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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하나확신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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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원응 2007년 05월 303호
부친께서 나를 절로 이끌어주셨다.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몸이 아파서 쉬고 있는데‘좋은 스님들이 계시니수양삼아 가 있어봐라’하셔서 간 곳이 부산 선암사였다. 그곳엔 아버님과 안면이 있는 향곡 스님이 조실 겸주지로 계셨고, 총무로 석암 스님, 입승으로 지월 스님이 계셨다.
아버님은 중앙고보를 나오신 분으로 데모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르다 그 길로 절로 돌아다니면서 방황하다가 수덕사 만공 스님 밑에서 참선 공부를 하신 분이다.
만공 스님께 출가의 권유를 받고 출가를 고민하던 아버님은 이미 가정을 가지고 있어 끝내 출가는 하지 못했다고 한다.
만공 스님께‘진망眞忘이 모두 공해버리면 모든 것이다 부처’라는 뜻이 담긴 계첩과 함께‘만법귀일 일귀하처, 삼라만상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는 화두를 받고 공부할 만큼 불교에심취하셨다. 공부할수록‘불교가 이리도 심오한 진리인가’하는 애착을 가졌던 아버지는 자신이 출가하지 못한것을 아쉬워하면서 아들 대에 가서 출가인연을 만들어보려 했다고 한다. 막내아들인 나를 절로 보내면서 출가하기를바라셨을것이다.
절과 인연이 있어서 그랬는지 속가에 있으면서도 고기는 물론 비린 것을 전혀 먹지 못했다. 절에 들어와 있으니 담백한 음식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께일찌감치‘만법귀일 일귀하처’의 화두를 받고 공부했다.
책을 읽는 것이 앓고 있던 늑막염이라는 병에 지장이 많으니화두를해봐라하셨던것이다.
절에 들어가자마자 당시 정화운동의 집결지였던 선암사의 분위기에 젖어 자연스레 행자노릇을 시작했다. 음식에 대한 계율을 철저하게 지켰던 선암사에서 밥 짓고반찬 만들어 가면서 행자노릇을 착실히 했다. 칠십이 훨씬 넘은 지금도 당시 익혀둔 음식솜씨가 남아 있어 썩 잘하진 못해도 혼자 놔두어도 밥은 굶진 않는다. 콩나물국같은 것은 소금 하나 넣고 끓여도 시원한 법인데, 요즘사람들은조미료를집어넣어국을버려놓는다.
당시 행자는 공양주와 채공을 하면서 3년 정도 지내야사미계를 받을 수 있었으나 나는 1년 정도 지나 계를 받고 정식 출가사문이 되었다. 부친과 예부터 안면이 있던석암 스님이 은사가 되셨다. 나의 은사이신 석암 스님은분에 넘치는 소리를 하지 않는 분이셨다. 기개가 있었으나앞에나서지않고공부에만힘쓰신분이다.
당시〈초심〉부터 배우고 어느 정도 경학을 익힌 후에뚜렷한 견해를 세우고 참선을 해야 된다는 게 일반적인경향이었으나 이미 집에서부터 화두를 들고 있던 나는곧바로 선방에 들어가 앉았다. 행자 신분으로 선방 수좌들과 함께 결제에 들었으니 특별한 배려를 받은 셈이었다. 선암사에 가니까 인환 스님, 지관 스님 등이 두 해 정도먼저와있으면서〈사미율의〉를배우고있었다.
스님들께선 우리 초심자들에게‘하심’에 대한 말씀을많이 하셨다. 특히 자비보살로 불렸던 지월 스님의‘하심’에 대한 법문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뚜렷이 남아 있다. 당시엔‘하심하라’는 법문이 초보자에게 으레 권하는 것인가 했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 깊이 생각해보면, 하이것하나확신했으니 심이 불교의 본체요 전체라고 보아진다. 지금 우리 불가 풍조에서가장아쉬운것이하심아닌가.
불교가 그때보다는 발전되었다고 하나 지금 사람들은 하심이란 것을 고리타분한 묵은 이야기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 큰소리를 치면 먹혀 들여가는 세상이라서인지 머리를 깎은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어깨를 펴고 다니는젊은 스님네들을 보면 하심은 간 곳 없다. 그런 모습이통하는 시대라서 그런 줄 모르겠으나 그게 불교를 좀먹는것인줄알아야한다.
공부는 양심적으로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낮추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폼부터 잡으면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그런 풍토가 불교의 진실한 면과 거리를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길거리에서 스님들을 만나면 따뜻한 온기가 오가야 하는데 어색해 하고 반가워하지 않는다. 피차에 하심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심에서 벗어나면 깨달음의 세계엔 이를 수 없는 것이다. 백천 시냇물이 자기를 낮추어야 큰 물과 합쳐지듯, 자기 위치를 낮추면 자기 물이 커지는 것이다. 낮추고 비워야 강과 합쳐지고 대해가 되는 것이다. 일체 중생이 부처님의 대해인 한 장소로 모이려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어느 단체이든지 올바른 단체가 되려면 자기를 비워야한다. 자기를 버려야 한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극치에도달해야 부처님 말씀도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부처님무아사상이 아닌가. 모든 경전도‘자기를 낮추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참선도화두라는특별한방법을써서자기를버리는방법이다.
구구필유입처久久必有入處라, 오래오래 하면 들어가는데가 있다. 오래 하다 보면 견처見處가 있다는 것이다. 은사이신 석암 스님께선, ‘이 세상에 나오지 않은 요량해라. 지게를 부려놓고 그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 하지 말고공부해야지, 이렇게 해서 되겠나 하는 생각을 하면 수좌와멀어진다’라고하셨다.
출가를 해야겠다고 하자 부친께서‘절에 밥을 얻어 먹으러 간 게 아니니까 공부 말고는 다른 것 신경 쓸 것 없다’하시면서 경책해주셨다. 1961년에 이곳 지리산으로들어와 집을 지으니까‘집을 지을 것 같으면 무엇 하려고출가했는가’하셨던말씀이떠오른다.
출가생활이란 것이 부친의 말씀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말씀이 생각날 때가 많다. 이곳 지리산으로 들어온 것은 얼굴 내는 것을 멀리하고 뒷전에서 공부에 힘쓰려고 했던 것 아닌가. 은사스님처럼말이다.
수행자가된지이미반세기가훌쩍넘은세월이다.
제대로 공부해서 오매일여가 되어 뚜렷한 자기 견처가생겨야 하는데 그것에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은사스님께서‘이 한 생을 나지 않은 요량하고 살아야한다’라고 경책하신 말씀을 잘 지키지 못하고 산 것 같다. 해서 조석으로 발원한다.‘ 세세생생 반야분을 떠나지않게해달라’고말이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생각이 해일처럼 인다. 나이 칠십이 넘어‘이것이 공부다’하고 큰소리칠 수 있어야 하는데, 출가한 지 몇 십 년이 되었어도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드니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역시 이것이 공부길이구나’하는 확신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갈 길은 멀고 힘은 들지만‘이 공부가 살 길이구나’하는 확신 하나 챙겼으니, 출가의 길에서 이 공부길을 발견한 것 말고 더 다행인것이무엇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