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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법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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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07년 05월 303호
정갈하기이를데없는방이다. 책장엔책들이위엄을자랑하지도지식을과시하지도않으며흐트러짐없이
꽂혀있고책상위엔사람의온기가채가시지않은책한권이펼쳐져있고방한가운데엔옷매무새단정한스
님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앉아 있다. 열어둔 문으로는 봄볕이 슬쩍 몸을 디밀고 실바람은 들어올까 말까 하다가미혹迷惑없이가야산등성이로훌쩍내달음치는, 나무랄데없는일요일오후다.
뭐하고계셨습니까? 여쭈었다.“삼국유사를과연일연선사가썼나, 요즘에그거검토하고있어요.”
나무랄 데 없이 대안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안이 있자는 일도 아니다. 그러니까, 봄볕이 마루에 가만히 앉아 해묵은 마룻장 옹이의 역사와 후대에 누군가가 만든 흠집이 옹이로 보일 때까지의 역사를 가만가만 들여다보고있을뿐이다. 그렇다고봄볕이그옹이들을어찌할마음도어찌할수도없다. 그저그건봄볕이옹이를 쓰다듬듯법진스님이삼국유사를아끼는책중하나로꼽는다는얘기다.
그렇다면경전에는왜곡이더많지않겠습니까? 여쭈었다.
신중해야할이야기다. 역시, 스님은슬그머니얘기를꺼낸다.
“한 제자가 부처님께 들은 얘기는 다른 제자가 부처님께 들은 얘기하고는 아무 상관없어요. 내가 부처님께들은 얘기만이 내 삶의 문제나 내 깨달음의 문제에 바른길을 가르쳐주는 핵심적인 요지를 담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각자가 다 그런 거죠.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연기 공 중도를 어떻게 알게 하고 어떻게 실천하게 하느냐에집중되어있다는것이중요하죠.”
‘대승비불설’이라고도 하지만 비불설이라고 해서 굳이 배척할 일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연기 공 중도를 바탕으로 가르침을 주면 그것도 의미가 있지 않겠냐는 말씀이다. 어쨌든 잘 살라고 좋은 가르침이 들어앉아 있는것인데나쁠게무언가, 왜곡이고아니고가왜필요하겠는가.
스님은 이번 학기를 맞으며 해인사 강원의 학장 소임을 맡았다. 그러면서 지금 해인사 강원에는 전통의 폐단을 벗겨내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직까지는 그것이 여러 가지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다. 기립박수를 치는 메아리도 있지만 역시나 노怒하는 메아리들도 있다. 그렇지만 스님은 뜻을 굽히지 않는다. 개념 중심의강의를하겠다는스님의확고한신념에는스님의풍모만큼이나빈틈이없어침하나꽂을수가없다.
“학인들한테일주일에한번씩리액션페이퍼(reaction paper)를작성해서제출하도록해요.”
일주일간읽었던경전이든조사어록이든여타의책이든, 그텍스트의내용이현재자신의삶과어떤관계인
지, 자신의 삶이라는 거울에 비쳐졌을 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정리해서 제출하는 것이다. 따박따박 글자나 읽어내리는 공부가 아니라 내면의 공부다.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삶에, 그리고 수행에 있어 길을 제시해주는 공부다. 스스로 깨쳐가는 공부다. 그러니 그 무엇보다도 힘든 공부여서 학인스님들이 상당히 싫어하고는 있지만 스님은 그것만은 반드시 제출하도록 한다.
리액션페이퍼야말로스님이생각하고있는교육이기때문이다.
“교육은 길들이기가 아니에요. 대혜서大慧書를 읽으면서 어떻게 화두를 지어가는지 어떻게 의심을 만들어가는지엿들을수는있겠지만그자체가절대시되어선안돼요. 모든사람들이다그렇게한다면그건역사의종말이지요.”
‘그게 아니면 절대로 안 된다’는 말,‘ 원래 하던 대로’라는 말은 스님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교육을 길들이기, 즉강요여서는안된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 그것을늘잊지않으려고상기한다. 지식은지혜롭게쌓아야한다는 것을 스님은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공부를 위한 공부, 종교를 위한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일러주는것이다. 그래서교과과정을개편하면서우선은강독강의를대폭줄였다.“이상한 편견들이 있어요. 한문 텍스트를 한자 한자 읽어나가지 않으면 경전을 안 읽었다고 생각해. 학인들은자부심이안느껴진대요. 굉장한편견이지.”
지금껏 강원에서는 한문 텍스트 읽는 강독 강의를 위주로 했다. 그러나 법진 스님은 모든 교육을 한글화 시켰다.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던 부분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개념 중심의 교육을 하는 데 있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 언어로 전달하고 사고하는 것이 당연지사. 그래서 스님은 경전은 반드시 한글화되어야함을강조한다.
“우리가중국어로사고하나? 반드시중국어경전을봐야한다는건모순이지요.”
그렇게 생각하기도 이전에, 스님들이 해야 할 공부는 한문 뜻이나 새기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스님들이 정작 한문 뜻 새기기에 바빠하니, 법진 스님은 그러한 훈육식 강의는 하지않겠다는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우리 불교가 설 자리가 없어요. 이 터에다 해인사라는 가람을 만들어서 많은 스님들이 지켜오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만들어놓은 강원인데 흰 쌀밥 먹으면서 최소한의 공부나 하며 시간 때우는 그런 곳이어선안되죠. 정신없이돌아가는곳이어야지.”
