상을 넘어서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자. 개인의 욕망을 이루려는 치열함은 거짓 치열함이다. 스승이 전한 진리의 시를 떠올린다.
“ 우리가 최상의 진리라고 여기는 것은 절반의 진리에 불과하다. 어떤 진리에도 머물지 말라. 그것을 다만 한 여름 밤을 지낼 천막으로 여기고 그곳에 집을 짓지 말라. 왜냐하면 그 집이 당신의 무덤이 될 테니까. 그 진리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할 때 그 진리에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히 여기라. 그것은 침구를 거두어 떠나라는 신의 속삭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