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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총무원장 집행부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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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9년 02월 204호
1월 10일 고산총무원장 체제의 출범으로 조계종의 분규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규사태는 끝나고 있지만 분규를 겪으면서 큰 상처를 입은 조계종에는 많은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흐트러진 종단의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하고, 국민과 불자들에게 안겨 준 충격과 실망을 치유해야 한다. 종단이 왜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자성도 반드시 거쳐야 하며 구성원들의 자질과 자격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어디 이뿐이랴. 어느 곳 하나 손 보지 않을 곳이 없는 만신창이가 된 종단을 바로 세우고 다시 민중의 귀의처로 거듭나도록 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가 고산총무원장 집행부에 지워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계가 고산 총무원장집행부에 거는 기대는 크다. ‘94년 종단개혁의 제2기를 이끌어갈 집행부의 출범’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런 기대를 함축한 것이다. 조계종의 새 집행부는 우선 추락한 종단위상을 재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화합과 안정을 추구함으로써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분규과정에서 형성된 갈등과 반목, 대립의 상처와 흔적을 말끔히 치유해야 한다. 또 다시는 지난 분규사태와 같은 일이 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와 개혁 조처를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또 종단의 중앙종무기관이 수행과 불교 발전을 이끄는 종무행정이라는 본질에서 비껴 나 권력과 이익을 보장 받는 기관으로 변질된 점에 대한 획기적인 수술이 단행돼야 한다. 그런 뒤에 불교발전에 대한 중장기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나아가 21세기를 준비하는 일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제들은 고산 총무원장집행부의 뼈를 깎는 인내와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만에 하나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오른 총무원장이라는 생각으로 지위와 권한에 탐착해 제도의 혁신과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데 주저하란 모습을 보인다면 고산 총무원장집행부는 물론 조계종은 차츰 더 깊은 좌절의 나락으로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 스스로의 지위와 권한을 축소하는 결단을 흔쾌히 감수하고, 개인이나 단체보다는 종단과 종도,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공심으로 종무행정에 임할 때 진정한 종단개혁은 이루어질 수 있음을 고산 총무원장집행부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산 총무원장 집행부는 또 종단분규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도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종단분규가 종단 내 자율적인 힘이 아닌 공권력을 빌어서 마무리되었다는 점을 명심하고 여전히 남아 저항하고 있는 세력들과 대화하고 화합하는 데 인색하지 밀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처벌보다는 화합적 차원의 배려를 우선해야 할 것은 두말의 여지가 없다. 처벌은 원한을 낳을 수밖에 없고, 원한은 원한으로 갚어질 수 없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늘 염두에 두고 편협하거나 오만한 자세보다는 포용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겸허한 자세를 가질 때 분규 과정에서 마치 철천지원수처럼 피를 흘리며 싸우던 상대들을 불법을 따르도록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규 과정에서 국민에게 안겨준 충격과 실망을 회복하는 데에 있어서도 말로만의 참회보다는 국민에게 피부로 와 닿는 참회행이 절실하다는 점도 잊지 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총무원장이하 종회의원, 원로 등 종단의 지도부가 일정 기간동안 참회의식을 갖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
고산신임 총무원장은 당선 뒤에 가진 기자 회견을 통해 올해에는 분규를 종식시키고 화합 승가를 이루는 해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발표한 바 있다. 분규과정에서 발생한 징계 대상자의 처리도 채탈도첩과 같은 극형보다는 제적이나 공권 정지 등의 부드러운 징계를 함으로써 화합 분위기를 도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현행 종헌종법의 불합리한 부분이나 문제가 있는 조항은 차츰 개선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정화개혁회의 쪽과도 대화를 함으로써 순리적으로 종단 분규를 해결해 나간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고산 신엄 총무원장이 밝힌 이 같은 의지는 난국에 빠진 종단을 정상화하는 데에 매우 유익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고산 총무원장이 이 같은 초심을 굽힘없이 견지해 나간다면 조계종 분규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다시 한 번 민중의 귀의처로 거듭나는 전기를 맞을 것이라는 밝은 전망을 내놓는 사람도 많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고산총무원장 집행부에는 어려운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중단돼 마비 상태에 있는 종무 행정을 정상화하고, 정화개혁회의를 중심으로 한 비토 세력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일, 월하 종정의 불신임으로 공석이 된 종정을 원만하고 여법히 추대하는 일, 국가적인 경제난과 분규로 인한 신도 감소로 인해 불가피 하게 줄어든 사찰 수입의 감소를 감안한 분담금의 인하 재조정,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중앙종무기관을 대폭 구조 조정하는 일, 무너질 대로 무너진 승단 내 위계질서를 회복시키는 일 등 중차대한 과제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과제들이 하나 같이 어렵다는 점과 시급히 처리해야 할 사안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과제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교계는 고산총무원장집행부의 종무행정 능력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고산 총무원장 집행부가 이러한 난제들을 무리 없이 해결해 나간다면 별 문제가 없겠으나 만에 하나라도 해결 과정에서 잡음이 일거나 삐걱거리는 불협화음이 발생한다면 새 집행부의 행보는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고계 일각의 우려를 결코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이러한 난제를 원만히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고산 총무원장집행부가 먼저 스스로 목소리를 낮추고 종단에 봉사하는 겸허한 자세로 문제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론으로부터 사심 없이 종단의 정상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때 고산총무원장 집행부의 행보에 힘과 명분이 실릴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신임 총무원장고산 스님은 계덕械德과 해행解行이 원만한 대덕大德으로, 평생 큰 허물없이 제방의 시부대중으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아 온 스님이라는 점에서 종도들은 물론 국민으로부터 실추된 불교의 위상을 회복시킬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행과 계행, 불사등 여러 방면에서 출중한 능력과 경지를 갖춘 훌륭한 스님을 새 지도자로 맞이한 것은 조계종으로서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은 총무원장 자리에 오르기 이전에는 덕망과 지혜를 갖춘 스님이라는 평가를 받다가도 막상 총무원장에 오르면 명리와 이해에 탐착해 실망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부디 과거 총무원장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종단을 위기에서 구해 주기를 바라는 종도들의 마음을 새 총무원장은 늘 염두에 두길 당부한다.
새 총무원장이 앞장서서 종단을 구하는 대열을 진두지휘할 때 종도들은 흔쾌히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지도자가 사심 없이 애종심을 가지고 나서는데 이를 외면할 종도는 없을 것이다.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미는 협조 분위기가 조계종단에 충만할 때 한국 불교에는 다시금 희망의 태양이 솟아 오를 것 이다.
고산 총무원장 집행부가 종단을 난국에서 구하고 문화와 정보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21세기를 성공적으로 준비하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