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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수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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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창기 2007년 05월 303호
그런데 한편으로 망자가 독경소리를 벗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크기의 인연이 작용했
다는 생각만은 아주 지울 수 없었습니다. 생전에《조주록》이니《임제록》이니 하는 선
사들의 어록을 가까이 두고 계시기도 했을 뿐더러 시어로 종종 등장하는‘보리수’도
“슈베르트류의 존재라기보다는 석가모니의 그것”이라며, 그 영향 아래서‘법法’이라
는말도정법안장正法眼藏의준말로읽어주기를희망하셨기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 식구들에게 멀지 않은 산수유 군락지에‘꽃구경을 가자’고 제안을 했다가 퇴
짜를 맞았습니다. 어젯밤부터 슬슬 뿌리던 봄비가 아침까지 추적추적 내렸기 때문입니다. 비
오는 날의 불편함을 몰라서라기보다는 지는 꽃의 장엄함을 바라보는 것도 큰 꽃구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신의 시 중에 <아침에 핀 꽃을 저녁에 줍다>는 시구를 떠올리면서 말
입니다. 결국 설득에 실패하고 창밖으로 요즘 부쩍 분주해진 새소리를 엿듣다 문득 강화도
전등사 소나무 밑에 묻고 온 스승을 생각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갑작스런 인연에 버거워했을
그소나무도봄기운이물씬올랐을것입니다.
강화도를 들먹이면 저는 따로 할 말이 좀 있습니다. 전쟁 직후에 황해도 연안에서 피난 내
려온 저희 종친들이 고향 마을과 가깝다며 무덤이나 쓸 요량으로 마련한 종산이 강화 고려산
자락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팔순이 훌쩍 넘은 저의 부친께서 여러 해 전에 그 산에 누울
자리를 보시겠다며 함께 가자고 해서 따라나선 적이 있습니다. 오르막길이 워낙 가파른 탓에
좀 걱정스럽긴 했습니다만, 산 정상에 오르니 탁 트인 바다가 코앞에 펼쳐져 제법 활개를 펼
만했습니다.
그런데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불편한 다리 때문에 힘겨워하시던 부친께서 막상 집
안의 여러 어른들이 누워 계신 봉분들과 맞닥뜨리더니 갑자기 활기가 솟은 듯 아주 날렵하게
혼잣말을 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무덤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게 아닙니까. 그때 멀찍
이서 바라본 부친의 모습이 마치 고향 마을 뒷산을 오르내리며 나비를 쫓는 소년과 같다는
생각이들면서저의얕은시심을자극하기도했습니다.
무슨인연인지그강화도에얼마전제스승이신오규원시인을묻었습니다. 장례는유족들
의 뜻에 따라 정족산 자락에 수목장樹木葬으로 치렀습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 지켜봤습니다
만, 수목장이란 시신을 화장하여 분골을 한 뒤 한지에 싸서 나무 밑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묻
는 장례 방식을 말하더군요. 그 소박하고 자연 친화적인 형식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전등
사 경내에서 울리는 풍경소리와 늘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니 만년의 외로움을 좀 덜어드린 듯
싶어좋았습니다.
시인과 수목장
그런데 한편으로 망자가 독경소리를 벗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크기의 인연이 작용했
다는 생각만은 아주 지울 수 없었습니다. 생전에《조주록》이니《임제록》이니 하는 선
사들의 어록을 가까이 두고 계시기도 했을 뿐더러 시어로 종종 등장하는‘보리수’도
“슈베르트류의 존재라기보다는 석가모니의 그것”이라며, 그 영향 아래서‘법法’이라
는말도정법안장正法眼藏의준말로읽어주기를희망하셨기때문입니다.
세간에서는‘시인’과‘수목장’이라는 두 말의 이미지가 신선한 울림으로 다가온 탓인지 더
러 화제가 되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맞은 한 인간의 장례 절차가 그가 살아온
삶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믿기는 어렵습니다. 늘 그‘생生’이 문제이지요. 미망인의 뜻도 공
원묘지에 거대한 석재로 둘러싼 봉분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하셨
습니다. 사르트르의 비유대로 죽음을“어떤 멜로디의 마지막 화음”이라고 한다면, 그 화음을
아무리 길고 장엄하게 마무리한다고 해서 그의 생애가, 아니 그가 들려준 음악이 갑자기 달
라질리도없고, 또그음악이란그렇게흩어지고마는것이라고저는저대로이해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망자가 독경소리를 벗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크기의 인연이 작용했다는
생각만은 아주 지울 수 없었습니다. 생전에《조주록》이니《임제록》이니 하는 선사들의 어록
을 가까이 두고 계시기도 했을 뿐더러 시어로 종종 등장하는‘보리수’도“슈베르트류의 존재
라기보다는 석가모니의 그것”이라며, 그 영향 아래서‘법法’이라는 말도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준말로읽어주기를희망하셨기때문입니다.
그 선취 덕분에 종종 종교적인 경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평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평소에 시인은《조주록》의 발견이 종교적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문학적 책읽기에서
발견한 것임을 강조하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불교 서적의 문학적 읽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완곡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저는 시인의 시 세계가 어느 정도의 선정禪定에기대
고 있다는 느낌만은 거둘 수가 없습니다. 제 느낌이 맞는지 어떤지 판단해보시라고 시인의
말을직접한번옮겨보겠습니다.
“우선 조주는, 종교와 관계없이, 내가 좋아하는 선사禪師이다. 그는 다른 선사들과 달리‘일
상의 간결한 언어’로법法을 말한다. 근본적으로 불법佛法은 불립문자不立文字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말로서 이루어지거나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법을 말하는 방편은 입문
자立文字라 할 수 있다. 그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임제臨濟의 고함(喝)이나 덕산德山의 몽둥
이(棒)와다름이없겠지만, 그러나‘고함’과‘몽둥이’와다른속성을지니는것이‘언어’이다.
이 언어의 특성을 조주는 알고 있은 듯하다. 그는 다른 선사와는 달리 이 언어를 피하지 않고
적절히 수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법을 말하는 다른 선사들의 관념적 설명적 언어와는 달
리 실재적이고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그리고 간결한 언어를 구사한다. 내가 조주를 인용하는
것은‘정定하지 않는 것이 정定하는 것’이라는 조주의 말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날(生) 이미
지’와서로연관이깊다는측면에서다.”
강화도에 사는 덕에‘능참봉’으로 임명된 함민복 시인이 추도사에서“이제 강화의 솔바람
소리도 함부로 들을 수 없게 됐다”는 말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평범한 수사로 들렸는
데 두고두고 생각하니 오규원 시인의 투명하고자 했던 시적 노력을 잘 드러낸 듯해서 오래
기억에남았습니다.
시詩라는 한자를 파자하면‘언어(言)’와‘절(寺)’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강화 전등사에 가
면‘정定하지 않은’, 그‘투명한’언어로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해 주해를 달고 있는 시인의 목
소리를바람결에들으실수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