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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묻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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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야기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07년 05월 303호
<계산의 작은 수행처溪山蘭若圖>는 실제 자신의 수행처이라기보다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어떤 곳일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림의 붓질은 옅은 먹과 유려한 필선으로 이어지며 고정된 형태를 고집하고 있지 않다. 분명 계산溪山은 강북의 문인 도사들이 즐겨 머물던 곳이었을 것이지만 그의 화폭에 드러난 계산의 그의 수행처는 안개에 가린 듯 산 그늘에 잠시 머문 듯하며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하는불교의존재관을형상화한것으로평가되고있다.

새벽이른소쩍새소리에잠이깼다.
일전 늦은 밤친구를 배웅하러문밖에 나설때 이미 첫 인사를받았으나그때 무심하였다. 오늘아침 그 소리에 잠을 깨고 일년 내 근처에 산다는 그 새가 겨우내 소식이 없다가 이제야 제 존재를 전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곧 아마도 제가 아무 소리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귀를 막고 있던 것이었지 하며 내 무심함을탓하고말았다.
겨울은 추워서 또, 연초에는 서쪽 황사의 질풍疾風때문에 꼭꼭 닫아놓았던 창문을 이제 느슨하게 하고나니그틈으로봄이벌여놓은정황들이한꺼번에쏟아져들어온다. 알든모르든창밖허공엔무엇인가머물러있고 특별히 봄이면 그 허공에 머무는 비와 바람, 햇살과 달빛, 반짝이는 별과 종알거리는 새소리까지 부드럽고 섬세하였다. 봄이라는 단어만큼 곰살맞고 따뜻한 말이 어디 있을까 싶다. 문도 열고, 창도 살짝 열어놓으며더불어마음도느슨하게풀어놓으니허공의많은사연들과내가이렇게쉽게통할것을그동안너무닫아두었다. 이미 창 밖에는 만산滿山의백화百花도 한물가고여린 초록의 새 잎이 한 해를 건너갈준비가 한창이다.
자명초원(慈明楚圓; 10세기 말~11세기 초) 선사는 전주(지금의 중국 광서성廣西省) 분이다. 성남 상산은정사에서출가하고낙(洛: 하남성)으로가분양선소(947~1024) 스님을시봉하였다.
어느날도오산道吾山의주지가되어시중에게이렇게말씀하셨다.
“내가 북을 치면 사대부주가 동참하고 주장자를 비껴들면 온 대지가 뛰어 매달리고, 발우를 엎으면 항하사 세계를 덮는구나. 자! 너희들에게 묻겠다. 어디에 안심입명 하겠느냐. 만약에 안다면 북구로주에서 죽과밥을먹겠으나, 만약모른다면길게이어진상위에서죽과밥을먹게될것이다.”
하지만후에석상산(石霜山: 호남성)에머물면서하한거해제를맞이하여서는또이렇게말씀하셨다.
“어제는 어린아이이더니, 오늘은 이미 늙었구나. 3·8·9를 밝히지 못하면 옛 선지식의 길을 밟기가 어려울 것이다. 손으로는 황하를 녹여서 말리고, 발로는 수미산을 차서 거꾸려뜨려도 덧없는 인생은 꿈과 환상속의 몸이요, 사람의 몸은 오래 보존할 수가 없다. 천당과 지옥 모두 마음이 조작한 것이다. 남산 북령의 소나무와북령남산의풀은똑같은비가차이없이적시지만뿌리와싹이왕성하기도하고마르기도한다. 전국<계산의 작은 수행처溪山蘭若圖>는 실제 자신의 수행처이라기보다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어떤 곳 일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림의 붓질은 옅은 먹과 유려한 필선으로 이어지며 고정된 형태를 고집하고 있지 않다. 분명 계산溪山은 강북의 문인 도사들이 즐겨 머물던 곳이었을 것이지만 그의 화폭에 드러난 계산의 그의 수행처는 안개에 가린 듯 산 그늘에 잠시 머문 듯하며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하는불교의존재관을형상화한것으로평가되고있다.
허공을묻지말라각지의 참학인은 허공을 묻고 토론만 하니 죽으면 얇은 속옷도 벗고 살아서는 두터운 겉옷을 입는데 분명하게일없는사람이새삼스럽게번뇌를일으켰도다.”
초원화상도하루는항하사세계를발우에엎다가도그것이진즉에하릴없는것임을바로밝히셨다. 내손
으로 황하를 녹여서 말리고 수미산을 차서 거꾸려뜨린다 한들 모두 덧없다 하셨으니 부처나 조사의 북소리와 들어올린주장자는 또 무엇이랴싶다. 오로지 나 자신만이스스로를 존귀하게할 수 있을 뿐 아닌가. 아기부처님이룸비니동산에서일곱걸음으로수미산일곱봉우리를한걸음에한봉우리씩모두건넌것이라한들내눈과귀를닫고내발로걸은것이아니라면창밖의허공만큼이나아무일도아니다.
중국의 남종선이 주류를 이룬 시기, 화단에서도 선과 도, 진리를 자연을 통해 화폭에 옮겨 담는 작업들이진행되고 있었다. 많은 문인과 선사들은 실제로 시중에 머물기도 하였으나 산수 자연은 이상화된 모습으로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머물면서 마치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많은 문인과 선사들이 그렸던 산과 물이 실제와 얼마나 비슷한가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출발점에 거연(巨然, 약960~985 활동)이있다.
거연 스님은 문인산수화의 종가宗家라고 평가되며 현재 남경인 강령출신이었으나 후에 개봉開封개보사開寶寺에 머물렀다. 그는 승려화가이긴 하였으나불교적 소재에 집착한 것은 아니었으며 특별히 자신의 그림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지도 않았다. 다만 산수자연을 충실히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마음가운데있는광경과그느낌을전달하고자하였다.
<계산의 작은 수행처溪山蘭若圖>는 실제 자신의 수행처이라기보다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어떤 곳일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림의 붓질은 옅은 먹과 유려한 필선으로 이어지며 고정된 형태를 고집하고 있지 않다. 분명 계산溪山은강북의 문인 도사들이 즐겨 머물던 곳이었을 것이지만 그의 화폭에 드러난 계산의 그의 수행처는 안개에 가린 듯 산 그늘에 잠시 머문 듯하며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하는불교의존재관을형상화한것으로평가되고있다.
거연이 그린 화면에는 전체를 압도하는 큰 산봉우리가 있으나 그 정점에서시선은 이내 그 아래 그윽한 안개 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모호한 안개의 산 중턱에서 시선이 헤맬 때, 다시 눈길은 깊은 골짜기 안에 자리 잡은 작은 선방으로 내려가는데 그 난야에 열린 창은 곧 문 앞에 펼쳐진 맑고 고요한 냇물과 적절하게대對를이루고있다. 중국그림속의난야나산사는우리의그것과비교
해서 크고 화려하여 공감을 못 이룰 때가 많으나 여기에는 깊은 골짜기가 그나마허물을덮고있다.
거연 스님의 계산난야는 고즈넉하기가 그지없을지나 시중의 하루는 또 시작된다. 하루가 시작되고 조용한 허공을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파고든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나름의 일상으로 여기저기서 정적을 흐트리기 시작하는데 그래서나는오늘도고요한허공을향해발길질한번해볼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