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 솜털 같은 햇살이 해인사 도량에서 종종댄다. 줄탁이라 했다. 병아리가 알속에서 나오기 위해 껍질을 쪼면 어미닭도 밖에서 함께 껍질을 쪼아주는 것.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나아가는 수행자를 스승이 돕는 것과 같다. 해인사의 맑은 오후, 강원에선 병아리 스님들이 날개를 허둥대는지 도량을 지나는스승들의발걸음이바쁘다.“ 춥습니까?”
나는 옷깃을 여미며
“스님도 추우시죠?”
했더니
“나는 일생을차게살아온사람이라…”
한다. 평생불을환히밝히지도않고뜨겁게불을때지도않고, 그저도에눈밝은사람이 자신의 체온만으로 살아왔다는 얘기로 들렸다. 바람이 아무리 뒤통수를 치고 달아나도 스님은 성성하게 웃고있었다.
무엇이스승인가? 무엇이부처인가?
“삼성반월三星半月이지요. 내가 어렸을 때 은사 스님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냐 하시대요. 이틀 만에 내가답했지요. 휘어진 반달에 세 개의 별이 있으니 그것은 마음 심心자 아닙니까. 그러니 부처님은 마음에 있다는말씀입니다.”
어린나이에절에찾아들었던것은공부가눈물겹게고파서였다. 피난갔다가할머니와여동생과함께고향
에 돌아와 열여섯 살 소년의 손으로 산에서 직접 나무를 해다가 집을 짓고 살던 시절이었다.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엔 책을 보며 살던 시절이었다. 워낙에 글 읽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누군가에게서‘오천년조선력사’라는 책을 빌려서 읽었는데 그 안에 율곡 이이가 금강산에 들어가 공부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열여덟 살의 소년이었던 스님은 그 글귀를 마음에 품고 있다가 산사의 문으로 들어섰다. 아주 어려서부터 선비인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한문을 배웠을뿐, 학교에다녀본적도없던스님은맘껏공부할수있겠구나싶은마음뿐이었다. 그것만으로 행복했다.
“사실, 불교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니 완전히 심취되고 말았어요. 내겐 경전 속의 부처님의 말씀이 지금 내 귀에 직접 들려주시는 것처럼 들리고 고승들이 하셨던 말씀들이지금면전에서나에게직접일러주시는것처럼느껴져요.”
불교공부를 하려거든 마음공부와 글공부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신조다. 스님이 불교학자이기만했다면 그렇게 몸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정신과 몸과 마음을 따로 두고 공부해서는 안된다는말씀이다.
스님은 해인사 강원의 2기생이니 현재 학인스님들의 스승이자 까마득한 선배이기도 하다. 벌써 50여년전의 일이니 그때의 환경과 현재의 환경은 얼마나 판이하게 다를 것인가. 스님이 처음에 해인사 일주문을 들어서던 그 늦봄의 오후, 스님의 눈에 먼저 든 것은 명월당 앞에서 하얀 양복을 입고 공을 차고 있던 스님들이었다. 그때만해도 큰스님들이나 승복을 입을수 있던때였다. 불교정화가 불어닥쳐 대처승을 몰아내느라한참 어수선할 때여서 스님은 암자로 보내졌다. 그렇게 백련암에서 행자시절을 보내다가 강원에 내려와 공부했다.
한겨울에도 홑옷 입고 맨발로 살았다. 춥디추운 가야산의 한 귀퉁이 방에서 냉기만 없으면 만족하고 살았다.그래서 스님은 지금도 뜨끈한 방에 앉기보다 썰렁하게 하고 산다. 그 시절의 청빈했던 삶이 습관을 그리 들였으니 그것을 최고의 만족으로 알고산다. 병든 몸뚱이일지라도.
“난 병 주머니가 됐어요. 밥 먹고 쉬지 않고 책만 봤으니 폐병, 치질… 없는 병이 없어요. 그래도 병하고 싸우면서지금까지공부했어요.”
경전을 구하기도 어렵고 번역본도 없고 참고할만한책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책만손에 잡히면모두손으로 베껴 썼다. 그것만으로도 큰 공부였다. 모두들 아홉시에 잠들고 세시에 일어날 때 스님은 지대방에 불을 켜고 열한시까지 공부했다. 지금도 그 시절의 노트를 펼쳐보곤 하는데 졸음에 겨워 찍찍 그어진 펜 자국들이 날 선 열망의 칼자국처럼 선연히남아있다.
그러고는 대적광전에 들어가 기도했다. 불교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법사, 가장 해박한 큰 석학이 되고 싶었다. 돈을 벌겠다는 발원도 큰 절을 갖겠다는 발원도 해본 적 없다. 학문에만 몰두한 채 그 고되지만 행복한 외길을 걸으며 불교학의 일인자가 되기만을 발원했다. 그러고 열두시가 넘어서야 잠을 청했다. 하루에 세 시간자면서 그토록 원했던 공부만 했던 시절이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 절에 왔으니 아무리 힘겨워도 그것이 힘겹게느껴지지않았다.
스님은 그때의 발원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다며 허허 웃으신다. 그도 그럴 것이, 구사학, 유식학, 천태학, 화엄학 등 모든 불교학을 공부했고, 불교학뿐만이 아니라 동양학에 있어서는 유교, 도교까지 모두 공부했으니. 스님은 이 분야에서만은 현재 동서양의 어느 석학도 스님만큼 깊고 넓게 공부하지는 못했을 거라며, 그자부심만은가지고있다.
