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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소리 - 비천이 연주하는 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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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음악산책 - 이미향 2007년 06월 304호
6월의 상큼한 새벽바람 사이로 법고와 범종과 목어, 운판이 어우러진 법석이 한바탕 벌어지면 대웅전 법당으로 모여드는 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법당 뒤 감나무에는 벌써부터 예불 채비를 끝낸 참새가 서까래 밑벌레를 재촉한 것이 한참의 일이다. 지옥과 천상, 깨달음으로 가는 자와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 너와 나의 차별을 여읜 뭇 중생들이 부처님께 예를 올리기 위해 모
여든다. 작고 여린 소리로 운을 뗀 금고가 점점 크고 빠르게 올리기를 세 차례. 땅- 땅- 땅 마침표를 찍듯 금고의 세 망치가 쏜살같이 법당 천장 위로 줄달음질치면 꽃비 내리듯 천장의 비천이 천상음악을 연주하고 법당 안은어느새환희로가득찬다.
비천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인을 가리킨다. 천인은 천중이라고도 일컫는데 부처님을 찬탄하고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고 향긋한 꽃을 뿌리며 항상 즐거움으로 가득한 천상계에 살며 늘 허공을 날아다닌다. 인도신화에 나오는 천신 건달바에서 그 모습이 유래하는데 건달바는제석천에 살며 술과 고기를 멀리하고 향긋한 향만을 구하여 몸을 보호하며, 몸의 향기로써 온 누리를 맑고 깨
끗하게 정화하므로 향음신이라고도 불린다. 비천의 길고도 하이얀 천의 끝자락에 매달리면 금방이라도 부처님나라 정토세계에 닿을 것만 같다. 비천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인도를 출발한 불교가동쪽으로 동진하면서 도착했을 돈황석굴에서도 악기를천상의 소리 - 비천이 연주하는 비파연주하는 비천을 무수하게 만날 수 있다. 비천이 연주하는 음악은 바로 깊은 법열의 세계, 육신의 삶을 떠난 생사해탈의깊은소리이다.
비천은 우리나라 사찰 어디에서나 쉽게 만난다. 범종,대웅전 앞의 석등이나 스님들의 부도, 불단, 법당의 천장 등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신라시대 최고의 종인 상원사 범종의 종신에 나타난 주악비천을 기억하는 이는 많을 것이다. 구름 위에서 깃털 같은 길고도 가는 천의를 하늘을 향해 흩날리며 양다리를 가지런히 모아 무릎을 세우고 연주하는 자태는 마치 천상의 선녀다. 마음을 포개듯 공후와 비파를 잡은 손가락 끝에선 특유의 빠른 손놀림으로 감고 안아 푸는 강한 현의 소리가 귀가 아닌눈으로들어온다.
그러나 종신의 비천만 보고 지나치면 안 된다. 상원사범종의 상대와 하대 곳곳에는 가히 주악비천의 보고라할 만큼 많은 수의 비천이 피리, 쟁, 요고, 횡적 등의 다양한 악기 연주로 생사를 초월한 열반의 세계, 불국토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천이 들고 있는 악기들은 서역의 고대 악기로 저마다 악기를 하나씩 들고 독주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열의 음악을 합주하는 것이다. 정토경전에 전하는 극락세계의 법열의 음악이라는것을알게되면비천을다시보게될것이다.
비천이 지닌 악기 가운데 비파만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없다. 비파는 참 좋은 인연처럼 늘 불교 가까이 있었다. 그런데 혹자는 비파를 저 먼 이국의 생소한 악기 정도로 여기는 이가 많을 것이다. 나 또한 비파가 이 땅의 음악사에서 우리 민족과 친근한 악기였다는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비파가 신라의 삼현삼죽(가야금, 거문고, 비파, 대금, 중금, 소금)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습관처럼 외우고 있었어도 그삼현삼죽의 하나인 비파가 불교와 그리도 인연이 중한것을 깨달은것은최근의일인것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차득공 이야기는 비파가 승려나거사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소지하고 다니며 연주하는악기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차득공은 신라 문무왕의 아우로 형이 나랏일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자, 먼저 민심을살펴본 후에야 올바른 관리의 길을 걸을 수 있겠다며 승복을 입고 비파를 든 거사의 모습으로 변장을 한 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정을 살폈다고 한다. 그만큼 비파를
든 승려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활발하게 연주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불교와 관련된 비파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도‘맹승 비파’의 전통이 있었고 중국에서도‘걸립승의 비파연주’와 같은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국과 중국, 일본에 전래된 비파는 현재 한국만 단절되어 전승되지 않고 중국과 일본에서는지금까지도활발하게향유되고있다.
비파는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궁중악사들이 반드시 배워서 익혀야만 하는 필수악기였을 만큼 보편적이고 중요한 악기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 이후, 연주편성에서 사라져 현재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역사 속의악기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어느 학자는 연주법이 비슷한 거문고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고 하지만 세세한것은아직알지못한다.
불교도상에 보이는 수많은 종류의 악기는 늘 나의 흥미를 자극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비파를 좋아했다. 사천왕 가운데 다문천왕이 든 것도 비파고 현존하는 신라의 범종에서도 쉽게 비파를 찾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감로탱화, 신중탱화 등 각종 불화에서 생동감 있게살아움직이는듯한비파의모습은정겹기까지한다.
그러나 일본 나라시 쇼쇼잉에 소장된 비파만큼 아름다운 것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보는 순간 황홀해지는것이 악기라기보다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천상계의비천이 들려주는 하늘음악이 바로 이런 비파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듣지 않아도 이미 극락정토에 닿을 것이다.
나는 벌써 환희의 소리세계 문턱을 단숨에 넘어서서 오랜 친구 같은 비천들과 허공을 자유자재로 날고 있었다.집으로 돌아가는 교토행 열차 안은 온통 비천이 들려주는 비파음악으로 충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