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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정료대庭燎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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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성보 - 정미경 2007년 05월 303호
해인사 삼층석탑에서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바라보면 작은 석조물 하나가 있다. 그 모습은 석등石燈과 유사하지만 그 모양은석등처럼화려하지는않다.
해인사는 신라시대 802년(애장왕哀莊王3)에 순응, 이정이 창건하였다. 큰법당인 대적광전은 당시 비로전이라는 2층 건물이었는데 조선시대 1488년(성종成宗19) 인수대비, 인혜대비의 지원으로 학조學祖대사가 중창하면서 지금의대적광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인사는 통일신라시대 때 왕실 원찰기능을 담당하던 사찰로서, 큰절에 남아 있는 석조유물인 해인사 삼층석탑, 석등, 당간지주, 길상탑, 정료대는그시기에만들어진것이다.
정료대는 원래 사찰, 서원 등에서 야간 행사가 있을 때 관솔지나 송진등을 태워 경내를 밝히던 것으로 노주석 또는 불우리라고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 사찰에서 정료대가 남아 있는 예는 회암사지와 해인사, 봉암사, 대승사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 향교나 서원에는 다수의 정료대가 남
아 있다. 대부분의 정료대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정료대지만 해인사 정료대는국내유일의통일신라시대정료대로추정된다.
정료대는 대부분 높이 1~1.5m 정도의 4각角내지 6각 또는 8각 기둥(柱) 형태로 되어 있고 상부석은 보통 원형의 사발 모양이나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회암사지와 봉암사의 정료대는 조선시대 정료대로서 4각기둥에 네모 반듯한 상부석을 올려놓은 잘짜여진 단壇과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해인사 정료대는 회암사지와 봉암사의 정료대와는 다른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상단에서 하단으로 내려올수록 점차 좁아지는 8각 기둥에 상부석은 활짝 핀 연꽃을 바위에 고스란히 담아놓은 듯한 연화문양이 부처님의 연화대좌蓮花臺座를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다른 정료
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자연스럽다. 뿐만 아니라 해인사 정료대에는 장인의 숨은 재치도 남아 있는데 비례가 맞지 않는 상부석은제멋대로빚어진우리옛그릇을닮은듯하다.
정료대는 해인사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8각기둥은비와바람에의해많이마모가되어있는상태이며상부석도자연의 섭리에 의해 균열이 가고 박락되어 작은 미생물들의 서식처가 되어버렸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병이 나고 나약해지는 것처럼 이 작은 석조물도 탈이 나고 병이 난 모양이다. 혹시나 부서질까봐 상부석에는 길고 단단한 철사가돌을연결시켜주고있다. 하지만비가올때마다철물이돌표면에스며들어또다른문제를야기시키지는않을까우려된다.
대적광전의 문을 열면 비로자나毘盧遮那부처님이 경내를 내려다보신다. 정료대는 아마도 부처님이 모든 중생衆生들을 보살펴보시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환히 불을 밝혀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행修行을 하시는 스님들의 밤길을 밝혀주어불편함이없도록해주는고마운이가아니었을까하는생각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