할아버지 밑에서 한문공부를 하던 여덟 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러니 스님에게 있어서는 지금도 한글보다는 한문이 더 쉽고 빠르다. 그래서 스님은 전생에서부터 불교학, 동양학을 공부했던 것만 같다
며또한번허허웃으신다.
스물세 살의 나이에 영천 은해사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불교정화 이후로는 가장 어린 나이에 경전 강의를한 것이다. 그때도 은해사에서 참선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강의를 하라고 해서 잠시 가르침의 자리에 섰다가다시 참선의 자리로 돌아왔는데 또 강원에서 불렀다. 그렇게 해서 30여 년 동안 강의를 해오게 됐다. 해인사,통도사, 범어사, 백양사, 은해사에서강주로지내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스님이 처음 해인사에 들어섰을 때였다. 암자로 가라는 말에 어디로 갈까 하다가 지족암으로 올라가니 영월 스님이 혼자 참선을 하고 있었다. 스님 앞으로 다가가 중이 되겠다고 했더니 손사래를쳤다. 어떤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그저 내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스님은 그 위의 백련암으로 가서 행자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나중에야 영월 스님이 왜 받아주지 않았는지에 대해 일타 스님이 슬쩍 일러주셨다. 영월스님이 그 전날 밤 꿈을 꾸었더란다. 그런데 그 꿈에 전생의 큰 석학 스님이 찾아왔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참선만 했지 학문과는 거리가 멀었던 영월 스님은 자신과는 연이 아니라 여겼던 것이다. 지금도 이 이야기는 스님들 사이에서 회자되고있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이 공부하는 데에 있어 큰 지식인을 만났던 것은 아니다. 큰스님들께 가서 아무리 질문을 해도 의문은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독학하고 체득했다. 눈도 귀도 코도 입도 몸도 의식도 없다는 것을 지식으로만 새기다가 참선을 하던 중 탁, 깨우쳤다. 그러고 나니 금강경도 반야심경도 다해독이 됐다. 그 전엔 이해가 안되던 부처님의 말씀이다스며들어왔다, 부처님의진리가. 궁금해지던참이었다. 골골앓아대는 저 몸뚱이속에 대체뭐가들어있는지, 스님의방엔책이 10만여권이나 있다는데 그것이 저 머릿속에 다 들어앉아 있는지… 궁금해지던 참이었다. 그런데 스님이 그 답을 먼저 하고 계신 게 아닌가. 아, 역시 나는 어리석은 중생이다. 채운 것이 아니라 비웠더니 탁, 알겠더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중이지않은가. 비우기는커녕, 여물지도 못한나는 얼기설기한 심성으로 대체 뭘 보고있었던가. 공부는 발심하는 데 있다고 경봉 스님이 말하지 않았던가. 무엇 하나 시작하지도 않고 왜 안 되느냐고 탓을 하고있는우리에게각성스님은본보기가아닐까. 공부도 안된상태에서 가만히 앉아 구름만 본다고 그게 공부일것인가. 공부는 하지도 않고 제집지키기에 여념이없는 스님들이나 법의를 입었다고 다구도 자인듯하는 스님들에게 각성스님은 말씀하신다.
“포난사음욕飽煖思淫慾기한발도심飢寒發道心이라. 배부르고 등 뜨듯하다고 공부가 잘 되나, 배고프고 춥다고 도 닦을 마음을 못 내나. 그 시절엔 짚신 삼아 신고 가야산 넘어서 청암사까지 걸어 다녔는데 지금은 자동차가있는시대니누가걷나요. 그러니누가공부를하나요.”
마음은 본래 텅 빈 것이라 했다. 그러니 그 본래의 마음으로 닦아가는 것이 공부인 것일 텐데, 대체 무엇으로 어찌 닦을 것인가. 스님은 마치 비밀을 얘기해주기라도 하듯 조용히 말씀하신다.
“ 어려운 방법이 있고 쉬운방법이있지!”
“씨앗을 심어서 나무로 키워서 그 나무를 잘라서 배를 만들어서 강을 건너는 것이 참선이라면, 만들어 놓은배를타고강을건너는것은염불이에요. 나는이제염불수행하려고합니다.”
그래서 지금 염불을 할 수 있는 곳을 마련 중이다. 혼자서 공부를 한다면 산 중에 방 한 칸이면 족할 것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염불 수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남은 날들을 염불 수행하며 보내고 싶은 것이스님의 뜻인 것이다. 그렇게, 스님은 얼른 극락왕생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빨리 도를 이루어서 다시 사바세계에와서 우매한 이 들을 깨우치고 싶다.
“그런데내몸도관리를못하는주제이니….”
그래도스님은이세상에나와서후회는없다.
“본래 무아지만, 내 것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천지만물이 다 내 것이니 부러울 것이 없어요. 내 앞으로 등기를 해놓지 않아도 저 달도 내 것이고 저 해도 내 것이고 이 산천도 다 내 것이니. 그러니 선 그어놓고 싸울 필요도없고가진게없다고서러워할필요도없어요. 극락세계도내마음에있는것인데!”
뒷걸음질쳐 나오는 내게 부지런히 공부하란다. 해인사 계곡 물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흐르다보면 태평양바다로 가는 것이라며, 밥을 먹어서 생명을 유지하듯 공부하란다. 그러니까 밥 먹듯이 공부하란 말씀이다. 그러니까밥앞에당당해지란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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