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은 앙상하여 냇물만 하릴없이 흐르고 있다. 쓸쓸하기는 하지만 호젓
산 빛은 이미 녹음綠陰이라 할 만큼 어두워져 산등선을 넘고 있고, 하루 이틀 잦아지는 빗줄기는 이미 여름을 알리고 있지만, 아직도 싱그러운아침 공기와 산란한빛 사이로흐르는 바람결, 연한 색을 채 버리지 못한 나뭇잎이 뜰 안에 있어 아직 나는 봄의 환상에서 깨어난 것이 아닌가 보다. 오늘 오후 햇살 아래 봄의 풋풋함을 잊지 못하여 지나간 날, 미련에 미련을 더하고 있는 것은 청춘靑春의 맛을 잊지 못해서인가, 아니면젊은 날의 그 감정을 그리워해서인가. 세월은 그렇게 가고 있으나, 언제나 나는 한 점에 서 있는 것 같다. 그한 점에서 바라본 오늘의 내 시선은 자연의 근본과 시간의 궤적, 사람의 흔적은 그렇게 한 원을 그리며 맴돌고있다.
여항(餘杭: 지금의 절강성) 공신산功臣山에 머물던 유정 선사(惟政政黃牛: 986~1049)는 여유와 운치를 지니며 즐기던 분이었다. 공신산에 머물 때는 주로 누런 송아지를 타고 다니며 물병을 그 뿔에 걸었는데, 저잣거리사람들이다투어쳐다보아도아랑곳하지않았고, 그리하여정황우라고불리었던것같다.
스님의 운치는 계절에 호응하였다. 겨울에는 화롯불을 쬐지 않고 갈대꽃으로 공을 만들어 발을 그 속에 넣고 있다가 객이 오면 그 속에 함께 발을 넣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네 같지 않은 따뜻한 곳의 겨울이라고 해도그렇고, 갈대가 많이 나는 항주의 풍광도 그렇다. 목화솜이나 명주솜보다야 못하겠으나, 복슬복슬하고 포근한갈대꽃으로만든공에두발을넣은선사는생각만으로도미소가올라온다. 또한달이밝은여름과가을에는 달 보기를 좋아하여 큰 대야를 연못 위에 띄워 놓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대야를 돌리면서 시를 읊고 웃으면서아침이될때까지늘그렇게놀았다. 때때로선사들은기행奇行으로말없는경지를보이곤하는데, 유정선사는기행이라기보다는자연과더불어즐기는낙과삶의자잘한즐거움을알았던분이아닌가싶다.
그렇다고는 해도, 다시 고쳐 생각해보니 자연과 더불어 즐길 줄 아는 것이 어디 자잘하다고 평할 수 있을까. 봄이가는지, 여름이오는지모르고삶에뒤덮여사는것을두고대범한것이라고할수없다.
원나라 말기에 활동한 예찬(倪瓚: 1301~1374)은 강소성 무석無錫사람이다. 부유하고 여유 있었던 어린시절과는 달리 1340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강남지방은 황폐해졌고, 그는 가족과 함께 20년간 방랑생활을 하여 주로 호수나 물 위의 띄운 배에서 살았다고 한다. 유랑流浪생활이라는 것이 이처럼 딱 맞는 일도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두고 유정 선사처럼 물 위에 달을 올려놓는 식으로 승화할 수 있었는지는그림 속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은 앙상하여 냇물만 하릴없이 흐르고 있다. 쓸쓸하기는 하지만 호젓하고 평화롭다. 평화로움은 소란스럽지 아니하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라고 여기고, 자연의 한 조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도에 가까운 것이라고 이것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을 신선에 비유하기도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여기에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중국의 선사들이 시중市中보다는 산중山中을 택했던 것도 석가여래의 가르침이 말 중에 있지 않았음을 일찍이 알았기 때문이었고 불교는 송宋대에들어와선가禪家의가풍을다시세우기시작하였다.
물위에달을얹고즐기다모르겠으나 그의 작품은 지극히 간결하고 소박하여 사람과 말(言)을 꺼렸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인적이 없는그의화폭엔빈정자만외로울뿐으로눈높이에맞춰진강기슭과완만한언덕을의지한한두그루나무는한가하고 거친 붓질로 완성해 나아갔다. 이러한 그림을 보자면 예찬이 시중의 번거로운 삶과 관직으로 얻어진 부와 명예를 돌아보며 아쉬워했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훗날 남종문인화의 대표적 작가로서 또한 많은화가들이 그의 경지를 배우려 하여 임모와 방(倣: 뜻을 따라 그림을 그림)에 열을 올렸던 이유도 다 그만한 이유가있는것이다.
세상과 섞이기 싫어한 그의 성품은 그림에도 드러나 있다. <호젓한 시냇가의 소나무 숲(幽澗寒松圖)>은 관직을얻어떠나는친구에게선물로주려고그린그림이다. 예찬은그에게임기를마치는대로다시은거지로 돌아오기를바란다는뜻을그림에담았노라썼다.
화면의 중앙에는 두어 그루 잎이 성긴 소나무가 서 있다. 성긴 잎을 보니 한송寒松, 겨울 소나무가 틀림없다. 송홧가루 날리고 소나무 잎이 나기 시작하는 요즘에는 소나무 잎 역시 풍성하다. 바람이 한번 지나가면 산위로노란공기가풀썩인다.
그림속의그리높지않은산은앙상하여냇물만하릴없이흐르고있다. 쓸쓸하기는하지만호젓하고평화
롭다. 평화로움은소란스럽지아니하다. 사람이자연의일부라고여기고, 자연의한조각으로살아가는것이도에 가까운 것이라고 이것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을 신선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여기에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중국의 선사들이 시중市中보다는 산중山中을 택했던 것도 석가여래의 가르침이 말 중에 있지 않았음을 일찍이 알았기 때문이었고 불교는 송宋대에 들어와 선가禪家의 가풍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였다.
어떤사람이유정선사께물었다.
“스님께서는 선사라고 이름하면서 선은 말하지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단지 말만 하는 것을 나는 싫어한다. 난잡스러운 문장을 어찌빌리리오. 그것은 하루 종일 만상을 번거롭게 죽 늘어놓는 것일뿐이다. 언어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 법은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조물주의무진장한보배’라고한것이다”라고말씀하셨다.
조물주의 무진장한 보배라는 구절은 원래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온 것이다. 나무 사이로 뜨는 달빛과 강 위로부는바람소리는절로눈과귀의친구가되는데누가이를막겠는가하며아무리써도다함이없고, 고갈되지도않는 이것이야말로 조물주의 무진장한 보배가 아니겠는가 하며 소동파가가을밤의정취를노래하였다.
우리 동네 여름은 이제 바야흐로 집 앞의 냇물을 넘어 오기 시작하는데, 말은 말로써 덧붙여야 하고, 글에는 글을 더할 뿐이지만 자연은 말없이 즐겨도 그 몫이 감하지 않고 더해지기만 하니, 역시 여기에는 말을 더할필요가없을듯하다.
마침시랑侍郞을 지내던 장당蔣堂이란사람이 항주의 태수로 부임하여 유정선사와 세간밖의 벗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