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고독속으로들어가는첫관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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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현종
2007년 06월 304호
다섯 살 때부터 고향 가까운 곳에 있던 나주 다보사엘다녔다. 어머니, 아버지의 양손을 잡고 걸어서 집에서 이십여 리 떨어진 그곳엘 가곤 했다.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별천지와 같았던 그곳에서 형과 함께 삼대를 꺾어 만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광주에 있던 고등학교를 가기 전까지 다보사엘 다녔으니, 그곳은 내 유년과 청소년시절의추억이묻힌곳이다.
다보사엔 천진도인으로 유명한 우화 노스님이 계셨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지니셨던 노스님은 언제나 새벽 두시면 일어나셨다. 혼자서 죽비 치고 입선하셨다가 세시에 시작되는 도량석이 끝나면 예불에 참석하셔서 축원을하시곤 했다. 정갈한 바루를 펴시고 공양을 드시던 모습,마당을 비질하시던 모습, 죽비를 치곤 입선에 드셨다가때론졸고계시던모습이눈에선하다.
노스님은 굉장한 천진도인이셨다. 절 마당에서 신도들을 만나면 먼저 절을 하시곤 했다. 처음 온 사람이건 수십 년이 된 신도이건 대하는 모습이 똑같았던 분이었다.
수곽 앞에서 만나 인사하고 헤어졌다가 금방 요사채 귀퉁이에서 다시 만나도 처음 만난 듯 허리를 굽히시며‘안녕하셨습니까?’하고합장하셨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에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불교역사와 교리를 말씀하셨고 격의 없이 신도들과 마루에앉아 자유롭게 담론하셨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세간의 생활이 어렵던 시절, 신심이 깊지 않고 드세었던 사람들이땔나무를 해가기 위해서 절 주변의 나무를 베어가려고하자가만히보고있던스님이그들앞에나섰다.
“자, 내목을베고나서나무를베어가시오.”
지금 다보사의 오십여 년 된 울창한 소나무 숲엔 그런사연이담겨있다.
누구나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면서‘이것이부처님 도량이구나’하는 것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도량이었으니, 돌아보니그것은스님의법력때문이었다.
삶의 모습에서 탐진치가 완전히 없어져 버린 듯한, 한마디로표현하면, 물흘러가는듯한삶을사신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가’, 세월이 갈수록공경심이 더 들고 내 출가의 삶에 이상적 모델로 남아 있는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다보사에 가서 공부할 생각을 하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한 해 더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보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생각이었다.
한 달 동안 동네에 있는 버섯공장에서 막노동을 해서 수험공부에 필요한 책을 몇 권 사서 절에 들어가려고 하는데어머니가‘안된다’고하셨다.
어머닌 절에 가길 좋아하시고 항상 염불을 하셨던 신심 깊은 분이었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던 어머니였으나 종종 보시하는 것을 잊지않은 분이었다. 절에 계신 스님들께‘저를 위해 이것 좀축원해주세요’하는 법 없이 당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무엇이 생기면 절에 놓고 오곤 했기 때문에 절에선‘놓고만오는보살’로불렸던분이다.
해서 절에 가서 시험 공부하려는 것을 당연히 허락하실 줄 알았다. 이삼일 동안 묵묵부답인 어머니께 다시 허락을구했더니어머니께서드디어속내를드러내셨다.
“절에가면너는중이될것이다.”
절대고독속으로들어가는첫관문에서 염불수행을 해서 예감이 좋았던 어머닌 내가 출가자가
되리란 것을 짐작하셨던 것 같다. 공부를 해서 집안을 좀일으켜 주었으면 하고 기대했던 아들이었기에 절에 들어가는 것을 만류하셨던 것이다. 당시 출가할 생각을 전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에게 다시 허락을 구했고그런나에게어머닌차선책을내놓으셨다.
“그러면두달만있어보아라….”
어머니의 예감은 정확했다. 다보사에 들어간 지 두 달이 지나자 시험공부를 하는 틈틈이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중국 조사들의 어록과 행장이 담긴 숭산 스님의‘오도의길’과 동국대 역경원에서 편찬한‘불교성전’이란 책이었다. 그리고 그즈음 절에 드나드는 수좌스님들의 모습이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차츰 출가의 길을가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같은생각이뭉클대기시작한것이다.
그렇게 고무줄에 당겨가듯 출가에의 길로 끌려들어가던 5월, 절에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출가를 결심했다.1970년대 중반, 들녘에 한창 모내기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삼배를 올리고 해인사로 떠나는 나에게 우화 노스님께서화두를주셨다.
“너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누구인가, 생각하면 천 리만 리도 금방 다녀오고 과거세, 미래세도 다닐 수 있으며, 늘 말도 하고 듣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신통묘용하지만 잘 속기도 하고 알아채지도 못하는 주인공이누구인가. 그걸궁구해보거라.”내가 출가를 한 다음 해 노스님이 열반하셨다. 햇중 때여서 몸이 자유롭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비식에 참석해서 육면체로 만든 관이 불꽃을 내며 타들어가는 것을바라보았다. 좌탈입망하셨다고했다.어떤 계기로 출가했든 일주문 안에 들어오면‘어떻게살면 한 생의 삶을 잘 살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깊이 궁구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내가 출가할 땐 선배들이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들려주었고 믿음을 주
었다. 오늘날 수행의 농도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하는 인생관과‘삶을 사는 데 가장 문제되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사유를 거쳐야 한다. 물음을 갖게 되면 길이 있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그것을 물었을 때 자연스럽
게답을볼수있게될것이다.
이 문제를 푸는 데 믿음이 생겼으면 어떤 과정과 어떤방법을 통해서 갈 것인가. 그것은 계정혜 수행으로 가는것이다. 수행은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인데, 마음이 고요해지려면 자기 주변의 정리가 되어져야 하고 생활 질서가 잡혀야 한다. 자기 몸을 비롯해서 생활 자체에 질서가
잡히면서 마음의 고요함이 생기고 고요해짐과 동시에 저절로통찰이된다. 고요함속에사물이비치듯이말이다.
출가라는 것은 몸과 마음의 격리이기 때문에 격리에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초발심자경문》에서‘마음 가운데애愛를 떠나는 것이 출가’라고 했듯이, 세속에서 격리되어 연연하지 않는 것이 출가다. 세속에 연연하지 않으면 단순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이 단순해지면 행복하고내면을 바라보는 것도 쉬워지고 객관화되고 세상을 바라보는눈도객관화된다.
출가자의 생명은 수행에 있고 수행은 원력에 비례한다. 이것 하나면 이 세상 누가 뭐래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그런테가하나생겨날수있도록용을써야한다.
송광사 조실이셨던 구산 스님께서 프랑스에 가셨을때, 프랑스인한사람이물었다고한다.
“핵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두 숨을 곳이있겠습니까?”
“없네.”“그럼스님께선어떻게하실겁니까?”“숨을안전한곳이있지….”“어디입니까?”
“내화두속이네.”세간과 출세간을 떠나서 간단없이 수행하는 일이란
이런 안전한 곳, 깊은 의지처 하나 찾는 길이라 생각해본다.
출가는 인간의 본래 맑고 밝고 따뜻한 조건 없는 마음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나그네의 길이다.이런 믿음이 확실해지면 고요함, 즉 계정혜 수행 속으로 돌진해야 한다. 절대고독 속에서 죽도록 미친듯이말이다. 사중득활死中得活, 죽는다 해도 불보살님들의원력 속에 완전히 맡기면 된다. 수행하다 죽으면 행복한 것 아닌가. 행자시절은 그 절대고독 속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