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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다어디로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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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야기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07년 04월 302호
그의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도 그를 가장 아꼈다고 전하는데,“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모임 당시15세였던 그의 글씨를 좌중에서 최고로 꼽았을 정도이다.‘ 고람古藍’이라는 아호도“푸른색은 쪽에서 나오나 쪽보다 더 푸르다(청출어람靑出於藍청어람靑於藍)”라고 하는 말에서 따서 추사가 직접 지어주었다고 전한다. 그의 그림은 담백하지만 인상적이다. 그의 짧은 생애를 통해 몇 안 되는작품만을 남기고 있으나 그림들은 모두 경지에 오른 붓질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작가에게는 찾아볼수없는 담담함과 향기 그리고 관조가 녹아있다.

봄이되면터져나오는그꽃망울들은겨우내어디에숨어있었나.
봄의 시작이라 누가 알리지도 않았는데, 모두 알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어느 순간 하루를 다툰다. 그래서 여름은 달포 단위로 달라지겠으나 봄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봄을 시샘하는 바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겨울답지 못했던 지난 계절 때문이었는지 아직 두꺼운 겨울옷을 다 챙겨 넣지도 못했고 하늘은 오늘도 꾸물거리는데, 벌써남쪽엔매화가하하거리며종종대는발걸음을챙기고있다.

겨우내 잠자고 있던 생명에 대지大地는 가슴으로 온기를 더하고, 하늘은 거기에 빛을 더하여 조용히 깨운다. 분명 땅은 아홉을하고 하늘은 하나를한 셈이다. 그러니 운문 스님말씀대로 세상은 넓고광활하여 자유로워 계절을 알려주는 신호는 분명히 어딘가 있지만 그 신호는 땅 속에서 은밀하다. 자연은 소리 없는 그 신호에 따라 일사불란 따른다. 종소리에 움직이는 중생만이 그 신호를 모를 뿐이다. 향엄 선사께선 기와 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에 깨닫게 되었다고하고, 영운스님은 어느때 복사꽃을 보고 본래심을 찾았다는 말씀인데, 작은 울타리 속 아침 저녁 알리는 종소리에도 어느 때인지 구분을 하지 못하는 내 눈과 귀를 다시 만져본다. 내귀가대숲의바람가운데로달려갔을까, 개나리의 노란빛이 내눈에와서 닿은것인가.아무튼 매화는 햇살을 등 뒤로 할 때나, 달빛을 머리에 이고 있으나 그 색과 향기는 봄의 으뜸이 아닌가싶다. 복사꽃이나 벚꽃처럼 교巧하지 않고, 이마를 때리는 모란의 향만큼 과過하지도 않다. 목련만큼 크게우아하지도 않으며 산 위에 숨어 피는 진달래만큼 수줍은 것도 아니어서 선비의 앞에는 항상 매화가 놓여있었다.
전기(古藍田琦; 1825~1854)가 그린 매화꽃이 핀 서재는 꿈속에나 가 보았음직한 광경이다. 나지막한 산을 뒤로한 소박한초옥은흰 눈이 쌓인듯한 흰매화에 둘러싸여있다. 매화는선비들이즐겨 그린주제였으므로 전기와 같이 그림을 즐겼던 동학들도 그것을 그린 작품이 여러 장 전하고 있으나 그의 그림만하지 않다. 그의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도 그를 가장 아꼈다고 전하는데,

“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

모임 당시 15세였던 그의 글씨를 좌중에서 최고로 꼽았을 정도이다.‘ 고람古藍’이라는 아호도

“푸른색은 쪽에서 나오나 쪽보다 더 푸르다(청출어람靑出於藍청어람靑於藍)”

라고 하는 말에서 따서 추사가 직접 지어주었다고 전한다. 그의 그림은 담백하지만 인상적이다. 그의 짧은 생애를 통해 몇 안 되는작품만을 남기고 있으나 그림들은 모두 경지에 오른 붓질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작가에게는 찾아볼수없는담담함과향기그리고관조가녹아있다.
꽃들은다어디로갔나모두 경지에 오른 붓질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작가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담담함과 향기 그리고 관조가 녹아있다.
그의 그림 안에는 매화의 설렘보다 더 반가운 친구가 그를 만나기 위해 내를 건너고 있다. 친구는 들고 다니던 장죽에 무엇인가를 엮어 어깨에 둘러멨는데, 틀림없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밤새 그간 공부거리와함께주고받을술한병이아니겠는가싶다.
같이 추사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던 <호산외사壺山外史>의 저자인 조희룡은
“고람의 시화는 상하백년을 들어논할만한작품이없다”고하며이렇게적고있다.
“작년 가을 내가 남쪽으로 갈 무렵 나를 찾아와서 그토록 아쉬워하더니, 그 이별이 마침내 천추가 될 줄이야뉘알았으랴. 남으로부터돌아온뒤벽오초당에서고람의매화서옥도를보니거기에세수의글귀가있는데 그 중 한 대목에는‘매화 그리는 비결을 종내 터득하지 못하여 가슴 속에 사무친 매화를 내놓자 해도 못내 놓겠네. 황산곡을 더듬어 묘한 이치 깨닫고서 싸늘한 맑은 새벽 고산에 당도하다’라고 하였는데 유담幽膽하여욀만하다.”
스승과 동학 모두 그를 사랑하고 그의 작품을 즐겼으나 그는 서른 해 짧은 시간만을 지내고 갔다. 스스로는 매화 그리는 비결을 종내 터득하지 못하였다고는하나 이미 그가 꺼내든 것은 마음 속 매화 한 송이가아닌골짜기에가득한매화향기뿐이다.조주스님께한스님이물었다.“눈먼 거북이가 바다에 뜬 나무 구멍을 만난 것은 어떤것입니까?”“우연한일은아니다.”
올해는 창 밖에 매화를 심으리라 생각하며 발걸음을떼어놓는다. 문득 뒤뜰에 목련 꽃망울이 조바심을 내고 기다리고 있다. 곧 신호가 울리고 겨울을 견디었던 솜털 보송한 겉잎을 벗고 나면 광활한 이 우주에 목련꽃잎의 순백만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뚝뚝 떨어져버린다고 한들 지금은 무슨 상관이랴. 이미 흰 꽃잎의 조바심만큼이나내마음도두근거리긴마찬가지인데.조주 스님께서도 눈먼 거북이가 바다에 뜬 나무 구멍을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 뒤뜰 목련이 목전目前에 순백인 것도 우연이 아니겠으나, 옛 스승들의 말씀이 내 눈과 귀에 다가와 가르침이 된것을 어찌 우연이라 할수있으랴.
목련 나무 밑에서 스승과 꽃잎, 진리와 눈먼 거북 사이를 천년을 배회하다 문득 정신을 챙기고 보니 하늘은여전히찌푸려있다. 가슴한곳은여전히허전하였으므로곧주변을두리번거렸다.
“아, 만발하던꽃들은다어디로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