삶을 어떻게 개척해나가야 할지 치열하게 공부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화가 되어서는안된다는판단에, 스님은바삐움직이는도량으로가꿔나가려고추진중인것이다.
스님은해인사강원과화엄학림에서공부를마치고, 모두들동국대에들어갈때서강대사학과에들어갔다.
그러고 나서는 미국에 가서 역사이론을 공부했다. 도량을 떠나 대학에 갔을 때 스님은 바쁘게 움직이는 도서관의 자율적인 공부 분위기에 놀라웠다고 한다. 지금껏 강원에서 공부할 때가 제일 시간이 많았던 때 같단다.
공부를좋아하는것은맞는것같은데, 대체왜학자가안되고스님이되었을까, 여쭈었다.
“난 정말 학자로 살려고 했어요. 그리고 거기에 미쳐서 살았고. 학교에서 강의도 했지만 나를 조금 더 필요로하는곳에있어야겠다싶었지. 팔자야. 출가도팔자고.”
열여섯에 출가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가 어느 날 멀고도 먼 통도사에 찾아갔다. 그것이 어디팔자로만될일인가, 마음의무엇이스님을절문으로들어서게했을까싶어되물으니대답은한마디다.“사람은누구나창조를꿈꿔요. 난늘창조적이고싶어요.”
사학과에 갔던 것도 일맥 상통한다. 호기심 많았던 스님은 눈에 보이는 글이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체계적독서는커녕, 대구에 나갔다가 책을 사오는 스님들이 있으면 빌려다 보고 신문을 보기 위해 종무소에 들락거렸다. 그러다가, 그때 역사책을 한권 읽고는 쏙 빠져들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해서사학과를가게됐다.
“그때도 자신은 있었어요. 불교하고 역사가 따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인문학에서 아주 기본이 되는 것이 역사인데, 불교도 뭐 인문학 중에 하나니까. 그리고 사실 역사공부를 하면서 불교를 더 깊이 있게 이해를 할 수 있게 됐고. 사실, 역사 이론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요. 흔히 말하는, 사람들이 인간의 삶을어떻게이해하느냐하는것이지.”
강원교육을참선을위한기초과정으로여기는시각이많다. 물론불교적지식을선적인입장에서정리하고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스님은 그것으로만 집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목표로 삼아서는안된다는것이다.
“깨닫기위해노력하라고가르치면안돼요. 대승의보살로살도록가르쳐야지. 깨닫는그자체가목적이돼
선안된다는말입니다.”
풀리지않는문제가있어서그것을해결하기위해서쪽하늘을바라보면서나무아미타불염불을할수는있
다. 문제해결을위해세상과인연을끊고토굴로들어갈수도있다. 그러나그것이극단적으로미화되거나그
것이 불교의 가장 이상적인 수행자의 모습으로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학인스님들에게곧잘묻는다.
“잘하는게뭡니까?”
그 사람이 어떤 장점을 갖고 있느냐 를 발견해서 그 사람의 장점을 통해 그 사람의 불교적 세계를 가꿔가도록 돕는 것이 스님이 하는 일인 것이다. 보편적인 틀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틀에 맞는 길을찾아주는것. 그길에서불교적수행자의삶을살게하는것이다. 그렇기에자기준비나자기관리에엄정해야함을늘강조한다.
“우린 수행자니까 어떤 행동을 하든 사고를 하든 늘 연기 공 중도를 실천하고 있으면 돼요. 그런데 반드시그것이선을통해서만실천된다고하면대단한독선이죠.”
그렇다면, 스님은공부말고는무얼잘하시는가여쭈었다.
“뜀박질. 그게참좋아요.”
스님이 미국에서 공부 할 때였다. 미국은 철저하게 가족 중심의 사회이다 보니, 늘 혼자 있어야 했다. 뭐든지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혼자 지낸다고 24시간 공부만 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운동을시작했다. 그것이달리기다. 그러나그것도결국지독한혼자와의싸움인것을!“축구를 하면 생각을 다른 곳에 잃어버려요. 공 차야 되니까. 그렇지만 뜀박질을 하면 그렇지가 않아요. 운동화 끈 매고 뛰기 시작하면 다른 생각 전혀 없이 읽었던 책을 머릿속에서 한 번 더 쭉 읽기도 하고 발표문 구상도하게돼요. 그러니까할일이없으면뛰는거야. 정말많이뛰었어요.”
뜀박질을 하면서도 공부를 한다. 심호흡으로 머리가 맑아졌으니 생각이 더 오롯해지고 다른 것에 무심해지니 뛰고 뛰고 또 뛰는 것이다. 등산처럼 발을 어디다 놔야 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축구처럼 어디로 공을패스할지고민하지않아도되니스님에겐이처럼좋은운동이없는것이다. 요즘에도뛰는가여쭈었다.
“어른노릇하고체면치레하느라못뛰어요. 뜀박질하려면뜀박질옷을입어야하잖아.”
그러나 슬쩍 말씀해주셨다. 가끔씩 정말 뛰고 싶을 땐 거창 어느 마을쯤에 가서 혼자 몇 시간 뛰다가 온단다. 그리하여스님의마지막말씀은이렇다.
“학인들한테뜀박질좀가르쳐볼까?”
스님은무소의뿔처럼혼자서가고있었다. 스님곁의벚나무가꽃잎을한없이떨구는것에도아랑곳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