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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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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담善雨情談 - 김선우 2007년 07월 305호
연꽃 下 우울한 날 있지요. 불현듯 찾아드는 우울을 저는 비교적 잘 놀아주는 편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날씨처럼 매일 매시각 변화무궁하지요. 평상심을 유지하려 굳이 애쓰지
않습니다. 화날 때 화를 내고 누가 싫으면 싫다, 미우면 밉다 말합니다.
밉다고 말한 후엔 그 말이 마음의 짐이 되는 과정이 보여 용서와 연민이 생깁니다.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은 나를 먼저 해치니 미움을 내려놓게 되더군요.
나는 지상의 남루를 빌린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약자로서의 나를 존중합니다.
애써 초연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 몸과 마음에 찾아오는 것들에 솔직해지려고 합니다.
화내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우울해 합니다.
이 모든 감정들은 찾아온 것처럼 자연스레 지나가지요.
밀물이오면썰물이오는것처럼, 서두를필요가없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선 우울이 시를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늘 속에서 햇빛이 지나가는 길들이 더 잘보이듯, 얼마간의 우울속에서 마음의 희로애락이
지나가는 길들이 더 명징해 보입니다.
적절한 우울을 통해 감성이 예민하고 투명해진다고 할까요. 투명해진 감성은 시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하게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너무 과하지만 않다면 적당한 우울은 자기 얼굴을 대면하는 퍽 괜찮은 거울인 셈이지요.
그런데 때로 우울을 다스려야 할 때가 있어요. 바깥 출입을 비교적 단출하게 하며 사는 편인데도 직간접으로 연결된 관계들이 있지요.
우울한 날 아주 편하지만은 않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스스로 자족하는 우울일지라도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때가 있어요. 미리 기분전환을 해두는 게 필요하지요.
그럴 때‘꽃의 법문’을 떠올려요.
꽃의 법문’이라는 말을 마음에 떠올리는 순간부터 마음이 환해지기 시작하는데요.
때론《법화경》에 관한 여러 권의 주해 중 아무 책이나 펼쳐놓고 내키는 대로 읽기도 하지요.
고백하자면 나는 경전으로서의 엄격함보다는 문학작품 읽듯 법화경을 읽습니다.
좋아하는 시나 소설 읽듯 말예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법화경을 제대로 만나기만 한다면
<해리포터> 시리즈 저리 가라 할 만큼 매혹적인 판타지를 만끽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름답고 장대한, 미려하고 우수 어린 우주가 법화경 안에 가득하지요.
꽃의 법문이 머금은 우수는 투명하고 환희롭습니다. 자재자유한 우수를 머금은 우주적 판타지가 내 몸과 마음에 꽃비를 뿌리지요.
법화경 곳곳에 넘치는 신비한 꽃의 비유와 꽃비의 상상은 마음을 빠르게 위무합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 올라요. 마음을 알게 되면 부처를 알게 된다는 말씀들을 하지요.
마음이 부처라는 말일 텐데요. 그러나 마음은 쉬이 보이지 않으니, 이럴 때 꽃을 봅니다.
특히나 연꽃을 보는 일은 마음을 마음 밖에서 보는 일을 닮았습니다.
그것은 심장이며 자궁이고 몸속이며 몸 밖이지요. 아, 그리고 마음 심자를 소리 내 읊으시던 어머니, 당신이 떠올라요. 일제시대 소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당신이 홀로 깨친 몇 개의 한자 중
심心자가 있지요. 언젠가 일체유심一切唯心과 즉심시불卽心是佛을 읽어내던 당신이 떠오릅니다. 이것은 한 일, 이건 마음 심! 이것도 마음 심!
이게 부처님 불인가아? 모르는 글자야 내 알바 아니라는 듯 무심히 건너뛰고 불佛자도 긴가민가하면서 마음 심心 자 만큼은 물방울 튕기듯 또박또박 발음하던 엄마.
가만 들여다보면 심心자는 연꽃 대궁들 피워 안은 연지 같기도 하고, 꽃비 나리는 연좌대 아래 같기도 하니, \'모든 것이 마음’이고‘마음이 바로 부처’인 세계의 안팎이 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