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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불광사 주지 관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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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07년 06월 304호
외아들을 잃은 여인이 있었다. 부처를 찾아가 아들을 살려달라고 울며 매달렸다. 그러자 부처는 마을로 내려가서 사람이 죽은 적 없는 집을 찾아 그 집에서 겨자씨 다섯 알을 얻어 오라고 했다. 여인은 마을로 내려왔다. 그러나사람이죽은적이없는집은단한집도없었다.
결국 내가 깨달아야 하는 것일진대, 깨닫지 않고서 죽은 외아들을 어디서 찾으려 하는 것일까. 중생도 본래부처라 하였으니, 마을 이웃집에도 부처가 있고 그 집 앞을 지나가는 모든 생명들도 진면목은 부처이며 결국은내안에부처가있는것이라는데, 우리는어느먼곳에서헤매고있는것일까.
대구 도심 가운데 사찰이 있다. 오가다 걸음 멈추고 들여다보는 이들도 많고 드나드는 이들도 많다. 그 외양이 마치 마실 다닐 이웃집인 듯 보이니 발길이 쉽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 아담한 마당에 서니 꽃내음이 먼저온다. 사람 북적이는 동네 한가운데, 거기 그렇게, 부처님과 스님이 앉아 계셨다. 불광사 도량은 여염집 작은앞마당처럼 나무와 꽃들이 정갈히 가꾸어져 있어 집주인의 성품을 먼저 알아채게 한다. 는개가 흩뿌리는 마당에 앉아 붉은 백일홍이며 연꽃이며 자잘한 들꽃들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스님이 드르륵 문을 열고 나온다. 한쪽발목엔붕대를칭칭감은모습이다.
“초파일등을달다가삐끗했는데발목뼈에금이갔네요.”
역시 집주인은 손님 맞이할 날짜에 맞춰 손수 정원을 가꾸고 손보았던 것이다. 누구를 시켜서 맞이할 것 아니니단장도주인의몫. 손님을맞는마음이여간정성스럽지않다.
“산이나들에가면바위틈이나그늘아래핀꽃들한테말해요. 많은사람들이모여드는공원에핀꽃들을부
러워할필요없다고. 네가더아름답다고.”
수처작주隨處作主, 스님은어디서든 어느 때든주인이 된다는것은 모든것을 자기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도보지않는곳에있다고하여꽃을피우지않으면그것은제책임을다하지못한씨앗이다. 공기햇빛물흙의은혜속에서살아가는데, 부모스승친구의은혜속에서살아가는데그은혜에대한책임을다해야하지않겠는가.
“세상이잘못돼서, 너때문에…. 이렇게말할것이아니라모든것을자기화시켜책임을다하면돼.”
연기법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 안에서 균형과 조화를 잘 맞추어 가야 하는 것. 스님은 그것을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했을 때 자신에게서 번뇌망상이 사라져 맑아지고 또 그러했을 때 자기 주위가 맑아지고 또 그러했을때안온한세계가되는것이아니겠는가. 그것이스님이말씀하시는정토淨土다.
“저사람은아무일도안하는데잘사는것같아? 그런거걱정할필요없어!”
내 할 일이나 잘하라는 말씀이다. 인과는 당연하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수행은 끝이 없다는 말씀이다. 무상하면쥐구멍에도볕들날있다는말씀이다.
은사 스님이 불사한 이 절에 머문 지 2년여, 도심 포교당이다 보니 맞부딪치는 일도 많고 대할 사람도 많고할 일도 많다.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 보존실장으로 있을 때도 해인사 포교국장으로 있을 때도 해인지 편집장으로 있을 때도 일은 많았다. 스님이 소임만 맡았다 하면 일이 많아진다고 하니, 일하는 법을 알겠다. 무엇하나그냥흘리지않는다는얘기다. 일체처일체시에책임을다한다는얘기다.
“밥값 해야지요.”예부터 노스님들은 늘 밥값 타령을 했다. 선방에 앉는 일도 법문을 하는 일도 포교를 하는일도 모두 주인이 되어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승가인으로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스님은 여래십호如來十號중, 응당히 공양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뜻인‘응공應供’이라는 칭호를 받들고 산다. 그리고 또 하나 받들고 사는 명호는‘조어장부調御丈夫’. 제 밥값을 다 하며 어디서든 잘조어하며사는것이스님의가장큰뜻인것이다. 그것이곧, 삶의프로이며세상의프로라고생각한다.
해인사 장경판전 양 기둥에 있는 주련을 봤느냐 하신다. 이쪽 기둥에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라 새겨져있다. 깨달음의 도량 즉, 행복한 세상은 어디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우리 모두의 질문이다. 그러자 저쪽 기둥엔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라 새겨져 있다. 지금 생사가 있는 이곳,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이라 대답하고있는것이다.
“순간순간 잘하라는 말입니다.”스님의 원력은 무엇인지 여쭈니 인연에 따라 순간순간 충실히 밥값을 하는것이란다. 거창한 목표는 없다. 복지사업을 하겠다거나 불사를 하겠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두지 않는다. 빚을머리에얹고살필요없다며손사래치신다.
“제분수에맞는인연이오게돼있어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 하였다. 세세생생 산을 파다보면 결국은 산이 옮겨 앉을 것이다. 그러면 그 자리가 정토가 될 것이다. 그러니 늘 깨어 있으라 하신다. 그래서 이곳 불광사 앞에는‘늘 깨어 있는 도량’이라는 말이붙는다. 순록을 잡아먹던 곰을 다 죽여 버렸더니 순록마저도 비실비실해져 죽더라고 했다. 천적이 없어져 긴장을하지않기때문이다. 그러니어려움이보약인줄알고살란다.
