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톱만큼 작은 전자 기구에도 인형 옷 입히듯 색색의 케이스를 골라붙일 수 있고, 세계에서 비싸다고 이름난 명품들은 없는 것 없이 모여 있는 일본의 수도 동경. 최첨단, 최신과 같은 가치가 대우 받는 도시다.
단하나만빼고!바로‘먹는문제’에있어서는‘oldiesis goodies(오래 된 것이 좋은 것)’가확실하게 지켜지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패션 잡지를 펼쳐 본다. 기온이올라가면서 옷차림이 가벼워지니 단연 다이어트 기사가 선두에 있다. 말쑥한 패션 센스나 명품 매치 하는 법등을 주로 다루는 최신 잡지는 과연다이어트 비결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신종 다이어트 약품이나 고가
의 유기농 분말이 아닌,‘ 매실 절임’이다.
매실 절임은 맛이 절정에 오른 매실을 똑똑 따서 소금에 절여 만드는일종의 찬으로, 우리의‘김치’처럼일본의 가정식에서는 빠질 수 없는맛이다. 새로 생긴 부티크, 새로 나온 이온 헤어드라이어, 새로 유행하는 명품 백 등을 소개하다가 난데없이 먹을거리로는 엄마가 만들어주는매실 절임을 권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인들의 식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이렇게 만든 절임 반찬 한두 가지로밥 한 공기 뚝딱하고 인스턴트 커피처럼 생된장을 간단히 풀어 만든 국한 컵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대부분이다. 번번이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먹는 것에 대해 요란을 떨지 않으나,
좋은 재료를 써서 예부터 먹어오던 메뉴가 최고라고 말하는 이들의 식문화관이다.
이처럼 첨단이 판치는 선진국의 식단이 뜻밖에 간소함을 느낀 것은 그러나 비단 일본에서만이 아니었다. 멋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프랑스. 프랑스의 구석구석을아직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정말그들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아트’다. 좋아하는 시를 읽고, 좋아하는와인의 포도 품종을 공부하고, 미술매화절임, 무절임, 매실절임수자타관이 공짜로 개방되는 날에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기다란 줄을 견뎌 미술 공부를 놀이삼아 시키는 프랑스엄마들. 그녀들의 주방을 슬쩍 들여다볼까? 향수와 스카프와 화려한 핸드 메이드 드레스로 유명한 프랑스의 가정식은 과연 뭘까? 엊그제 마시다 남은 저렴한 와인에 고기 자투리를 담가 끓여낸 스튜나 버터와 깍지콩에 볶은 스파게티 국수에 치즈를 갈아 올려 먹는 정도가 그들의 일상식이다. 남은 야채나 고기 끄트머
리를 한데 모아 맑은 육수와 젤라틴을 넣고 굳혀서 썰어 먹는 메뉴도 대표적인 가정 요리다. 여기에 기다랗고 거칠한 프랑스빵과 내 수준에 맞는 와인 한두 잔이면 누구나 만족할
만한 식사를 끝낼 수 있다. 다이어트가 필요한 여름이면 점심 한 끼쯤은샐러드로 대신하거나 수분과 비타민C가 많은 과일의 섭취량을 늘리거나물을 좀 많이 마시는 정도의 별일 아닌방법들이동원될뿐이다.
문화적으로‘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국민들은 세상에서 좋다는것, 맛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빨리, 많이 보고 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것과 자신의 생활간의 괴리감이 생기지 않도록 꿋꿋하게 자아를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자아를 지켜내는 방법으로는 엄마의 잔소리처럼 일상적이고소박한 밥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분명하다.
사고 싶은 게 많고, 입고 싶은 게많고, 마시고 싶은 게 많아도 꿋꿋이내 집 한 칸으로 걸어 돌아와 수수한향을 뿜는 절임과 따뜻한 차에 말아낸 밥을 먹으면 헛헛한 속이 금방 따뜻해진다. 여기에 다시마 국물을 섞어서 말아 부친 계란요리와 소화를돕도록 무 갈은 것을 함께 곁들이면
잘 시간까지 힘이 넘친다. 조명이 화려한 에펠탑이나 루이 비통 쇼핑백을 줄줄이 맨 관광객의 행렬을 뚫고내 방으로 돌아와 냉장고 속의 스튜를 데우고 5000원짜리 와인이지만내가 아끼는 유리잔에 따라 자리를잡고 앉노라면 갑갑한 드레스를 입고 우아 떨며 먹어야 하는 어느 고급만찬이부럽지않게된다.
소박한 밥상이 어디로부터 내 앞에 오게 되었는지, 내가 이렇게 꼬박꼬박 밥상을 받아도 되는지 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알맞게 먹는 식사가 요즘같이 유혹이 많은 하루하루를, 남부러운 마음을, 끝없는 욕심을이겨낼수있는노하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