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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비정함이여, 허기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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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택근 2007년 07월 305호
“까치가 곡식을 먹게 된 까닭이 있다. 농약을 마구 뿌려서 벌레들이 다 죽어 없어졌
으니, 이제 까치가 먹을 거라고는 논밭의 곡식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이 무슨 학문이
고 철학이고 예술이고 문학이고 떠벌리면서 거짓과 속임수로 살지 말고, 저 풀에서
우는 벌레만큼 고운 울림으로 자연 속에 어울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스스
로무덤을파고죽음을재촉하는사람이무섭고소름끼친다.”


딸 아이가 거리에서 작은 토끼 한 마리를 사 왔습니다. 예뻐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고 했습니다. 정말이지 토끼는 앙증맞았습니다. 식구들은 이 한 마리 토끼 때문에 법석을 떨
어야 했습니다. 토끼장을 주문하고, 토끼밥을 사오고, 토끼가 빨아먹기 좋은 물통도 구했습
니다.
그걸 지켜보며 한편으로는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저러다 갑자기 죽기라도 하면 어쩌
나…. 아이가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왔는데 며칠 가지 못하고 그만 죽어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는 섧게 울었습니다. 아이를 달래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
다. 그런 생명붙이를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니…, 욕이라도 퍼붓고 싶
었습니다.
그때 우리식구는 그런 동물들 때문에 가슴 아픈 일이 다시는 없게 하자고 다짐 했지만 아이가
가 덜컥 토끼를 사온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식구 모두 토끼장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토끼에게
이름도 붙여줬습니다. 거리에서 사 왔지만 다행히 토끼는 별 탈 없이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끼밥이 떨어져 집 근처 야산에서 진짜 토끼풀을 뜯어다 줬습니다. 토끼
는 처음에는 냄새만 맡더니 조심스레 먹기 시작했습니다. 집 안에도 오랜만에 풀냄새가 가득
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그걸 자랑삼아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은 토끼 생일이다, 생겨나서 처음 진짜 토끼풀을 먹었으니…….”
그러자 딸아이는 제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화들짝 놀라며 토끼에게 달려갔습니다. 토끼장의 풀을 황급히 빼내며 씩씩거렸습니다. 토끼를 죽이려고 작정했냐고 따졌습니다. 밖에서 뜯어온 풀을 어떻게 믿느냐고, 만약 토끼풀이 농약에 오염이라도 되었으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거의 울듯이공박을 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 아이야, 그랬구나. 이제 이 땅에 났다고 다 먹는 풀은 아니었구나.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
구나. 모든것이 겉만 보고는 믿을 수 가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구나.’
문득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선생의 글은‘` 산하가 오염되면 곧바로 인
간의심성이황폐화된다는것을왜모르느냐’며 우리들의 어리섞음을 통렬하게 꾸짖었습니다.

“까치가 곡식을 먹게 된 까닭이 있다. 농약을 마구 뿌려서 벌레들이 다 죽어 없어졌으니, 이
제 까치가 먹을 거라고는 논밭의 곡식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이 무슨 학문이고 철학이고 예
술이고 문학이고 떠 벌리면서 거짓과 속임수로 살지 말고, 저 풀에서 우는 벌레만큼 고운 울
림으로 자연 속에 어울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스스로 무덤을 파고 죽음을 재촉하는
사람이 무섭고 소름 끼친다.”

토끼는 그런대로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클수록 귀여운 자태를 잃어갔습니다. 앙증맞은 데는 찾아 볼 수 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많이 먹고 똥도 많이 누었습니다. 역한 냄새가 났고, 거실에는 토끼털이 어지럽게 날아 다녔습니다. 저 토끼를 어쩌나…….
토끼는 아파트 좁은 공간에서 키우기에는 너무나 커버렸습니다. 토끼를 어디론가 보내야 했습니다. 토끼가 어렸을 때, 예쁠 때는 그렇게 안아보려고 서로 다툼을 벌였지만 이렇듯 볼품이 없어지자 식구들은 토끼와 눈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토끼는 어느새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야산에 풀어주면 어떨까? 안 되지, 그러면 한 시간도 안 돼 들고양이 밥이 될 것이 분명해.
시골 집에 내려보내면 어떨까? 안 되지, 사료만 먹은 놈인데 풀을 주면 금방 탈이 날거야. 그
리고 저놈은 이미 야성을 잃어버렸을 거야. 아예 토끼고기 전문식당에 줘 버릴까? 그 짓만은
못하지. 우리가 어떻게 키웠는데. 그럼 어째야한다, 저 놈의 토끼를…….
그러던 참에 아내가 유치원에 보내자고 했습니다. 어느 유치원이든 토끼나 닭이나 오리 등을 키운다고 했습니다. 정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맞다, 맞아. 왜 그 생각을 진작 못했을까.
우리는 안 된다고 펄쩍 뛰는 아이를 구슬러 마침내 토끼를 아이가 다녔던 유치원에 기증(?)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은 기억 되나봅니다. 토끼가 사라진날 이상한 생각들이 밀려왔습니다.
그 애물단지 같던 토끼가 사라졌는데도 하나 반갑지 않았습니다. 식구들도 하나같이 말을 하
지 않았습니다. 저도 괜히 일어나 거실을 서성거렸습니다. 밥 달라고 토끼장을 박박 긁던 소
리가 그렇게 귀찮게 들렸는데…….
태어나 싱그러운 풀 한번 뜯지 못하고, 그렇다고 누군가의 먹이도 되지 못하면……, 그러면
토끼는 어디로 떠나갈까요? 어디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을까요? 유치원 토끼장에서 죽을지
아님 또 야산에 버려질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도시에서 토끼가 제몸을 뉠 곳은 진정 마땅치 않
아보입니다.
이렇듯 사라지는것이 어디 토끼 뿐이겠습니까. 한때 지극히 사랑을 받던 개도, 고양이도 또 다른 애완동물들도 이렇게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예쁨을 받다가 어느 날 버려지는 동물들, 지금 우리 산하에는 인간에게 버림 받은 동물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더러는 다른 짐승의 먹이가 되고, 살아남은 것들은 어딘가에 숨어서 인간의 품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 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마찬가집니다. 사랑하는 것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떠나 보내고 떠나 와야 합니다. 토끼가 사라진 자리에는 외로움이 흥건했습니다. 우리들, 도시인도 무엇인가를 늘 잃어버립니다. 정 붙을 만하면 떠나갑니다. 그래서 도시인의 뒷모습은 허허롭습니다. 외로움이흘러내립니다. 그래, 우리는 이렇게 모여 살지만 외롭습니다.
이제는 세상에 없을, 그 토끼는 어디로 갔을까요? 우리는 또 어디로 가고 있나요? 오늘도이 도시에서는 많은 것들이 버려질 것이니, 도시의 비정함이여, 세월의 덧없음이여. 그리고 화려한 날들 속의 허기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