“만나는모든것은다자신이초대해서온거야.”
한 신도가 찾아와 물었더랬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어쩌면 좋겠냐고. 그래서 스님은 되물었단다.“ 그를당신삶의고객으로받아들일수있겠습니까?”
현생에 자기가 초대한 남편이니 고객으로 모시는 것이 당연한 일. 법화경의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있는 말과 같다. 항시 경솔하게 생각하지 않겠다, 항시 존경한다는 뜻이다. 모든 것에는 불성이 있으니, 언젠가는 부처가될수있으니경솔히하지않는다는것이다.
“114에전화하면‘사랑합니다고객님’그러잖아요. 우리모두가그랬으면좋겠어.”
스님은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기에도 시간이 모자람을 느꼈다. 선방에 앉아 관념적인 것 으로 헤매고있기보다한사람이라도자비롭게감싸야함을깨달았다.
“자비를 말하면서 자비심이 부족하더란 말이지.”전기도 전화도 없는 토굴에서 살다가 중생 사회에 나와 보니 어려운 사람, 따뜻하게 손잡아줘야 할 사람, 법문을 해줘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의 역할을 해줘야할 조계종승가가자비심이참부족하다는것을새삼알았다. 그래서스님은깨달음의 사회화보다 불성의 사회화를 중요시한다. 깨달음의 결과물을 사회에 적용시키기보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불성을 빼서쓰고 또 채우고하는것. 그렇게사회와불교가서로주고받으며조화롭게가야한다는것이다.
도심포교를 하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 또 하나 있다. 불교가 보편화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명품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무지렁이들에게도 필요한 것이지만, 사찰이 그저 할머니들이 찾아가 절이나 하는 곳으로여겨져서는안된다는것이다. 부처님의진리를, 한티끌이우주이고우주가곧티끌이라는것을깨닫는명품불교가필요하다는것이다. 명품이있으면불자들이거기에닿고싶어한다는것이다.
“문화도고급화되면그좋은물이자꾸아래로내려가면서천천히저급한문화들을씻어내준다고.”
고인 물은 죽는 법. 공부는 정신세계를 끊임없이 순환시킨다. 늘 깨어 있게 하기 때문이다. 책은 정신세계를 흔든다. 그리고 여행 중 마주치는 문화와 경험들 또한 이질적이면 이질적일수록 수평으로 흔들던 것을 수직으로 흔들어댄다. 그러면심층에있던문화와외부의문화가뒤섞인다. 마치계절변화에따라연못위아래의 물이 뒤집어져 생태계를 유지하듯이. 그렇게 연못이 맑아지듯 정신세계는 통이 넓어져 맑은 물을 머금게 된다. 그것이스님이열심히책을보고여행하는이유다.
대학에 다닐 때였다. 민주화 운동 시대였다. 불교 동아리에 있으며 민중불교에 대한 논의로 밤을 지새우던시절이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헛된 것을 파하고 정의로운 것을 드러내는 것이 불교가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른손에 칼을 들고 사회로 나아갔는데,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니 결국은 쳐내려고했던것이자신의왼손이었다는것을깨달았다.
“감옥에있어야할놈이감옥갈놈을잡고있더라이거야.”
밖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기모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진주에서 교편을 잡고있다가 내안의공부를해야겠다는생각에출가를결심했다.
해인사로 가는 늦은 밤의 깜깜한 산길, 스님은 자신의 길도 그렇게 깜깜할까 싶었단다. 번뇌망상에 싸여 있었으니 그 어둠은 두렵기만 했다. 어둠이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새벽에 올라가 사물소리를 들었는데 그때까지의 고민들이다내려놓아졌단다. 그렇게공부는시작되었다.
해인사 강원에서 공부도 하고 칠불사에 가서 3년 결사도 하고 토굴에도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삿된 것을파하면정의로운것도함께파해진다는것을알았다. 세상모든것이동전의양면과같다는것을알았다. 그렇게안으로의여행을하고있었는데또문제가생겼다.
“유심唯心이란말의위선에빠져서반찬타령이나하고방이차다고투정이나부리고있더란말이지.”
화를 복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수행의 경지라는 것을 알았다. 번뇌와 망상과 욕망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파할 것이 아니라 원력으로 바꾸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음식을 잘못 먹어 탈이 났다고 해서 어찌 밥을 안 먹겠나.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세상의 모든 것을 잘 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씨앗안에 화와복이같이있으니그것을어떻게잘키울것인가하는것이다.
“이입이도적盜賊이될수도있고부처님의말을하는금구金口일수도있어요.”
수행이라는 것은 용用, 잘 쓰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님은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공부의끈을놓지않는다. 그렇게늘깨어있는것이다.
“내가청정하지않으면서어떻게청정한세상을바라나요.”
운전, 잘 하라 하신다. 운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졸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하며 늘 긴장해야 한단다. 그래야 차가 반듯하게 가는 것이니, 그래야 차가 생명을 앗아가는 도적이 아닌 부처를 만나러 가는 발이 되는 것이니,그렇게내몸뚱이내정신내인생의운전을잘해야한단다.
스님이내어주시는차를받아마시는데문밖에선비가후두둑쏟아지고있었다. 마당의꽃들도차를마시듯
기분 좋게 빗물을 받아 마시고 있었다. 법당의 신도들도 동네 이웃들도 그 꽃들처럼 나지막이 모여앉아 스님의 법문을 한잔 두잔 받아 마시고 있었다. 비 그치고 나니 동네도 환하고 우리들도 모두 환해져 있었다. 마음이청정하면온세상이청정하다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